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근무하는 학교에 발령 받은지 1년차 때의 일이다. 당시 옆 반 쌤은 개인 피아노를 교실에 가져다 놓고 연습하는 음악 애호가였다. 방과 후 들리는 베토벤이나 리스트의 피아노 곡은 정말 멋졌다.
가끔씩 쌤은 6학년 부장님과 함께 포핸드 연탄곡을 연주하기도 했다. 아마도 쇼팽 곡이었던 것 같다. 이렇듯 남이 들려주는 피아노 곡 덕분에 내가 클래식을 좋아했었다는 사실을 새삼 기억해냈다. 아, 정말 아름다운 선율이었다.
이 때만 해도 내가 직접 음악을 '연주'할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못했다. 철저한 감상자 포지션이었다. 그래서 옆 반쌤이 들려주는 음악이 내 플레이리스트를 가득 채웠다. 가을방학의 속아도 꿈결, 김동률의 그 여름의 끝자락, 쇼팽과 리스트, 라흐마니노프가 그 당시 내가 듣던 음악이다. 그러다가 김동률 님 앨범에서 피아니스트 김정원 선생님의 연주를 듣고 충격에 빠졌다. 아, 나 클래식 들어야겠다.
옆 반 선생님은 피아노만 잘 치는 것이 아니었다. 기타와 첼로, 가야금 등 다른 악기도 잘 다루었고 자동차 트렁크에 이 모든 악기를 다 넣어다니며 매일 매일 서로 다른 악기를 배우러 문화센터에 다니셨다. 태어나서 이렇게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은 또 처음이었다. 월화수목 악기를 바꿔가며 수준급으로 연주하는 내 친구는 발레와 폴댄스로 음악의 아름다움을 몸으로도 표현하는 친구였다.
알고보니 악기연주는 코로나 때문에 시작한 두 번째 취미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전에는 발레와 폴댄스를 배웠단다. 보통 학원들이 주1회 출석을 기본으로 하니 주3회를 배우고 싶은 마음에 서로 다른 학원 3개를 등록했었다는 대답을 들었다. 입이 떡 벌어졌다. 이 사람 열정이 장난이 아니었다. 아, 하나를 열심히 하는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옆반 쌤은 내 배움에 마중물이 되었다.나 역시 이 친구처럼 악기를 배워야겠다고 다짐했다.
이 때는 마침 내가 알토 리코더에 딱 입문한 시점이었다. 이제는 감상 뿐 아니라 직접 연주하며 내 손으로 음악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행하는 음악은 수동적 듣기보다 백배는 더 재미있었다.
조성진이나 임윤찬의 곡을 유튜브로 듣는 것도 좋지만 이보다도 내가 부는 리코더 연주가 훨씬 더 재미있고 감동적이었다. 가끔 우리들이 깔깔대며 연주했던 그 때가 생각난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그립고 고마운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