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움 즐거움 Mar 12. 2024

시무가악 끝판왕

진짜가 나타났다

무계획 여행의 백미는 예상치 못한 만남에 있다. 생각지도 보너스 같은 기쁨 말이다. 모든 여행에서 의미있는 순간은 결국 사람으로 귀결되는 듯. 이름난 맛집, 장엄한 풍경, 멋진 예술품도 모두 훌륭하지만 영감을 주는 단 한 명의 사람과의 만남과는 비교할 수 없다.

나에게도 최근 그런 선물같은 순간이 있었다. 무려 십 여년이 이상 태극권을 수련해 오신 약사님을 우연히 뵙게된 일, 그리고 그  분이 다니시는 도장을 구경한 일 모두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약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계신 분이 무예 연마하시고 계시다는 것도 놀라웠는데 약국 한 쪽 벽면에 손수 지은 시가 여러 편 걸려있다. 아니 저건 다 뭐죠?

알고보니  이 분은 이미 두 권의 개인 저서를 펴내신 등단 작가셨던 것. 본업을 충실히 해 나가시는 틈틈히 대학 부설 평생교육원에 다니시며 평소에 약사로 일하며 만난 환자들, 동네 분들 이야기를 엮어 책으로 만드셨다고 한다.

그 중 내 마음에 깊이 들어온 시 한 편을 여기에 기록해본다.


<제목: 차상위>


어리디 어린 아줌마 / 아이 한 명은 업고 / 한 명은 보듬고 들어서는 데 / 기침 감기가 심해서 / 가루약 물약 두 가지 조제해 드리고 / 팔천원 청구했더니 / 깜짝 놀라는 아줌마 / 약사님 저 차상위인데요 /의료보험 약값 500원만 내면 혜택을 볼 수 있는 차상위 2종/ 앗차 / 배려 깊지 못한 나의 불찰로  / 심기 불편하게 해드린 떨떠름함이 / 종일 / 목젖을 누른 하루​ (차용원 약사님 문집 중에서)


작은 에피소드를 엮은 것 뿐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인간에 대한 관심과 궁휼함 없이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글이었다. 사람에 대한 따뜻하고 애정 어린 눈빛을 가진 이의 글은 그 글을 읽는 순간 우리 마음을 무장해제시킨다. 찡한 감동을 준다.

계산대 옆에는 단소, 대금, 소금 악기가 도대체 몇 개인지 셀 수가 없다. 약사님, 도대체 못하시는게 뭐죠?

이쯤되면 팔방미인, 아니다 팔방미남 인증이다. 연습하고 계시는 저기 저 악보의 두께는 음악에 대한 이 분의 넘치는 사랑을 보여준다. 일초도 허투로 보내지 않는 분! 이 분의 삶에는 열정이 가득하다.

시와 음악, 그리고 무예까지. 진정한 시무가악의 끝판왕을 만났다. 나는야 INFP,  우연 가득한 삶 속에서 이런 멋진 이웃을 발견하는 일은 참 즐겁고 신나는 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신학기 다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