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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움 즐거움 Jan 11. 2024

오늘은 우리가 일일 한글선생님

한국어 능통자 원어민쌤의 숨겨진 실력

방학 중 영어 캠프 시간, 오늘 수업은 악기 이름 배우기다. 무슨 악기를 알고 있냐는 물음에 너도 나도 대답을 한다. 피아노, 리코더, 기타, 드럼까지는 좋았다. 복병은 바로 실로폰이었다.

실로폰이라는 아이들의 대답에 미국에서 오신 우리 원어민 선생님이 멈칫하신다. 선생님이 못 들으신 줄 알고 더 크게 목소리를 내는 아이들, 쌤은 빙긋이 미소만 지어 보이신다. 그리고 실로폰의 영어식 발음은 자일로폰, 또는 자일라폰이라는 말씀도 덧붙이신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익숙한 악기가 다르게 발음되니 신기한 눈치다. '하모니카' 역시 그렇다. 한 아이가 목청을 높여 하모니카를 외쳐도 아무 반응이 없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2음절 강세의 낯선 소리가 들린다. "오~! 하~마알~니카!".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다.

제일 충격적인 대박 사건은 우쿨렐레다. 우리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발음에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영어로는 유 컬 레이 리, 이렇게 발음한다. 하와이식 발음에서 빌려왔기에 그런 듯하다. 파파고에게도 물어본다.

재작년부터 우리 학교에 근무하고 계시는 원어민쌤, 처음 이 분을 뵈었을 때부터 한국어 이해 능력이 상당한 수준이었다. 알고 보니 어렸을 때 한국 사범님께 태권도를 배웠다고 한다. 우리말로 차렷, 준비, 발차기 등등을 익숙하게 접한 터라 한국어가 친숙하여 대학교 때에는 한국어를 부전공하기까지 했단다. 요즘은 TOPIC 시험을 준비하며 한글 쓰기 공부에도 열심이다.

내 생각에 이 분 언어 천재 같다. 비정상회담에 나오는 패널들처럼 우리말에 능통하시다. 하지만 평소에는 이 능력을 숨기고 계신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오늘은 무슨 맘이 들으셨는지, 미국 선생님의 숨겨진 한글 실력을 발휘하신다. 삐뚤빼뚤 최선을 다해 한국어를 쓰며 아이들의 이해를 도와주려고 노력하신다.

원어민쌤의 놀라운 한국어 실력을 알게 된 아이들은 흥분의 도가니다. 혹시라도 쌤이 글씨를 틀리실까 봐 난리가 난다. 그게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고 소리를 지른다. 어려운 받침이나 이중모음 쓰기를 아슬아슬하게 통과하면 다 함께 박수를 치며 기뻐한다.

일일 한국어 선생님이 된 아이들은 더 큰 목소리와 적극적인 자세로 수업에 참여한다. 어른을 도와주는 본인들의 모습이 대견하고 뿌듯했나 보다. 필기하라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스스로 노트를 펴고 단어를 쓰며 외우고 있다. 이럴 수가! 자발적 학습의 현장을 두 눈으로 목격한다.

칭찬은 원어민 선생님을 춤추게 한다. 아이들도 외국 선생님께 일일 한국어 선생님이 되어드렸다는 뿌듯함 가득이다. 서로가 잘 되기를 바라며 응원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 우리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참다운 기쁨을 느끼는 존재들인가 보다. 배움의 열정이 가득한 공간에서 나도 함께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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