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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움 즐거움 Dec 04. 2023

INFP의 기쁨과 슬픔

한복저고리가 아니라서 미안하다

"영어쌤은 MBTI가 뭐세요? 제가 만난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대부분 ESTJ같더라구요!" 한 학생이 내게 묻는다. 오호! 정확한데? 진짜 내가 봐도 교사집단은 철두철미한 차도녀들이 많다. 워낙 규칙, 질서를 중시하는 집단이라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나도 오랫동안 TJ흉내를 냈었지.

"진짜? 아! 그러네. ESTJ들이 진짜 모범생 타입 같긴 하다. 네가 보기에 난 어떤 타입 같은데?" 슬쩍 어린이의 의견을 물어본다. "쌤은 진짜 감동 잘하시잖아요. 으음, 쌤 ENFP시죠?"

오호! 이 친구 촉이 좋다. 나는 인프피와 엔프피가 반반이다. I와 E가 51대 49 정도 되기에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다. "비슷해! 가끔 ENFP로 나오기도 하고 INFP라고 나올 때도 있어! "

대부분의 쌤들은 머리형이 많은 것 같다.  꼼꼼함과 정확함, 치밀함, 규격, 계획, 달성의 T성향이 많이 보인다.

교직에 입문한 후 실로 오랫동안 난 왜 직사각형 같은 이 조직에 동화되지 못하는지 고민이 많았다. 나는 찐 F이기 때문이다.

우리 교과실에는 나와 mbti가 똑같은 인프피쌤이 계시다. 교직에서 최고로 만나기 힘든 인간 유형을 만난 우리 둘은 손을 맞잡고 환호했다. 마치 오랫동안 헤어졌던 형제자매를 다시 만난 기분이었다. '노잼 공간인 직장이 원래 그렇지, 과한 기대는 옳지 않아' 라고 생각했던 지난 날들이 일시에 보상 받는 느낌이었다. 벽 보고 말하는 그 느낌에서 천연사이다를 마신 기분이랄까? 올해 같은 공간에서 일하게 된 우리 선생님 덕분에 나의 근무 만족도는 최상이다.  

우리의 대화는 비유와 은유,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들로 점철된다. 지난주, 1학년 보결 다녀오셨다가 지친 표정으로 "1학년은 기체다!"라는 명언을 남기신 우리 쌤, 6학년 영어 수업을 다녀오신 후 또 하나의 어록을 만들었다. "쌤, 오늘 어떤 남학생이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오늘 입고 오신 옷 혹시 한복이냐고 물어봤잖아요. 완전 궁금해 죽겠다는 순백색의 표정으루요. 나원참!"​

아이고, 이거 진짜 색동저고리 같기도 하네. 알록달록, 조끼까지 이거 완전 어린이 한복 디자인과 일치하는 조합이 구랴. 우리 모두는 안타까움에 혀끝을 쯧쯧찼다. 13살 어린이가 세기말 감성의 "미안하다 사랑한다 " 임수정 패션을 알 리도 없고 말이지. 이건, 뭐 위로를 해 줄 말이 없네.

그런 우리의 영어쌤이 계속 허리를 숙여 무언가를 쓰고 계시다. 자세히 보니 아이들이 잘할 때 주실 보상 리스트를 깨알같이 적고 계신 것이다. 아! 추억의 문방구 뽑기 이벤트 상품의 재현이라니! 정성 가득한 이 마음, 너무 예쁘다. 이런 양파 같은 사람을 보았나! 매력덩어리 나의 동료의 이러한 계획적 보상체제, 철두철미함에 또 한 번 놀라고 감동한다.

더불어 자기 자신의 본성에 거스르면서도 조직구성원으로서의 본분에 충실하고자 엑셀파일의 정확성을 더블체크하며 야근을 밥 먹듯 하는 이 세상 모든 인프피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효율성, 효용, 경제성만을 강조하는 이 세상에 마지막 남은 휴머니스트인 인프피들, 우리 모두 힘내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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