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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심리칼럼

나솔 심리학: 장난이라는 이름의 '무례'

[나솔28기 순자 리뷰]: 시청자의 시선으로 읽는 순자의 무례함.

by 심리한스푼

I. 서론: 우리 주변에도 있는 ‘장난이라는 이름의 무례’

살다 보면 꼭 한 명쯤은 있다.

본인은 “장난이었어”라고 말하는데,

듣는 사람은 도통 웃을 수 없는 사람.

놀리는 건 가벼운 농담이라고 주장하지만,

정작 타인이 비슷한 수준의 말만 해도 울컥하고 화내는 사람.



직장에서도, 연인 사이에서도,

심지어 친구 사이에서도 이런 장면은 반복된다.

“야 너 진짜 인기 없겠다?”라고 말해놓고

상대가 잠시 정색하면 “아 왜 그래~ 농담이었어!”라고 덧붙이는 식의 패턴 말이다.


대부분은 그저 피곤한 일화로 흘려보내지만,

어떤 관계에서는 이 작은 무례가 큰 금을 만든다.

그리고 바로 이런 장면을,

나는 솔로 28기 순자와 상철의 갈등에서 목격했다.


나솔 28기는 종영했지만,

그 안에서 드러난 감정의 충돌과 심리적 역학은

우리가 실제 인간관계를 바라보는 중요한 렌즈가 된다.


나는 이 장면을 단순한 예능 놀거리로 넘기기보다,

한 사람의 표현 방식이 어떻게 관계를 무너뜨릴 수 있는지

그리고 왜 시청자들이 순자에게 유난히 예민한 반응을 보였는지를

심리학적 시선으로 해부해보고자 한다.



II. 문제의 장면: ‘2순위’, ‘동네북’, ‘쉬운 남자’라는 말들



순자는 상철에게 반복적으로 도발적 장난을 날렸다.

“만인의 2순위”
“만인의 꿩 대신 닭”
“동네북”
“쉬운 남자”

이 말들을 한 번에 듣는다면 누구라도 기분이 상할 법하다.

특히 ‘2순위’나 ‘꿩 대신 닭’,

무엇보다 '쉬운 남자'라는 표현은

상대의 가치, 매력, 사회적 지위를 희화화하는

악의적인 프레임을 가진 언어다.



문제는 이 발언들이 연속적이었다는 점,

그리고 순자가 이 모든 말을

장난의 테두리 안에 넣었다는 점이다.


상철이 결국 참다 참다

“적당히 해야지.
다 받아준다고 그게 전부라고 보이면 안 되지.”

라고 말하자,

순자는 즉시 울컥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를 떠났고

인터뷰에서는

“갑자기 화내서 너무 무서웠다.”

라는 식으로 상황을 설명했다.


시청자 입장에서 이 장면은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정말 갑자기였을까?”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심리학적 분석이 시작된다.



III. 행위자–관찰자 편향: ‘나는 상황, 너는 성격’의 비정상적 해석 구조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심리적 편향에 대해,

행위자–관찰자 편향(Actor–Observer Bias)으로 설명한다.

이 편향은 귀인이론에서 가장 유명한 현상 중 하나로서,

내 행동은 의도로 판단한다.

“난 장난으로 한 말이야.
나쁜 의도 아니었어.”

반면 남의 행동은 성격으로 판단한다.

“상철은 뜬금없이 화내는 사람이네.”


이 비대칭은 인간관계에서 가장 많은 갈등을 만드는 요소다.

순자는 자신의 말들은 “말괄량이 기질”, “장난기”로 해석했다.

하지만 상철의 반응은 “무서운 사람”으로 해석했다.

순자는 자신과 상철에게 다른 기준으로 적용한 것이다.


문제는 순자의 이중 기준이 의식적이기보다는

무의식적으로 굳어진 지각의 틀(perceptual frame)로 보인다.

자신의 행동을 그저 발랄함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상대에게 어떤 정서적 충격을 주는지

스스로 잘 인지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심리학에서 말하는

메타인식 결여(Lack of Meta-awareness)다.

자기 행동이 타인의 감정을 어떻게 흔드는지를

‘위에서 바라보는 관점’이 부족해질 때

갈등의 골은 깊어진다.



IV. ‘경계 침해’와 자존감 공격: 왜 상철은 폭발했는가

‘만인의 2순위’, ‘꿩 대신 닭’, ‘쉬운 남자’, ‘동네북’

이 단어들은 공통점이 있다.

상대의 자존감을 직접적으로 건드리는 표현이라는 점이다.


관계 심리학에서는 이를 경계 침해(boundary violation)라고 부른다.

인간은 각자 마음 안에 ‘존중받아야 할 영역’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영역을 가볍게 침범하면

상대는 의도와 상관없이 공격받았다고 느낀다.


특히 누군가의 ‘매력’, ‘우선순위’, ‘존재 가치’를 희화화하면

이는 단순한 놀림을 넘어

정체성(identity)을 건드리는 행동이 된다.



상철의 “적당히 해야지”라는 말은

단순 불쾌함이 아니라

“내 가치를 깎아내리는 말이 너무 반복됐다”는 신호다.

그런데 순자가 이 반응을

“갑자기 화내는 사람”으로 해석하는 순간

서로의 정서적 간극은 훨씬 더 커진다.


이건 실제 연애에서도 자주 벌어진다.

“나는 장난이었어!”
“근데 난 상처받았어!”
“그건 네가 예민한 거야!”

이렇게 흐르기 시작하면

관계는 금세 무너진다.



V. 공정성이 사라질 때 사랑도 무너진다

사회심리학의 핵심 개념 중 하나가

상호성 규범(Norm of Reciprocity)이다.

쉽게 말하면,

“주는 만큼 받는다.”

관계는 이 규범이 유지될 때 건강하게 흘러간다.


하지만 순자의 패턴은

자신이 주는 상처는 과소평가하고

자신이 받는 상처는 과대평가하는 형태였다.

이런 경우 관계는 공정성을 잃는다.


타인을 놀릴 때 → “이 정도는 장난이지~”
타인이 조금만 불편 표시해도 → “왜 저래? 무섭네.”


이 불균형은 상대의 마음을 천천히 파괴한다.

상철의 반응은 바로 이 불공정성에 대한 누적된 피로감이 터진 결과다.

그리고 시청자들이 순자에게 유난히 혹독한 반응을 보인 이유 역시

우리가 일상에서 이런 불공정한 관계 역학으로

수없이 상처받아봤기 때문일 것이다.


순자라는 인물에 대한 감정이 아니라,

순자와 닮은 누군가에게서 우리가 겪었던

정서적 지침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VI. 순자의 인터뷰 발언: 왜 시청자들이 더 분노했는가

순자가 상철과의 갈등 후, 인터뷰에서 말한

“갑자기 화내는 사람은 너무 무섭다.”

라는 발언은 시청자에게 결정타가 되었다.


왜일까?

그것은 이 말이

자기 책임의 부정(denial of responsibility)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갑자기’가 아니었다.

상철은 여러 차례 유머로 넘기며 신호를 보냈다.

표정도 굳었고, 목소리도 바뀌었고, 대답도 짧아졌다.


그럼에도 순자는 그 신호를 읽지 못했다.

그리고 발언의 책임을

“상철의 성격 문제”로 돌렸다.

이것이 시청자들이 순자를 비판하게 만든

결정적 심리적 메커니즘이다.



VII. 순자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장난이라는 이름의 폭력’

이 사건은 순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예능 속 한 장면일 뿐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인간관계 곳곳에 숨어 있는

중요한 심리적 교훈을 준다.


우리는 흔히,

내가 하는 말의 가벼움만 생각하고

상대가 느끼는 무게는 잊는다.

우리는 내 장난의 의도만 보지만,

상대는 그 장난의 효과를 겪는다.


그리고 우리는 지나치기 쉬운 사실이 있다.

무례는 대부분 ‘장난’이라는 포장을 쓰고 다닌다.

이 포장은 얇지만 파괴력은 크다.

관계의 신뢰는 아주 천천히 쌓이지만

무례는 한순간에 그 신뢰를 무너뜨린다.



VIII. 관계를 지키는 가장 기본적인 감각


나솔 28기 순자–상철 사건은

단순히 예능 속 한 커플의 싸움이 아니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다음의 사실을 보여준다.


1. 무례를 장난으로 포장하면 관계는 무너진다.

의도가 아무리 가벼워도

상대의 자존감과 경계를 침해하면

그건 장난이 아니다.


2. 공정성 감각이 무너지면 사랑도 무너진다.

상대의 상처에는 둔하고

내 상처에는 예민한 관계는 오래갈 수 없다.


3. 자기-타자 비대칭을 스스로 인식해야 한다.

내 말은 의도로 판단하고

남의 말은 성격으로 판단하는 순간

관계는 틀어진다.


나솔 28기는 끝났지만,
우리가 관계 속에서 반복하는 패턴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존중하고 싶다면,
그리고 나 또한 존중받고 싶다면,
내가 던지는 말들이 가진 무게를
한 번쯤 천천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아주 단순하다.

“이 말이 정말 장난일까?”
“상대도 나와 같은 무게로 웃을 수 있을까?”

이 질문 두 개면
많은 관계가 지켜진다.


그리고 그런 질문을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사랑도 존중도 함께 자란다.



한줄요약

"장난이라는 이름으로 가려진 무례가 마음의 저울을 기울일 때,
관계는 가장 조용한 순간에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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