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에게는 바람둥이인 사진작가인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혼 후 좌절감 속에서도 막연하게 남편과의 관계 회복을 기대하고 있는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소피는 바람둥이 아버지는 무척 따르면서 오히려 자신을 실질적으로 보살펴주고 걱정해주는 어머니에게는 혐오감을 표출합니다.
실은 사진 모델과 놀아나는 아버지 마음을 잡기 위해(무의식적으로) 소피는 체조 선수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고 모델과 같은 날씬한 몸매를 만들기 위해 거식증 상태에 빠집니다.
가족에게 무책임한 아버지의 모습은 자신을 만날 때마다 신경 쓰고 늘 걱정해주는 아버지로 대체됩니다. 무기력하고 불쌍한 엄마는 파탄 난 가족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주지 못한 존재로써, 늘 소피의 혐오감과 분노의 대상이 됩니다.
자신이 가족을 파탄 낸 것 같은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소피에게 삶을 제어할 수 있고 해방감을 안겨 주는 것은 체조(평균대 위에서)입니다. 소피는 체조 코치 부부와 친밀하게 지내면서 안정감을 찾지만 코치 놈과 부적절한 관계를 갖게 되면서 그 가정이 깨지게 되고, 그렇게 잠시 평화로웠던 순간은 사라집니다.
그리고 소피는...
'또 내가 한 가정을 파탄 냈구나. 나는 불행을 몰고 다니는 나쁜 애야.'라고 생각하고 자살을 시도합니다.
그런 계기로 폴(Therapist)을 찾아오게 된 소피는 폴이 자신이 안심할 수 있는 사람인지 확인하기 위해 아주 시크하고 때로는 무례한 태도로 폴을 시험합니다.
(실제 진료 현장에서도 청소년들은 은연중에 상담가를 자극하는 행동을 통해 자신을 잘 수용해줄 수 있는 사람인지 확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소피는 마음을 열게 되고 폴은 어느 날 소피에게 이런 말을 남깁니다.
"죄책감은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속성이란다. 자신이 나쁜 사람이면 차라리 받아들이기 쉽지만 세상이, 남들이, 부모님이 나쁘다면 얼마나 무섭겠니? 그래서 차라리 자신을 탓하게 된단다."
라는 식으로 소피가 자신의 감정과 모순된 행동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줍니다.
글로 남기면서 또 그때 감동의 여운이 생각나네요. ㅜㅜ
소피 시리즈에 더 관심을 갖고 봤기 때문에 내용도 더 자세히 남기게 됩니다.
(초기에 소피의 태도와 행동을 보면 성격이 나쁜 것처럼 보이겠지만 트라우마를 겪고 까칠한 척하는 모습이기 때문에 성격 문제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청소년기 우울증과 거식증 정도로 진단이 될 것 같습니다.)
배우는 국내에서는 '이상한 나라 앨리스'에서 앨리스 역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미아 와쉬코브스카입니다.
목요일은 도도하고 세련된 에이미와 투박한 수리공 같은 모습인 제이크의 부부 클리닉입니다.
아버지와 관련한 죄책감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남자에게 학대를 받는 것이 반복되는 경향이 있는 에이미는 굳이 제이크를 긁고 질투하게 하고 의심하게 만듭니다. 제이크는 에이미가 외도한다는 의처 증상에 빠져 학대를 하는 한편 에이미가 자신을 떠날 것에 대해 상당히 불안해하며 고통 속에서 지냅니다.
(제이크는 의처증으로 볼 수 있겠고 가학 피학적 경향의 병적 결합(pathologic bonding)이 다뤄집니다)
금요일 오후에 면담 일정을 마치면 폴은 어디론가 떠납니다.
네.. 폴도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었고 부인과의 깊은 갈등이 부인의 외도를 통해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한편, 강한 포스의 환자들이 그 무렵에 한꺼번에 나타나서 폴을 뒤흔들고 경계를 넘어오려고 하니, 그도 무척 혼란스럽고 힘들겠지요.
그래서 폴은 금요일 오후면 자신이 면담을 받기 위해 지도교수(supervisor)였던 지나를 찾아갑니다.
과거 프로이트에서 시작한 정신 치료 학파가 각각의 견해 차이로 분화되어 갔듯이 폴도 지나와의 치료방식, 환자와의 관계, 치료 윤리 등으로 충돌하고 그녀를 떠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위기의 상황에서 다시 환자와 치료자 관계로 재회한 것이지요.
월, 화, 수, 목요일 환자 앞에서 그렇게 품이 넓어 보이고 진지하며 예리하게 질문을 던지던 폴도 지나 앞에서는 다른 환자와 같이 부정하고 쉽게 흥분하며 어리석고 답답한 모습을 보입니다.
지나의 배역은 다이안 위스트이며 역시 이 드라마로 에미상 여우 조연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이 드라마는 두 개의 방에서 몇 명에 불과한 배우들만 나오다 보니 시청각적으로는 전혀 흥미롭거나 자극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극히 정적인 배경에서 심리 내적으로는 굉장히 다이내믹한 상황이 흘러가며 한번 빠져들면 몰입하게 됩니다.
(실은 두 세편 보면 졸리기도 해서 왕겜이나 진격처럼 정주행 하지는 못하고 나누어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