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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움 즐거움 May 29. 2024

언더핸드 오십 개, 오버핸드 오십 개

부장님, 저도 기가 빨려요

아침에 출근하여 메신저를 켜니 교감선생님께 보결 요청 안내 메시지가 들어와 있다. 6학년 부장님이 오늘 아파서 못 나오셨단다. 재빨리 내 이름이 몇 교시에 쓰여있는지 살폈다. 아, 급식시간이구나. 미리 예정된 일정이 아니라 6학년 선생님들이 본인들 교과 시간에 돌아가면서 보결을 하시고, 우리 과학쌤만 1-2교시 연차시 당첨이다. 아이고, 쉬는 시간에도 못 내려오시겠군요.

작년에 5학년 영어 전담을 했던 차라 모든 아이들의 얼굴이 다 익숙하다. 콩나물같이 자라는 아이들이라 몇 개월 못 본 사이에 훌쩍 키가 컸다. 얼굴은 그대로인데 말이지. 아니 어떻게 급식실에서 점심 먹고 들어간 교실 보드게임을 하는 아이들이 한 명도 없네?

대신 모두 풍선 불어서 동그랗게 원을 만들고 삼삼오오 모여 배구 토스 연습 삼매경에 빠져있다. 자기 자리에 앉아서 연습장에 그림 그리는 여자아이 한두 명, 기다란 친구 머리 뒤에 붙어서 미장원 놀이를 하는 아이들 두 세명을 빼고는 열댓 명이 모두 풍선 배구에 열을 올리는 모습을 보니 왜 보드게임을 안 하는지 이해가 간다. 여기 모두 에너지 뿜뿜한 아이들만 모여있네.


한 아이가 날 보고 체육시간까지 해주면 안 되냐고 묻는다. 친구들, 5교시는 딴 선생님이란다. "쌤은 리코더 가르치러 가야 해." 했더니 아쉬운 표정이다. "너희 배구 잘하는 거니?"물었더니 담임선생님이 언더핸드, 오버핸드 토스를 각각 50개씩 시키신단다.  


그 반의 개그 캐릭터를 담당하는 아이가 앞에 나와 담임 선생님 흉내를 낸다. "쌤, 우리 담임선생님 여자애들한테 서브 넣으실 때는  요래요래 힘 빼고 공을 넘겨주시는데요. 남자한테 공 주실 땐 점프 뛰며 한 손으로 거의 이렇게 스파이크 넣듯 주세요! 그걸 어떻게 받냐고요!" 아무리 봐도 너희 담임쌤, 어깨 부상으로 오늘 못 나오신 것 같다. 내가 배꼽을 잡고 웃음을 터트리자 아이들은 더 신이 났다. "야, 그건 남학생 너희들이 근력이 더 좋아서 그러는 거지!" 그랬더니 " 하긴, 우리 반 여자애 누구누구는 공만 날아가면 어머나, 끼야악, 무서워. 이러고 도망가긴 하더라구요." 너희가 김연경 선수를 못 봐서 그러는구나.

사실 이 반의 주인 6학년 부장님은 체육만 잘하시는 게 아니다. 저 꽃도 부장님이 손수 한 땀 한 땀 만드신 것.

처음 이 교실에 들어오면 남자 선생님 교실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이 분의 미술지도 실력을 보면, 그동안 지나간 내 제자들에게 괜히 미안해진다. 우앙, 너무 이쁘잖아! 이뿐이 아니다. 피아노 실력은 거짓말 조금 보태어 우리 학교 조성진이다. 쇼팽 왈츠를 치는 뒷모습에 우리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그냥 뭐 사기캐다.

목소리는 성우 뺨치신다. 국어시간에 시를 읊으시면 뭐랄까 열공 안 할 수가 없을 듯!극 E 외향적인 아이들과 함께 한 한 시간이 아득한데 우리 부장님, 어쩐대요. 활기가 넘치다 못해 기가 빨리는 느낌이다.

한 명, 한 명 보면 너무 예쁘고 재미있는데 투 머치 토커들 열 댓명과 함께 있으니 귀가 아프고 정신이 아득하다.

섬세하고 자상하신 우리 부장님, 아무래도 배구 너무 열심히 지도하시다가 병 나신 것 같다.

이리 활발한 개구쟁이들과 복닥복닥 살아내시려니 어찌 목이고, 어깨고 남아날 수가 있을까 싶다. 부장님, 부디 빨리 쾌차하세요. 아니다. 천천히 치료 다 받고 나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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