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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코더곰쌤 Oct 26. 2024

쌤은 도대체 정체가 뭐예요?

나는 리코더를 부는 곰쌤이란다.

올해는 교과 전담으로 5학년 음악과 3학년 과학을 가르친다. 작년에는 5학년 영어와 6학년 담당했다. 그러다 보니 복도를 지나가면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인사를 한다. 그런데 각자 부르는 호칭이 다르다. 음악쌤, 과학쌤, 영어쌤 이렇게 나를 부르다 보니 형제자매가 있는 아이들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내게 묻는다.


"쌤, 도대체 정체가 뭐예요?"

교과 전담은 학교 사정에 두세 개의 과목을 함께 맡기도 한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유머로 대처하기로 했다.


"나 몰라?리코더를 좋아하는 곰쌤이잖아!"

곰쌤은 이 학교에 처음 전근 와서 1학년 담임할 때 만든 이름이다. 국어 교과서 삽화에 나온 동물 중 하나를 나의 부캐로 정했다. 그 때부터 나는 곰쌤이 되었다. 평상시에는 순하다가 화가 나면 폭발하는 성질을 가진 곰 말이다.

아기들과 함께 하는 담임 생활은 시트콤처럼 즐거웠지만 리코더를 가르칠 수 없어서 아쉬웠다. 대신 피아노를 치면서 맨날 노래만 불렀다. 얼마 후 코로나가 끝나 음악 시간에 리코더를 자유롭게 불 수 있을 때쯤 운 좋게 교과실 멤버가 될 수 있었다.

올해는 현임교에서 근무하는 마지막 해다.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교과 전담을 맡다 보니 오해 아닌 오해도 받다. "자기 혹시 어디 아파? 담임 안 하고 왜 교과를 해?"묻는 분도 계 셨다. 몸이 아프거나 학기 중 휴직할 사정이 있는 사람이 주로 교과를 맡기 때문이다. 교무부장이나 연구부장 같은 업무 전담팀도 아닌데 교과를 맡으니 이상하게 생각하셨나 보다. 그때마다 나는 교과실 뒤에 늘 비치하고 있는 리코더를 가리킨다.

"저 리코더 배우려고 레슨 받는 것 아시죠?음악 전담하면서 전문성을 더 키우고 싶어서 교과전담 지원했어요!"

작년 이맘 때 난 생애 최초로 리코더 공연을 했었다. 낮이고 밤이고 똑같은 곡을 계속 연습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떨렸다. 그래서 관객은 쳐다도 못 보고 바닥만 보며 악기를 불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나 싶은데 그 당시는 그게 최선이었다. 내년에 전근을 가면 교과보다는 담임을 맡을 확률이 훨씬 높다. 얼마 안 남은 기간동안 최선을 다해 리코더를 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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