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흐르고 오늘도 잊힐 것이다.
한동안 심한 몸살을 앓으며, 요리는커녕 배달음식을 먹고 치우는 것조차 힘들었다. 오랜만에 집밥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귀가하는 남편에게 오이를 사다 달라고 했다. '얇은 가시오이 말고 하야스름하면서 약간 통통한 것으로 사다 줘요.'라는 정확한 주문에 남편은 좋은 오이와 함께 귀가했다.
오랜만에 보는 오이가 반가워 당장에 깎아 먹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그러나 나의 체력은 채 돌아오지 않아 그대로 냉장고에 모셔두었다.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오이가 자꾸 눈에 밟혔다. 주말 오후, 남편의 외출로 또다시 홀로 아이들을 챙겨야 했지만 결연한 마음으로 냉장고에서 오이를 꺼냈다. 도마 위로 올라가는 오이를 본 첫째는 연신 '오이~ 오이~' 노래를 시작했다.
먼저 둘째 아이 이유식용 오이를 잘라 바로 삶아두었다.
아삭아삭 생오이를 그대로 씹어 먹는 것을 좋아하는 첫째가 먹을 것도 깍둑썰기로 썰었다. 요 근래 오빠가 하는 거라면 뭐든 같이 하고 싶어 하는 둘째 것은 얇게 채 썰듯 썰어두었다.
'이제 다른 반찬들도 해볼까~' 잠시 고민하다 또다시 오이를 외치는 첫째에게 오이를 주었다. 둘째에게는 첫 생오이 시식이다. 그때부터 어미새와 아기새의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다른 반찬을 할 새도 없었다. 입안의 오이를 빠르게 해치워버리는 아이들에게 갖다 먹이기 바빴다. 본격적으로 저녁 식사를 먹이면서 오이도 같이 먹기로 했다.
생애 첫 생오이를 먹는 둘째와 오이를 거의 흡입하는 첫째의 영상을 남편에게 보내줬다. 남편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오이 싫어하는 어른들도 많은데, 아가들이 왜 이렇게 오이를 잘 먹는 거냐.'며.
아가새들처럼 연신 입을 벌리며 오이를 받아먹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음식 하나 먹일 때마다 설레고 긴장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만큼이나 컸구나.'
오늘 둘째 아이는 생애 첫 오이를 먹었지만, 첫째 아이의 생애 첫 오이는 언제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 오늘도 잊힐 것이다. 그렇지만 잊힌 들 어떠할까. 우리 아이들은 건강히 잘 크고 있고, 울고 웃으며 소중한 시간이 켜켜이 쌓여가고 있으니 그것으로 된 것 아닐까. 그것만으로 충분히 감사한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