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웃님의 글을 살펴보다가 지금의 내 상황과 딱 맞아떨어지는 글을 발견하고 엄청 놀랐다. 오래전 신문에 실렸던 이 글의 제목은 '200프로의 노력'이다. 피아니스트 김용배 님께서 쓰신 2005.05.10자 중앙일보 칼럼이다. 김용배 님은 현재 추계예대 피아노과에 재직하고 계시는데 이 글을 쓰셨을 당시 예술의 전당 사장을 역임하셨다. 3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셨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음대에 진학하지 못하시고 학부는 서울대 미학과에 입학하셨다고 한다. 물론 대학시절 음대에서 살다시피 하시며 음대 교수님께 사사를 받고 대학원은 음대로 진학하셨다는 놀라운 역사를 지니신 분이다.글이 너무 맘에 들어 이 분 글들을 다 검색해 보았다. 역시나 필력이 대단하시다.
200%의 노력
김용배 예술의 전당 사장. 피아니스트
세상을 살아가면서 받아 온 스트레스가 종종 잠자리에서 악몽으로 재현되는 경우가 있다. 고3 수험생이 다시 된다든가, 군대에 다시 입대한다든가 하는 일반적인 악몽부터, 동일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끼리 공통으로 꾸는 악몽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①객석은 청중들로 가득 차고, 연주하러 무대로 나가기 직전 시작 부분이 생각 안 나는 것은 물론이고 무슨 곡을 연주하는지조차 몰라 당황한다. ②완벽히 준비가 된 상태에서 당당히 무대로 걸어 나가는데 갑자기 바지를 안 입은 것을 발견, 혼비백산한다. 연주가들이 공통으로 많이 꾸는 유형의 악몽들이다. 그들이 얼마나 무대에 대해 중압감을 느끼는지 단적으로 말해준다 하겠다.
농구공을 골대에 던져 열 번 이상의 실패 끝에 드디어 골이 들어갈 때가 있다. 그때의 짜릿한 손맛이 주는 기쁨을, 농구를 마스터했다고 착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진정 위대한 선수가 되고자 한다면 열 번 슛했을 때 열 번이, 천 번 슛하면 천 번 다 골인될 때까지 연습해야 하는 것이다. 그 단조로운, 미치도록 단조로운 슛동작을 끝없이 연습해 100%의 성공률을 가진다 해도, 실제 경기에서는 상대팀의 강한 수비 때문에 회심의 슛이 안 들어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할 것이다.
연주가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곡을 처음 접했을 때, 그 곡을 기교적으로나 음악적으로 완성할 때까지의 기간은 오히려 행복한 시간이다. 어제보다 오늘이 발전하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좋은 상태가 되리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곡을 어느 정도 완성했을 때 -여러 번의 시도 끝에 골을 성공시키는 것과 같은 상황- 그때부터 끝없는 지루한 반복 연습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 과정을 이겨낸 사람만이 훌륭한 연주자가 되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이러한 혹독한 수련을 통해 다듬어진 곡을 연주하려 할 때, 연주가는 또 다른 복병, 즉 심리적 중압감이라는 적을 만나게 된다.
연주 날이 다가오면서 전혀 문제가 없던 부분에서 틀리기 시작하고, 갑자기 연주가 불가능한 것처럼 생각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연습 횟수에 비하면 0.01%도 안 되는 실수의 확률인데도 연주회에서는 그 실수가 꼭 일어날 것 같은 공포감이 몸 전체를 누른다. 드디어 연주 하루 전날, 실제 몸 상태는 지극히 정상인데도 욱신욱신 온몸이 쑤시고 열이 나는 것 같아 감기약을 먹고, 왠지 소화도 안 되는 것 같아 소화제도 복용하고, 멀쩡하던 사랑니가 부어올라 진통제도, 게다가 우황청심원까지 먹는 그야말로 연주만 무사히 끝나면 죽어도 좋다는 심정으로 모든 행동이 이루어진다(하기야 그 많은 약을 다 먹으면 정상인도 좀 이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연주회 날. 틀릴 것 같다는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고,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도 별짓을 다 하게 되는 최악의 상황이 전개된다. '회전을 하다가 균형을 잃으면 어쩌나. 점프한 뒤 착지할 때 넘어지면 어떡하지'하는 불안감을 항상 갖는 발레의 경우는 더욱 혹독하다. 한 번의 실수가 자칫하면 골절로 이어지고, 그것은 곧 무대에서 2~3년간 떠나 있어야 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공연을 마치고 "내가 할 수 있는 100%의 노력을 쏟았는데, 겨우 50%밖에 보여주지 못했다"라고 울먹이는 제자에게 "그러면 200% 준비하라"하는 스승의 말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다. 영원히 공연을 멈출 것 같지 않은 지루하고 단조로운 시간과 싸워 무대에 우뚝 선 위대한 예술가들에게 아낌없는 존경의 박수와 환호를 보내자. 그리고 그 직전 단계에서 분투하고 시행착오 중에 있는 젊은 예술가들에게도 진심 어린 애정의 박수를 보내자. 가까운 장래에 그들도 분명히 위대한 예술가가 되어 우리 앞에 자랑스럽게 나타날 것이기에!
정확히 일주일 전, 난생처음 무대에 서는 경험을 했다. 머리 위로 조명이 내리쬐고, 뒤로는 반주자가 앞으로는 관객이 기다리는 바로 그 공연장 말이다. 그동안 연습하였던 곡을 관중 앞에서 연주하는 과정은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았다. 악보를 보지 않고도 손이 자동으로 움직여지는 그 곡은, 사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곡이었다.
이 곡을 배우며 나는 진심으로 행복했다. 한 학기의 시간을 이 곡을 위해 투자했다. 레슨을 받으면서도 꿈에 그리던 곡을 연습하는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심지어 공연 날짜가 확정되고 연습을 하면서도 나날이 발전하는 내 모습이 느껴져 뿌듯했다. 문제는 1000번 던져서 1000번 모두 자유투에 성공한다 할지라도 상대편과 함께 게임을 할 때에는 상대의 화려한 수비에 막혀 3점 슛의 정확도가 떨어지듯(이 얼마나 적절한 비유인지!! ) 나 역시 긴장감이라는 복병과 맞서야 했다. 이 과정이 정말 지루한 싸움이었다.
곡을 분석하고, 연습하여 어느 정도 음악적인 완성을 이루어 가는 그 과정은 오히려 기쁘고 즐겁다. 스스로의 성장이 눈에 보이니까 말이다.
문제는 혹독한 수련을 통해 다듬어진 연주를 관객에게 들려주려 할 때 마주치는 '심리적 중압감' 즉 두려움에 맞서는 과정이다. 김용배 교수님은 이러한 심리적 압박감을 '농구의 상대편 수비'라고 표현하신 것이다. 정말 찰떡같은 비유다.
무대 위에서는 다리가 후들거리고, 리코더를 쥔 손에서는 진땀이 나고, 심장은 요동친다. 아무리 호흡을 가다듬어도 내 마음이 내 맘 같지 않은 거다.
이러한 상대팀에 수비에 맞서 나는 게임을 진행해야 한다. 상대의 수비를 뚫고 적진을 가로질러 나의 배스켓을 향해 점프하여 손목의 스냅을 조준한다. 수많은 연습으로 기술적인 수준을 끌어올리고 마인드 컨트롤로 심박수가 높은 가운데에서도 '늘상 하던 대로'의 연주 실력이 보장되게 하는 것! 말이 쉽지, 프로 연주자가 아닌 나 같은 아마추어 취미 연습생에게는 진짜 수명을 갉아먹는 듯한 경험이었다. 오죽하면 연주를 앞두고는 부담감 때문에 새벽 4시부터 잠이 깨어 하루 종일 몽롱한 상태로 불안해하며 온전하지 않은 컨디션으로 악기만 붙잡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200프로 최선을 다 했던가. 200까지는 아니어도 150퍼센트는 했던 것 같다. 연주 결과와는 상관없이 단 한 점의 후회도 없다. 결국 내가 무대의 압박을 이기고 연습했던 기량을 나오게 하려면 200프로의 노력을 들여야 한다는 결론! 아, 내가 취미로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힘들었지만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두 눈을 질끈 감고 두려움과 정면승부를 본 나 자신에게 난 강한 사람이라고, 앞으로도 이렇게 이겨나가 보자고 격려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