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봉 할아버지의 책 사랑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어렸을 때부터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문구로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온 이 문장은 안중근 의사의 명언이다. 나는 사실 이게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 안 갔다. 왜 입에서 가시가 나온다는 것이지? 책이랑 무슨 상관이야! 평생을 무슨 말인지 모르고 살아오다가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바로 우연히 접하게 된 독서왕 오광봉 할아버지의 말씀 덕분이다.
부산에 살고 계신 오광봉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얻은 사고로 한 쪽 손이 펴지지 않는 장애를 겪으며 평생을 살아오셨다. 때문에 취업도 어려웠다. 그러나 자신의 장애에 좌절하지 않고 46년간 신문을 배달하며, 독서를 통해 자기 자신의 삶을 멋지게 꾸려간 멋진 분이다.
10년 전에 '세상에 이런 일이' 프로그램에 83세 나이로 출연하신 적도 있다고 하는데, 나는 2021년 8월 31일에 방송된 부산 KBS 인터뷰 영상으로 이분을 처음 뵈었다. 할아버님은 다행히 아직도 건강하게 생활하시는 것 같다.
평소 좋아하는 명언이 무엇이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할아버지는 안중근 의사의 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을 말씀하셨다. 형극은 가시라는 뜻으로 고난이라고 의역되기도 한단다.
책을 읽지 않으면 자기 생각에만 빠지게 되고, 그렇게 지혜가 부족하면 남에게 가시 돋친 말을 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아, 독서의 이유가 바로 이것이구나!
입안의 가시는 남에게 상처를 주는 독침이었던 것이었다. 말이 독이 되어서 남을 공격할 수 있다는 말씀을 듣는데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얼굴들이 있다. 그리고 곧 나 자신의 무지의 소산으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었겠다 반성하게 되었다.
아, 우리는 얼마나 자기중심적인 존재란 말인가. 책을 읽고 다양한 생각과 관점이 존재한다는 걸 깨닫지 않으면 옹졸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광봉 할아버지는 책을 통해 지혜를 만나는 몰입의 경험 자체를 즐겁게 여기고 계셨고, 후대들에게 자신이 평생 모은 귀한 책을 모두 기증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계셨다.
신문배달로 번 돈을 모두 책을 사는 데 쓰신다는 할아버지는 진정한 부자의 미소를 가지고 계셨다. 나중에 검색해서 알았는데 예전에 '세상에 이런 일이'를 찍으러 온 피디에게 몽테뉴 수상록을 읽었느냐고 질문하셨고, 안 읽었다고 하니 '정신이 가난하네요!'이라고 말씀하셨다는 이야기를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이 모습이 절대 꾸지람이 아니라 안타까움이었다. 맛집 추천하는 이영자 씨 느낌으로 말이다. 이 좋은 걸 왜 안 읽었냐는 그 표정! 저도 그 책 안 읽었어요.ㅠㅠ 몽테뉴 수상록 꼭 읽어봐야겠다.
할아버지의 독서 범위는 인문, 사회, 역사, 예술 모든 방면에 달한다. 아침에는 철학, 점심에는 시사, 저녁에는 명언집을 읽으신다는 할아버지. 그의 추천도서는 톨스토이의 인생독본과 월든. 추천도서를 이야기해 주시는 할아버지의 얼굴은 진심으로 행복해 보였다. 자신의 지신을 뽐내고 과시하려는 것이 아니고 이 멋진 세상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자의 표정 말이다.
어제 읽은 책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이시형, 박상미 저)에 나오는 로고테라피에 따르면 '무엇을 위해', '무엇에 대해', '누군가를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발견하는 것이 내 삶에 책임감을 부여하는 일이라고 한다.
오광봉 할아버지는 책을 통해 지혜를 만나는 몰입의 경험 자체를 즐겁게 여기고 계셨고, 후대들에게 자신이 평생 모은 귀한 책을 모두 기증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계셨다. 이거 진짜 신기하다! 내가 읽은 책에서 발견한 내용을 할아버지 말씀으로 또 듣다니!
"책을 읽으면 나쁜 생각을 할 수 없어요!"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 어떻게 이 말씀을 어길 수 있다는 말인가. 92세 노인의 전하는 인생의 지혜, 책 속에 행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