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은 '성취'가 아니라 될 것 같은 '가능성’에서 솟아오른다
살면서 이런 아이러니를 겪어본 적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썸녀가 갑자기 말투에 하트 이모티콘을 하나 붙여 보냈다고 해보자.
평소엔 “단답”만 보내던 사람이 “좋아요”를 보내는 순간,
심장이 가만히 있질 않는다.
뭔가 된 것도 아니고, 고백받은 것도 아닌데.
그냥 말투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머릿속에서는 연애 시뮬레이션이 16배속으로 돌아가고,
머리 속에서는 그녀와의 결혼을 상상한다.
물론 작가는 수퍼알파테토남(호소인)이라,
카톡 따위에 일희일비 하지 않는다.
또 이런 순간도 있다.
시험을 한참 남겨두고는 책만 봐도 졸음이 쏟아지는데,
시험 전날 밤은 오히려 눈이 말똥말똥해진다.
그리고 시험이 끝나는 순간 이상하게 허무하다.
“끝났다!”라는 말이 입에서 나오기도 전에
기운이 싹 빠져버리는 그 느낌.
취업 준비도 비슷하다.
면접 보러 가기 전날에는 온라인에 있는 모든 합격 후기를 다 읽고,
머릿속에서 이미 명함을 돌리는 상상을 한다.
그런데 막상 결과가 나오고 ‘합격’이라는 글자를 보는 순간에는
그렇다—
기대하던 그 폭발적인 감정이 생각보다 오래 가지 않는다.
이 모든 상황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우리는 ‘성공한 순간’보다
‘성공할 것 같은 순간’에 더 살아 있다고 느낀다.
왜 그럴까?
왜 우리의 뇌는 “이미 얻은 것”보다
“곧 올지도 모르는 것”에 더 강하게 반응할까?
이 질문의 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고,
또 우리의 삶을 바라보는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을 만큼 매력적이다.
그 중심에는 때로는 오해받고, 때로는 과장되고, 그러나 놀라울 만큼 인간적인
신경전달물질이 있다.
바로 '도파민'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도파민을 ‘행복 호르몬’으로 알고 있다.
“무언가를 성취하면 도파민이 확 솟구친다”는 식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신경과학에서는 아주 다른 이야기를 한다.
도파민을 연구한 켄트 베리지(Kent Berridge)는
도파민을 즐거움(liking)의 물질이 아니라,
‘원하게 만드는 힘(wanting)’의 물질이라고 설명했다.
즉, 도파민은 “좋아함”이 아니라 “더 하고 싶다”라는 욕구를 만든다.
여기서부터 흔한 오해가 풀리기 시작한다.
도파민은 ‘기쁨’을 주는 게 아니라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추진력’이다.
이 추진력은 성취의 순간보다
성취하기 직전에 훨씬 강해진다.
이를 설명하는 핵심 학자는
도파민 연구의 거의 뼈대를 만든 볼프람 슐츠(Wolfram Schultz)이다.
그는 도파민이 실제 보상보다
보상이 올지도 모른다는 '예측’에 더 크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예측이 올라갈 때 → 도파민 상승
예측이 빗나갈 때 → 도파민 하락
이미 보상받았을 때 → 도파민 급락
이 말은 곧 이렇게 바꿔 써도 무방하다.
우리의 뇌는 ‘될 것 같은 순간’을 가장 사랑한다.
그래서 결과를 얻어도 기쁨은 오래가지 않는다.
우리는 결과가 아니라 '가능성을 원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도파민의 작동 방식은 인간의 행동 패턴에도 깊이 스며 있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을 제시한 사람이
정서신경과학자 야크 판크세프(Jaak Panksepp)이다.
그는 도파민 시스템을 SEEKING system,
즉 “탐색 시스템”이라고 불렀다.
탐색이란 무엇인가?
찾고, 더 알고 싶고, 시도하고, 미끄러지는 미래의 조각을 붙잡으려 하는 행동이다.
판크세프에 따르면 인간은 보상보다
보상으로 향해 가는 ‘추구의 과정’에서 더 큰 동력을 얻는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구분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될 것 같다”라는 감각이 도파민 스위치를 켜고,
스위치가 켜지면, 우리는 탐색하게 된다.
가능성이 먼저이고, 탐색은 그 다음이다.
가능성은 불꽃이고, 탐색은 불꽃이 번져가는 방향이다.
그래서 정확히 말하면
도파민은 “탐색의 호르몬”이기도 하고,
“가능성의 호르몬”이기도 하다.
둘은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
도파민 회로의 앞면과 뒷면이다.
이제 이 원리가 실제 삶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나의 경험을 통해 풀어보려 한다.
불과 몇개월 전, 나는 브런치에 글을 미친 듯이 쓰던 시기가 있었다.
정말 말 그대로 미친 듯이.
하루에 두 편, 세 편을 썼다.
카페 직원은 나를 보며 “오늘도 오셨어요?”라며 미소 지었고,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또 왔죠…”라고 속으로 대답했다.
그때의 나를 돌아보면 참 웃기다.
내가 갑작스럽게 글을 사랑하게 된 것도 아니고,
갑자기 천재적 영감이 쏟아진 것도 아니다.
분명히 어떤 ‘추진력’이 내 뒤에서 등을 미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추진력의 정체는 명확했다.
브런치 공모전.
그런데 더 정확히 말하면,
공모전이라는 목표 자체가 아니라
“혹시 수상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면 내가 책을 낼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희미한 가능성이었다.
가능성은 구체적이지 않다.
하지만 흐릿하기 때문에 더 매혹적이다.
잡히지 않기 때문에 더 간절하다.
그 가능성이 나를 밤늦게까지 붙잡았고,
커피를 두 잔이나 마시게 했고,
심지어 초안을 여덟 번이나 갈아엎게 만들었다.
돌이켜 보면, 나를 움직였던 건 글이 아니라
글을 통해 ‘될지도 모르는 나의 미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미래는 현실보다 훨씬 선명하게 느껴졌다.
가능성은 언제나 현실보다 강렬하니까.
도파민을 통해 인간을 다시 바라보면
우리는 ‘성취하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성취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존재’이다.
우리는 언제나 조금 모자라고,
조금 아쉽고,
조금 더 하고 싶고,
조금만 더 가면 손에 닿을 것 같은 상태에서 가장 생생하다.
그래서 연애 초반이 가장 뜨겁고,
취업 준비 중의 상상이 가장 짜릿하고,
시험 전날 밤이 가장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나의 가능성이 우리 내면에서 불꽃처럼 일어날 때,
그 불꽃이 우리를 움직인다.
짐을 꾸리는 순간이 여행보다 더 설레고,
카톡 말투가 살짝 달라진 순간이 연애보다 더 심장을 뛰게 하고,
면접 발표 전의 새로고침이 합격 통보보다 더 긴장되는 것도
모두 같은 이유다.
인간은 '완성'에서 살지 않는다.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살아갈 뿐이다..
인간은 '완성'에서 살지 않는다.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살아갈 뿐이다.
인간은 '완성'에서 살지 않는다.
우리는 완성되어 가는 ‘과정’에서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