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19] 댄스 댄스 댄스(무라카미하루키)
글쓰기 모임에서 나를 한 단어로 정의하기에 대한 글을 쓰기로 했다. 지금까지 내 인생에 대해 많은 시간을 들여 생각해 왔지만 막상 한 단어로 나를 정의하려 하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댄스 댄스 댄스’의 주인공이 했던 자기소개 방식을 적용해 본다. 우선 최대한 객관적인 사실만을 기술한다.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치즈를 좋아한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장소를 싫어한다. 어렸을 때는 과일 먹는 걸 싫어했지만 요즘은 과일을 잘 먹는다. 좋아하는 과일은 참외, 수박, 귤, 사과이다. 더 이상 말할 것이 없다.
다른 접근법으로 거시적인 관점에서 내 인생을 돌아본다. 참 평범한 인생이다. 그 흔한 차 사고가 났다거나 친구들과 놀다가 팔, 다리가 부러져 본 적도 없다. 부모님 말씀을 잘 들었다. 공부를 잘하지는 못했지만 열심히 했다. 아무 특이점이 없는 인생을 살았지만, 그 순간엔 고민도 많았고, 어려움도 많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렇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상대적 비교를 한다면 난이도가 10점 중 2.3점 정도인 인생을 살았으나, 나의 체감 상 내 인생의 난이도는 9.5점인 거 같다. 선천적으로 나약한 성향이다. 주변에선 온실 속 화초 같은 인생을 살았다 한다. 나는 전혀 그렇게 느끼지 않지만, 다른 사람 인생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말이 맞는 것도 같다.
마지막으로 미시적 관점에서 최근에 겪은 특정 사건에 대해 내 인생을 돌아본다. 11년 간 회사생활에 위기가 왔다. 전조증상은 있었으나 애써 무시했다. 내 인생을 충실하게 살면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항상 내 인생엔 진심이었으나 다른 사람 인생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이런 상황을 겪었다고 스스로 판단했다. 항상 불만족스러운 인생을 살았지만, 실제적인 어려움과 직면하니, 아무 일 없었던 너무나도 지루했던 일상조차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겪었던 이슈는 시간을 들여 호수를 걸으며 해결했다. 그 일을 겪으며 아무리 어려운 상황도 해결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과 잘 씻고, 몸을 움직이는 것이 중요성 하다는 것을 배웠다.
기억은 현재 시점에서 미화되는 경향이 있다. 가장 지독했던 군대에서 기억도 지금 생각해 보면 약간은 좋은 추억으로 미화되어 있다. 지금 겪었던 어려움도 시간이 흘러 40대 또는 50대가 되면 그런 일도 있었지 정도로 생각될 것이 뻔하다. 그러나 당시 기분에 지배당해 버려선 안 된다. 대부분의 일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 이제 나를 한 단어로 표현해야 한다. 나를 표현하는 것은 어려우니 내 인생을 한 단어로 표현해 보면 ‘평범함’이다. 나는 특별한 인생을 살고 싶다고 할지라도, 그냥 평범한 인생이 나에게 주워진 것이다. 이 평범함에 감사한다.
나는 특별한 삶을 꿈꿨다. 내 인생에 모험이 펼쳐지길 바랐다. 그러나 그런 삶을 살기엔 너무 나약했다. 특별한 삶을 살기 위한 어떠한 위험도 감당하려 하지 않았다. 모험을 바랐지만 모험을 떠날 용기는 없었다. 철저히 남들의 시선에 나를 맞췄다. 어떤 대학을 가고, 어떤 직장을 다니고, 어느 때 결혼을 하고 사회통념에 벗어나지 않은 평범한 인생을 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가장 치열하게 평범한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댄스 댄스 댄스’의 주인공은 매우 평범해 보이지만, 매우 특별한 존재로 살아간다. 본인은 평범한 인생을 살고 싶어 하는 것일 수도 있으나, 기묘한 일들이 일어나고, 특별한 상황에 직면하고, 특이한 사람들을 만난다. 그래서 소설에 빠져 드는 것이다. 정말 인생을 한 줄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나 같은 인생에 대해 소설을 쓴다면 과연 누가 관심을 가져 주겠는가?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책 속 주인공이 특별함을 타고난 것이 아니라 본인이 특별한 삶을 꿈꾸고 생각하고 실행에 옮긴다. 그는 일을 그만두고, 아무 일도 없이 그의 생각 속의 ‘돌핀 호텔’로 떠났다. 그리고 모험이 시작되었다. 결국 그가 생각한 것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사실 나는 평범한 인생을 간절히 살고 싶어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 일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 매일매일 똑같은 일을 아무 감정 없이 해내는 것, 퇴근 후 공원을 걷고 하늘을 보는 것, 친구와 커피숍에서 상사 욕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 이 모든 것이 내가 꿈꿔온 나의 세상이었다. 나는 전혀 모험을 원하지 않았고, 내가 선택했기에 이런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인생을 살았다고 불평하거나, 초라해질 필요가 없다. 나는 경험적으로 평범한 인생을 살기 위해 얼마나 자신을 갈아 넣어야 하는지 알고 있다. 갈아 넣은 결과가 이것뿐이더라도 서글퍼할 필요가 전혀 없다. 이 결과가 내가 정말로 원했던 인생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