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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움 즐거움 May 28. 2024

장점을 발견할 때 우리는 자라기 시작한다.

창비출판사 너의 장점은?

나는 학부모 공개수업 때, 친구 장점 찾아주기 수업을 많이 한다. 이 수업을 하기 위해서는 한달 전부터 공을 들여야 한다. 그냥 단순히 "줄넘기를 잘한다. 노래를 잘 한다." 와 같은 기능적인 측면에서의 칭찬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지만 우리가 원하는 건 사실 이걸 넘어서는 '칭찬'이다. 그 사람을 오래 들여다보며 상대방의 반짝 빛나는 장점을 발견하는 일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애정'이 필요하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시간'의 측면이다. 내 주변의 사람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고, 잘 관찰하여 행위 이면의 측면을 '발견'해 내는 일, 사실 이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여기 남의 좋은 점을 잘 발견해 내는 장기를 가진 친구가 있다. 어린이 책 <너의 장점은?>의 주인공은 초등학교 5학년 남학생 김서준이다. 가족 구성원 안에서 이 아이는 '관찰을 잘하는 아이, 그래서 상대방의 장점을 잘 찾는 아이'이다.

5학년 남자아이가 묘사한 1학년 막내 여동생은 '솔직함'이다. 그러나 이 솔직함이 늘 우리 서준이에게 유쾌한 정서를 가져다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준이는 서윤이를 이렇게 평가한다.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놓는 건 어려워. 가끔 연필처럼 뾰족한 서윤이 말에 찔려서 화가 나고 서운할 때도 있지만, 나도 용기를 내서 서윤이처럼 솔직해지고 싶어. 그럼 우물쭈물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내 마음을 잘 전할 수 있을 거야.(p.19)

시간에 쫓기는 바쁜 워킹맘 엄마를 '판단이 빠른 사람'으로 명명할 때에는 그 안에 숨어 있는 엄마의 독재자 같은 모습 너머의 고단함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건 하나를 고르는 데에도 시간이 한참 걸리고, 회사에서도 다른 사람과 그리 대화를 많이 나누지 않는 아빠를 '집중력이 높은 사람'으로 표현하는 것도 그렇다. 아빠가 세탁해 준 나의 실내화는 얼룩 하나 없이 깨끗하고, 엄마와는 달리 내가 휴대폰을 하든 컴퓨터를 하든 크게 뭐라고 하지 않는 아빠의 모습을 '나를 존중하는 태도'라고 받아들이는 속 깊은 첫째 아들 서준이.

서준이는  반려견 코코를 '귀여워'하고, 같은 수학 학원에 다니는 친구 준우를 '공평해'라고 느낀다. 준우는 피자 한 조각까지 정확하게 나누고, 즉흥적인 서준이와는 다르게 무슨 일이든 계획적으로 일정을 처리한다. 서준이는 준우가 어렵고 힘든 일일수록 먼저 나설 때가 많은 멋진 아이인 걸 알아챈다.

'똑같이 나누는 것만이 공평한 건 아니겠지. 같이 놀 때 잘 따라오지 못하는 친구를 기다려 주고, 먼저 손을 건네는 게 진짜 공평한 거야. 좋은 것일수록 양보하면서 더 다정한 사이가 되고 싶어.'(p.27)

우와. 여기 완전 감동이다.난 이 부분을 읽으며 이 책이 나오면 러 권 사서 학급 문고에 비치하면 좋겠다고 마음 먹었다.

사실 담임 선생님을 보고 '약속을 잘 지켜', 공부에는 큰 관심이 없지만 연예인 흉내를 잘 내는 친구를 가리켜 '유머 감각이 뛰어나' 라고 일컫은 부분은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자주 가는 미용실 실장님을 '호기심이 많아'라고 표현한 건 좀 의외였다.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임.

실장님은 호기심이 많아서 내 머리카락으로 새로운 시도를 할 때가 있어, 저번에는 새로 나온 스타일의 파마를 공짜로 해줬지. 그런데 너무 복슬복슬해져서 한동안 학교에서 친구들한테 푸들이라고 불렸어. 그때부터 처음 하는 시도는 당분간 금지야.  (p.46)

여기까지 보면 이야기의 결말이 새드엔딩이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 서준이는 한 마디를 더 덧붙인다. 이 책의 특장점이 바로 여기다.


솔직히 내가 연예인처럼 잘생긴 것 같지는 않아. 하지만 산뜻하게 머리를 자르고 나면 새 옷이나 새 신발을 신은 것 같아서 자신감이 붙어. 어쩌면 실장님이 머리카락뿐만 아니라 부끄러움도 잘라 내 주나봐. 다음에는 실장님 마음대로 하도록 한 번 더 머리를 맡겨 봐야지.

나도 송지민 실장님처럼 호기심이 풍부해지면 좋겠어. 쓸데없는 생각만 한다고 혼나는 날도 있지만, 유명한 과학자나 발명가도 엉뚱한 생각을 많이 할걸? 남들이 먼저 관심 가지지 않는 숨은 장점을 내가 먼저 들여다봐 줄래.
너의 장점은?(p.46-47)

이 책을 칭찬하고 싶은 많은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 인상적인 측면은 주인공이 가진 남다른 관찰력을 나도 닮고 싶기 때문이다. 이 관찰력은 하루 이틀 안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진득하고 끈덕진 시간의 힘이 필요하다. 그 사람에 대한 단편적인 분석이 아니라 상황에 대한 이해를 수반한 '종합적인 평가'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사람을 '싫다/좋다' 로 나누지 않는다. 난 이게 참 맘에 든다.​​

"누구나 장점은 꼭 있어!"

장점을 발견할 때 어린이는 자라기 시작한다.

사실 어린이만 이 책을 보면 좋을 것이 아니다. 나부터 이 책을 읽고 많이 배웠음. 요즘 비폭력대화를 접하며 배운 대화 원칙 중 '자세히 관찰하기,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봐주기'가 있다. 알고보니 이게 바로 바로 이 책의 주인공 서준이가 하고 있는 부드러운 초식 동물, 기린의 언어였다. 서준이는 미용실 실장님을 보고 배우는데 말이지, 나도 이 책의 주인공 서준이를 좀 닮아보고 싶다. 이 책 진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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