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수업 끝나고 양치하려고 화장실 다녀오는데 복도 끝에서 분주히 걸어오는 친구쌤을 발견했다. 두 손을 높이 들어 만세 포즈를 취하고는 반짝반짝 흔들며 인사를 했다. 곧 친구도 똑같은 포즈를 취한다. 멀어서 보이지는 않지만 내게 무슨 말을 하려는 모양이다. 양치컵을 잠깐 창틀에 내려놓고 친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왜 이리 바빠? 어디 다녀오는 거야?"친구쌤의 얼굴에 피곤함이 가득이다. 내일 있을 학부모 연수에 업무 담당자라 그걸 준비하는 것 같다. 내게 수업 시간을 바꿔 달라고 하기에 이유를 묻다 알게 되었다. 해금과 가야금, 첼로, 그리고 해설자 총 4분이 무대를 꾸민다고 한다. 그래서 행사장에 노트북을 설치하고, 출연자들로부터 PPT 영상을 받아 빔 프로젝터를 쏘아 보며 준비를 했던 것이다.
"야, 너 근데 합창반이 쓰던 마이크 어디 있는지 아냐?" 친구가 내게 묻는다. 방송실에서는 다른 마이크만 있고 음악 연주에 사용하면 좋을 이 고급 마이크는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는 것이다. 으흐흐. 내가 알지롱.그건 거기 없는 게 당연해. 따라오렴, 내 친구. 졸업식, 입학식 행사를 하며 스탠드형 마이크가 어디 있는지 어깨너머로 본 것이 생각이 난다. 너 오늘 임자 제대로 만난 것이야. 우리는 함께 별관 3층 체육관 옆 기계실로 갔다. 여기에 반가운 스탠드 마이크와 합창반용 '고급'마이크가 있다.
"내일 첼로, 해금이랑 가야금 연주자 세 분이 오시나 봐. " 친구가 말을 꺼낸다.학부모 연수의 주제가 음악과 미술의 만남인듯하다. 이거 완전 내 관심 주제인데? 흐엉. 듣고 싶지만 일과 중이라 어쩔 수 없다. 수업을 바꾸면 올 수는 있는데, 그냥 쉬는 시간에 잠깐 내려오는 수밖에. 친구랑 나랑 두 손 가득 마이크와 스탠드를 가지고 1층으로 내려왔다.
"근데 너 시청각실 열쇠는 가지고 가지고 있는거지?" 제발 가지고 있다고 말해주려무나, 친구여. 나 힘들다고. ㅋㅋㅋ 얼른 끝내고 싶단 말이다. 마음의 소리로 말했다. "아니, 이럴 줄 모르고 반납했지. 아, 조금 더 있다가 갖다 줄걸. "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구나. 그럼 그렇지. 흑흑...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했더니 도저히 교무실에 갔다 올 마음이 생기지 않네. 그때 내게 인사를 해 오는 아이들이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방과 후 교실을 기다리는 아이들이다. 모두들 스마트폰 게임 삼매경이다. "교무실에 가서 여기 열쇠 좀 빌려 올 사람! " 제발 한 명만이라도 손 좀 들어 주렴. 아무도 손을 안 들면 어쩌지? 그때 구세주 어린이 한 명이 번쩍 손을 든다. 고마워, 아가. 다행히 1분 후 도착한 열쇠. 황급히 마이크 단자를 찾아 본다. 단상에 마이크를 설치하고 나니 "삐~" 하는 소리가 계속되는 거다. 친구와 나는 서로의 얼굴을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포트를 바꾸어 보아도 여전하다. 우리의 노력은 물거품인거니.
"이거 내일 못 쓰겠는데, 그냥 마이크 없이 해도 다 들리지 않을까?" 날씨는 덥고. 땀은 나고 힘들게 가져 온 마이크는 말썽이고 짜증이 나기 시작하려는 데, 친구의 눈빛에서 번쩍 섬광이 지나가는 게 보였다. "야, 나 생각 났어. 소리가 지금 최대라 너무 커서 그런 거 아닐까?" 친구는 무엇인가 떠오른 듯 벽 뒤에 숨어있는 마이크 볼륨 조절 버튼을 이리저리 만져보기 시작했다. 이야, 삑소리가 안 난다. 야호! "하나, 둘, 하나, 둘, 마이크 테스트." 이제 좀 들어 줄 만한 소리가 되는구만. 신규 때 하던 방송반 일이 이제는 기억도 안 나는 나이가 되었다며 멋쩍어 하는 친구에게, 넌 그래도 나보다 낫다며 위로를 건넸다. 나 같았으면 그냥 아까 삑 소리 났을 때 포기했을 거야. ㅋㅋ
너랑 나랑 둘이 합쳐 일인분의 몫을 해냈구나. 덤앤더머 형제여. 백지장도 맞들었더니 낫다는 걸 느낀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