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움직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내가 요즘 두 달째 하고 있는 운동이 있다. 그건 바로 태극권! 리코더 연주에 매진하던 지난 3년, 어느 정도 운지법이 자유로워지니 그다음은 소리의 질이 관건이었다. 멋진 연주들을 들어보면 연주자들마다 각각 시그니쳐 톤이 있는데, 그건 오랜 연습에서 나오는 자기만의 호흡에서 비롯된다. 나도 그런 나만의 숨을 가지고 싶었다. 때문에 복식 호흡을 더 잘하고 싶었고 상체를 이완하고 코어를 단련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주할 때뿐만이 아닌 평소 생활 속에서 복식호흡과 이완의 습관화가 필요했다.
얼마 전 아산병원 노년 내과 의사 선생님이 쓰신 '당신도 늦게 나이들 수 있습니다'란 책을 읽었는데 그분은 '아마추어 호른 연주자'시라고 한다. 여기서 느껴지는 내적 친밀감! 호른을 더 잘 불고 싶지만 실력의 한계를 느껴 괴로워하자 호른 레슨 선생님이 '호른 연습 말고 몸을 만들어라'라고 하셨다. 이 구절을 읽고 무릎을 탁 쳤다. 이거다. 리코더를 더 잘하기 위해 나도 운동을 해야겠다!
사실 태극권을 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인디스쿨' 때문이다. 라운지에 본 글인데 어떤 선생님이 학예회에 퍼포먼스형 무술을 지도해서 호응이 좋았다는 글을 올리셨고 그 게시물에 본인들도 복싱, 주짓수, 검도, 합기도 등 여러 종류의 무술을 배우고 계신다는 여러 선생님들의 답글이 우르르 달렸다. 그러다 내 눈에 띈 세 글자! 바로 태극권. 어라? 저거 내가 배우고 싶었던 건데? 도대체 태극권을 어디서 배워야 하나 마땅한 곳을 못 찾아서 시도하지 못했던 건데! 이게 바로 기회로구나!
곧바로 비밀 답글을 보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전 운동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인데요. 태극권 저도 할 수 있을까요? 서울에 사는데 도장 좀 추전 해주세요" 신기하게도 우리 학교에서 차로 16분 거리에 도장이 위치하고 있었다. 이게 웬 떡인가? 이번 학교에서 일 년 반 근무가 남았고 전근 갈 학교를 미리 알 수가 없으니 바로 지금 시작해야 된다는 결론이 나왔다. 수련시간도 마침 다섯 시 반, 퇴근 후 딱이었다. 더욱이 리코더 레슨 선생님도 계속 해외 공연이 잡히셔서 자체 방학중이라 시간적 여유도 많았다. 인디 선생님의 추천이면 의심할 필요가 없다. 그 어떤 인디선생님이 쓸데없이 바이럴 광고를 할 것이란 말인가!
왜 태극권에 대한 편견이 있지 않은가? 뭔가 모르는 '도를 아십니까?' 같은! 요가도 필라테스도 아닌, 주변에서 흔히 접하기 힘든 운동. 왠지 모르는 종교적인 색채가 있을 것 같은! 심지어 태권도 택견과 같이 태로 시작하는 운동의 일종 같기도 하고 말이다.
결론적으로 내가 경험해 본 태극권은 그 어떤 신비주의도 아니고 도교적인 색채도 띄고 있지 않은, 정말 좋은 운동이자 '동적 명상'인 것 같다. 체육관에 나간 지 한 달 만에 몸무게가 4kg나 빠졌다. 다이어트를 극한으로 한건 절대로 아닌데 워낙 움직이지 않던 몸이다 보니! 이런 예상치 못한 개이득이 있다니!ㅋㅋㅋ 코로나 기간을 거치면서 더더욱 실내에 가만히 앉아서 생활하다가 몸을 움직이는 운동을 시작했고 또 도장에 왔다 갔다 하는 것만으로도 운동이 된 것 같다. 이렇게 보면 태극권이 숨차고 땀나는 운동인가 생각하기 쉬운데 전혀 그렇지 않다. 쉬엄쉬엄 하는데도 불구하고 평소에 안 쓰던 근육들을 자극해서 그런지 운동 효과가 크다. 특히 온몸의 힘을 빼는 연습이 무척 많은데 굳어있던 몸이 말랑말랑해진 기분이다.
더욱 긍정적인 것은 오랜만에 뵌 리코더 레슨 선생님으로부터 '소리의 질이 달라졌다'는 칭찬을 들은 것이다. 아직 태극권을 접한 지 정말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런 변화가 있다니 스스로도 신기하고 얼떨떨하다. 리코더에 이어 좋아하는 또 다른 취미를 만난 것 같아 신나고 즐겁다. 무채색 가득이던 일상이 조금씩 칼라화면으로 전환되는 느낌이다. 느리지만 조심씩 앞으로 나아갈, 더욱 멋지게 변화할 내 모습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