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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움 즐거움 Jan 03. 2024

단순 단아 단단한 오르간곡의 매력

오르간이 내 맘속으로 들어왔다.

솔, 라솔파 미~~파미레. 도~ 파~ 레~~~

미, 레미파 솔~~피미 레 솔~~피미피 솔~~

영성체 후 나오는 묵상곡을 들으며 혹시 음을 잊어버릴까 봐 급히 스마트폰을 꺼내어 선율을 적었다. 오늘은 오르간 연주가 내 마음에 들어온 역사적인 날이다. 이틀 연속 오르간에 마음을 빼앗기다니 역시 인생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그 무엇도 장담할 수가 없는 거다.

멋진 곡을 만난 기쁨에 마음이 벅차올라 미사가 끝나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렸다가 성가대석 2층 오르간 선생님께 뛰어갔다. 이건 뭐 창피고 뭐고 없었다. 멜론 검색도 안 되는 연주곡이 아닌가?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다. 다짜고짜 선생님께 오늘 영성체 후 묵상시간에 연주하신 곡의 제목이 무엇인지 여쭈어 보았다. 이건 나의 새로운 취향이 될 터였다. 이걸 모르면 두 발 뻗고 잠을 잘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친절하신 오르간 선생님은 생긋 웃으시며 곡 이름을 알려주신다. A. F. Hasse라는 사람이 지은 Organ Plelude A Major Andantino라는 곡이란다. 생전 듣지도 접하지도 못한 1809에 태어난 작곡가의 곡. 혹시 바흐가 지은 곡이 아닐까 싶었는데 멘델스존 시대의 오르간곡이구나. 오호!


어제에 이어 오르간 선생님께 두 번이나 인사를 드렸더니 쌤께서는 내게 피아노 공부를 하고 있냐고 질문하신다. 아니면 합창에 관심이 있냐고도 물어보신다. 세차게 고개를 좌우로 내젓는다. "저는 오르간에 관심이 있을 뿐이에요. 음악 전공자도 아니고 합창도 전혀 안 좋아합니다." 아래 영상의 템포는 조금 더 빠르다. 안단티노가 어느 정도 빠르기인지 가물가물.


2021년 4월 21일, 처음으로 리코더를 배우던 시절, 나는 클래식보다는 가요를 훨씬 더 좋아했다. 나는 바로크 음악을 연주해 보자고 하셨던 레슨 선생님께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렇게 말했다. "저는 바흐와 헨델 안 좋아하는데요? 그런 음악 노잼이잖아요. 그냥 가요나 배울래요." 역시 무식하면 용감하다.

리코더를 배우면 배울수록 나는 클래식 음악에 점점 빠져들었다. 인스턴트 음식에 길들여진 입맛이 나이가 들수록 점차 한정식 취향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 '아, 이거 참 편안하네. 나름의 재미가 있잖아! 순한 맛이 주는 오묘한 매력이 있단 말이지.' MSG에서는 느낄 수 없는 깊은 감칠맛이라고나 할까?

아, 이 곡은 정말 새해 첫 곡으로 너무 적합했다. 이 곡은 내가 살아있는 오늘이 진짜 감사한 주님의 은혜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 곡이다. 내 인생의 첫 오르간 최애 곡을 만난 날, 2024년 새해 벽두, 나의 플레이리스트에 오르간 폴더가 생겼다. 매년 새해 첫날이 되면 이 음악이 자동 재생되겠지? 단순, 단아, 단단한 오르간 음악이 참 좋다. 내 인생의 BGM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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