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움 즐거움 Apr 28. 2024

한 편의 시와 같은 정원

1세대 조경 전문가 정영선 작가전

봄날과 어울리는 멋진 테라스를 가진 곳, 국립 현대미술관 서울관이다. 창 밖으로 보이는 나무 한 그루까지 예술적인 이곳은 내가 서울에서 제일 좋아하는 곳이다. 작품을 감상하는 일도 좋지만, 인왕산이 내려다보이는 저 풍경은 진짜 힐링 그 자체다.

아시아 선수촌, 선유도 공원, 여의도 샛강 생태 공원, 마곡 서울 식물원. 이 장소들의 공통점이 있다. 모두 우리나라 1세대 조경 전문가 정영선 작가님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정영선 작가님의 반세기 조경 역사를 소개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평소라면 아무 생각 없이 스쳐 지나갈법한 야외 종친부 마당과 지하 1층의 중앙정원이 정영선 작가님 조경 작품인 걸 알게 된 순간 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고사리, 할미꽃, 노루귀 등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토착 고유 식물들로 꾸민 중앙 정원은 한국자생식물에 대한 작가님의 애정을 잘 보여준다.

예전에는 호텔, 대학교, 종합 병원의 조경이 모두 천편일률적이었다고 한다. 똑같은 소나무, 멋들어진 꽃으로 화려한 정원을 꾸미는 것을 최고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조경에 대한 개념이 모호했던 시기에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선생님의 생각은 달랐다.

아산병원의 조경의뢰를 맡은 정영선 선생님께서는 이러한 기존의 관습을 답보하지 않았다. 대신 사람을 중심에 두는 정원을 만들고자 했다. 선생님이 만들고 싶으셨던 대학병원 정원은 어떤 곳이었을까? 청천벽력 같이 발생한 질병 소식에 억장이 무너지는 환자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소리 내어 울 수 있는 정원이었다. 환자를 돌보다 지친 보호자가 힘든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는 안식처가 되기도 하는 곳, 회복 단계에 있는 환자가 재활 치료를 하며 거닐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선생님이 만들고자 했던 조경의 모습이었다.

조경은 땅에 쓰는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고 깊은 울림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섬세히 손질하고 쓰다듬고 가꾸는 정원들이 모두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고 치유와 회복의 순간이 되길 바랍니다.
(정영선 )

선생님은 공간이 갖는 상징성과 목적성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연구하여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탐구하는 분 같다.

시대를 앞서 나간 정영선 선생님의 삶을 알게 되어 참 좋다. 모든 건 사람에게서 시작되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단순하지만 중요한 진리를 또 한 번 깨닫는다. 정원이 주는 위로와 공감의 힘은 그것을 설계한 사람의 따뜻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된 하루다.

매거진의 이전글 선생님의 숙제 검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