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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일][01월09일]글쓰는 인생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 4시면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한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모닝페이지’ 쓰기다. 줄리아 카메론의 <아티스트웨이> 라는 책을 읽고 12주 워크샵을 셀프로 진행하면서 쓰기 시작한 것인데 일어나자마자 노트를 펼치고 내가 생각하는 대로, 나의 의식대로 그냥 써내려가는 것이다. 분량은 노트 3쪽인데 매일 다르지만 한 시간 조금 못 걸린다. 처음엔 이런 걸 왜하라고 하나...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모닝페이지를 하며 가장 많은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고민이 해결되기도 한다. 그리고 바로 이어 책쓰기를 2시간 반 ~ 3시간 정도 한다. 책을 쓰기 전에는 감사일기나 성장일기를 썼다. 그러고 나면 8시. 평일, 주말 예외 없다. 여행지에서도 최소한 모닝페이지는 실행한다. 무조건 써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아닌 모닝페이지를 통해 내가 얻는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24시간 중 4시간은 뭐든 끄적거리는 시간이다. 때로 졸기도 하고, 신나서 쓰다보면 엉뚱한 방향으로 가버릴 때도 있지만 이 시간만큼은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오로지 나만의 시간이다. 아이들의 기상과 동시에 엄마모드의 나로 돌아간다.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 그 시간에 글을 쓰며 나와 마주한다는 것은 어떤 모드(나,엄마,딸,며느리,대리,과장)에서건 나로 살기 위한 에너지를 비축하는 것이다.


전업맘들은 워킹맘을 부러워한다. 하루 종일 집안일과 아이 돌보기, 남편의 내조에 치이며 누구누구 엄마로 살아가는 전업맘은 내 이름 석자가 가물가물하다. 내 이름이 참 어색하고, 더 이상 필요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직장에 있는 시간만큼은 누구 엄마가 아닌 내 이름 석자로 불러줄테니 전업맘의 로망이 된다. 물론 워킹맘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을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 점심이라도 껌딱지들 없이 먹을 수 있는 자유, 커피 한잔의 여유가 부럽다. 남편에게 떳떳한 외출, 당당하게 자유시간을 요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아무래도 더 여유가 있을 테고. 반면 워킹맘들은 전업맘이 부럽다. 직장 내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다. 회사에서 시달리고 퇴근하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쌓여있는 집안일과 하루 종일 엄마를 기다린 아이들이다. 회사에서는 퇴근하고 집에 가면 아이와 실컷 놀아줘야지. 힘껏 안아줘야지 했지만 몸과 마음이 지쳐 그럴만한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다. 아침마다 우는 아이를 떼어놓는 마음, 간절한 아이의 눈빛을 뒤로하고 회사로 가야하는 그 마음을 어찌 모르랴.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초비상이다. 회사에 눈치를 봐가며 휴가를 쓰거나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아픈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다른 사람 손에 맡기고 피눈물을 흘리며 출근하기도 한다. 매일 직장생활의 끝을 생각하며 출근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으면서 회의감을 느끼지만 막상 그만둘 용기는 나지 않는다.


워킹맘, 전업맘 두 가지 다 해본 결과 원래 남의 떡이 더 커보인다. 다른 일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영업자는 꼬박꼬박 월급받는 월급쟁이가 부럽고, 직장인은 자기만의 사업을 하는 자영업자가 부럽다. 내가 딱 그랬다. 결혼하고 나서는 얼른 임신해서 육아휴직 하면서 쉬고 싶었다. 먼저 쉬고(?)있는 선배들이 부러워서 임신을 했다. 막상 아이를 키우다 보니 육아가 적성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회사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집에서 애만 보는 것도 좋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워킹맘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복직을 하고나니 큰 애가 아른거렸다. 복직 초반에는 바쁘지 않았기에 다닐만 했다. 여유도 있었다. 그런데 업무 적응을 하고 업무량이 많아지면서 또 다시 힘들어졌다. ‘내가 뭘 위해 이렇게 힘들게 살지? 평생 다닐 직장도 아니었고, 애만 보는 것도 힘들고...’ 머릿속이 복잡했다. 다시 전업맘 시절이 그리워 졌고 둘째를 임신 했다. 그리고 다시 전업맘으로 돌아왔다. 내가 선택한 것이었음에도 상황에 따라 매번 후회하고 가지지 못한 것을 부러워했다.‘엄마’라는 역할이 원래 쉬운 것이 아니다. 어느 누가 해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나 자신’한 몸도 스스로 다독여가며 살기 쉽지 않은데 거기에 핏덩이를 사람으로 만드는 엄마라는 역할까지 덤으로 잘 해내야 한다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지만 분명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세상에 가장 가치로운 일을 하는 것이다. ‘아이는 미래다’라는 말처럼 미래의 주역이 될 우리 아이들을 잘 기르는 것은 엄마의 몫이다. ‘엄마’는 위대하다. 엄마니까 아이를 위해 희생하라는 이야기가 아님은 잘 알 것이다.


주변에 아무리 이렇게 이야기한들 또 좋은 책을 읽는다 한들 그 때 뿐 이라는 것을 안다. 내가 그래왔으니 말이다. 분명히 맞는 말인데...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막상 현실에 부딪히면 무너져 내린다. 왜 그럴까? 왜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자꾸 반복하는 걸까? 어떤게 진정 나의 모습인지 헷갈린다. 이유는 바로 온전히 나의 생각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왔다고 이야기 하더라도 그 생각은 다른 사람의 경험에서 나온 생각일 뿐이다. 나는 다른 사람의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을 뿐이다. 진정으로 나의 것으로 소화시키기 위해서는, 뼛속까지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나의 생각을 남의 생각을 통해서가 아닌 나 스스로 잡아내야만 한다. 어떻게? 이 책의 첫 장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이야기 해온 ‘글쓰기’를 통해서이다. 육아면 육아, 직장이면 직장, 혹은 나를 지금 힘들게 하는 그 상황에서 회피하거나, 희생하기를 선택하기란 쉽다. 대부분 우리는 지금까지 그래왔다. 소용돌이 속에서 가치를 찾고, 나를 찾기 위해서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내가 하는 나의 생각을 잡는 것! 그래서 진짜 나의 생각으로 만드는 것이다. 핵심은 ‘중심’과 ‘균형’그리고‘성장’ 이다. 글쓰기를 통해 나의 중심을 단단히 잡고 상황 속에 균형을 맞추어 한 걸음 더 성장할 수 있다면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워킹맘이건 전업맘이건 당장 힘들어 하며 신세 한탄을 하기보다 내가 정말 바라는 것, 원하는 삶을 알게된다면 혼란스러움 속에서도 평정심을 갖을 수 있다.


주변에 매우 똑똑한 동생이 있다. 친동생보다 어린데 나보다 훨씬 야무지게 본인의 미래를 설계하고, 준비하고, 행동하는 친구다. 그런 동생에게도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육아’다. 모든 것이 완벽할 것 같은 사람도 보면 육아는 예외가 없다. 동생은 글도 매우 잘쓴다. 필력도 좋아서 블로그의 글 한편을 읽으면 책을 읽는 것 처럼 길고 흡입력이 있다. 지금까지 내가 해온 이야기가 ‘글쓰기’를 하라는 내용이고, 글을 쓰면 육아를 하면서도 ‘나’의 중심을 잡을 수 있고, 진정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고 했는데... 예외가 있는 걸까? 동생은 사업적인 글은 매우 잘쓴다. 동생만의 신념과 사명을 갖고 있기 때문에 글에 힘이 실려 있다. 그래서 그 사업이 아니더래도 글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힘을 얻는다. 가끔 육아에 관한 이야기를 쓰기도 한다. 육아가 힘들지만 아이들을 사랑한다, 너무 예쁘다는 내용정도 이다. 동생의 글만 보고 솔직히 육아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줄 알았다. 모든 것이 완벽한 것 같았다. 그런데 만나고 보니 생각보다 훨씬 힘든 상황이었다. 동생도 아이도 남편도 말이다. 나를 만난 그 날도 선물로 파이를 만들어 왔는데 아이가 말을 안들어 파이가 조금 탔다며 미안해 했다. 아이가 너무 자기 마음대로 해서 참다가 결국 화를 냈다고 이야기 하며 화를 주체할 수 없어 쇼파에 던져버렸다고, 그런 내가 너무 힘이 들고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이야기 했다. 파이를 받으며 고마움과 미안함이 함께 했다.


지금까지 이야기 한 글쓰기! 동생에게 필요한 글쓰기는 솔직한 ‘나의 이야기’다. 사업에 대해 나의 신념이 깃든 글을 쓰는 것도 나의 성장과 사업의 발전을 위해 물론 필요하다. 거기에 플러스로 내가 힘든 부분에 대한 진짜 나만의 이야기도 써보는 것이다. 신념에 가득 차있는 당당한 나도 ‘나’ 이지만 아이 때문에 힘이든 폭발한, 이성을 잃은 나도 역시‘나’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런 나 까지도 인정한 다는 것으로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보내는 작은 용기로 삶의 일부가 아닌 전체를 나의 삶으로 만들어 갈 수 있다. 지금 독자라 엄마라면 육아가 가장 큰 문제겠지만 그 외에도 우리는 문제의 연속인 삶을 살고 있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 또한 문제다. 그렇기에 글쓰기는 특정한 날, 정해진 시기가 있는 것이 아니다. 나를 찾기 위해, 나를 지키기 위해, 매일 성장하기 위해 누구나 평생 해야만 한다. 글쓰기는 우리 삶의 일부다. 글쓰는 인생. 너무나 멋지고 행복하지 않은가?


책을 출간하는 작가만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 삶을 살아가는 작가이다.

글쓰기로 품격있는 진정한 나의 삶, 나의 인생을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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