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마스터클래스 같은, 심리학의 슈퍼비젼 같은 책
고백하건데 나는 교사가 쓴 교실이야기를 잘 못 읽는 사람이다. 너무 아프기 때문이다. 교실속 이야기는 무서운 영화를 보는 것 마냥 내 안의 불안을 자극했다. 좋은 이야기, 감동적인 이야기를 읽는 것도 영 힘들다. 저 선생님은 저렇게 애쓰셔서 힘듦을 이겨냈는데 나는 나약한건가 싶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까지는 다소 용기가 필요했다. 쉬려고 책을 펴고 독서를 하는건데 이건 무슨 시사물이나 다큐를 보는 느낌이랄까. 책 표지를 넘기기까지 꽤 오랜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이 책은 내게 힘겹게 왔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 책은 달랐다. 다양한 저자가 집필한 옴니버스 형태의 구성이라 괴롭고 힘든 이야기, 그걸 극복한 이야기, 실패담, 성공담이 한 권에 다 있었다. 마치 노숙도 소매치기도 모두 겪은 유럽여행을 다녀온 느낌이 든다. 책을 읽기까지가 제일 어려웠고 읽으면서는 눈물을 흘렸다. 뒷맛은 개운하고 뽀송뽀송 그리고 여운이 아주 길다. 얇은 책인데 대하소설 읽은 것처럼 묵직하다.
평소 짓궃기로 소문난 옆 반 남자아이 하나가 내 뒤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두 손을 펴서 앞으로 쭉 뻗고 손과 엉덩이를 동시에 시계방향으로 돌리면서 순간 참을 수 없는 모멸감을 느꼈다.
그 이후 아이는 도구를 만들어 내 사물함을 뜯으려 했고 친구의 물건을 훔쳐 본인 가방에 숨겨 놓았다. 급식에서 맛있는 음식이 나오면 몇 개씩 숨겼다. 교실에서 약한 친구에게는 비아냥대고 무시하면서 강한 친구가 뭐라고 하면 어머니께 일렀댜.
아, 선생님 진짜 얼마나 힘드셨을까. 어이없는 상황들, 말도 안되는 민원, 선생님들의 아픔과 고통이 다 느껴진다.
현실 속에서 반복되는 책 속의 사례들이 내 마음의 아픈 구석들을 자꾸 건드린다. 아, 이거 진짜 PTSD 올 것 같은 걸.
학년 초부터 일주일에 평균 1.5회 전화했고 단점만 말한다는 이유였다. 금쪽이는 일주일에 1.5회 이상을 지각했기에 등교 여부를 묻는 전화였고 시도 때도 없이 어머니가 전화했기 때문에 우리는 자주 통화했다. "교장실에 전화하겠다."를 무기처럼 사용하며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면 "어쩔 수 없죠."라며 다음 행동을 예고했다.
나라고 이런 일들이 없었을까. 우리 반 6학년 어린이가 쉬는 시간에 아이들과 싸우고 학교에서 뛰쳐나가 일주일 동안 가출하여 연락두절 된 사연, 난 이때 2년차 신규였다. 교무실에서 만난 형사님들은 나에게 아동학대 여부를 취조하듯 조사했고 난 그 아이가 혹시라도 극단적인 선택이라도 할까봐 덜덜 떨어야했다. 학부모님들끼리 싸움이 나서 서로 편 들어달라고 전화하던 사연, 아이들끼리 다툼에 밤늦게까지 전화하던 학생의 어머니 아버지 이야기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사랑이 많은 교사였던 나는 누구를 사랑해야 할 지 사랑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향을 잃었다. (중략) 눈을 흐리게 뜨고 영혼 없는 교육자가 되어야 할 지 삐끗해서 아동학대 가해자가 될지 앞으로 나는 어떤 교사가 될까?
이렇게 교사는 무기력해진다. 목소리 큰 한 명의 학부모 때문에 모두가 피해 보는 구조다. 상처받지 않고 싶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모든 관계에 거리를 두는 내 모습을 본다. 저자의 용감한 자기고백은 내 속에 있는 깊은 트라우마를 함께 건드린다. 동시에 이 책을 읽으며 나 역시 두려움의 본질에 작가님과 함께 마주한 느낌이 들었다. 직면의 힘, 이런게 카타르시스인가. 마치 예술가의 마스터클래스를 청강하듯, 심리상담가들이 수퍼비전처럼 말이다.
나를 넘어뜨릴 수 없는 고통은 나 자신을 더욱 강력하게 만드는 법이라고 하지 않는가. 책을 통한 간접경험도 나의 성장을 촉진하는 힐링 도구가 되는 것 같다. 여기, 풀하우스와 더 글로리의 송혜교의 캐릭터를 오가는 줄타기의 삶이라니! 이런 묘사 너무 좋잖아.
결국 기승전결, 마지막 대미를 장식하는 건 이 책의 제목 '내게 온 사람'의 on의 다양한 의미다. 온은 온기, 불이 켜지다, 오다, 접속하다 등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지 않은가. 영어로 따지면 light on, connect on, come on처럼!
책과 on 되고 나서 나의 삶이 입체적으로 바뀌었다. 내게 on 많은 사람 덕에 삶의 방향이 바뀌었고 나도 조금씩 달라졌다. 나도 누군가에게 온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늘 누군가와 만난다. 모든 만남에는 의미가 있다. 그 만남이 제대로 된 의미를 가지려면 내가 그 안에서 온기를 가져야 한다. 의미를 찾는 것은 나의 몫이다.
촉촉한 흙에서 새싹이 씨앗을 움트일 수 있는 것처럼 내안의 수분을 촉촉히 간직할 것, 내가 준비되었을 때 그 만남이 더 좋은 차원의 관계로 거듭날 수 있음을 잊지말 것. 스스로 열망을 가지고 on상태를 유지하는 삶을 지향하기.
이 책이 내게 와 주어 고맙다. 그리고 이 글을 쓴 선생님들과도 지면을 통해 만날 수 있어서 참 감사하다. 내 안의 따스함도 딸깍 불이 켜진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