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심리칼럼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과 글쓰기가 엇갈릴 때

심리학을 전공한 30대 초입의 변곡점 기록

by 심리한스푼

1. 나는 왜 계속 글을 쓰고 싶을까

나는 글쓰는 걸 좋아한다.
사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를 표현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
생각을 정리해 세상에 던져보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한 반응을 통해 다시 나를 조정해가는 과정까지.

그런 나의 ‘관종 기질’은 자연스럽게 글의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특히 브런치라는 공간은 묘하다.
서로의 얼굴도 모르고, 이해관계도 크지 않지만
문장을 통해 세계관을 교환한다.


누군가의 글을 읽으며 내 안에 없던 우주가 하나 생기고,
내 글을 통해 누군가의 세계에 작은 균열이 생긴다.


작년에는 공모전 출품을 계기로 거의 하루에 한 편씩 글을 썼다.
일러스트를 올리고, 문장을 다듬고,
게시 버튼을 누르기까지 걸리는 시간조차 즐거웠다.
그 시기만큼은 분명히,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2. 20대의 낭만, 그리고 시간의 태도 변화

그리고 2026년.
나는 20대의 끝과

30대의 초에서 방황하고 있다.


사실 한국나이로 30대이지만,

현실의 무게를 정면으로 받아들이기 싫어
‘정신 승리’로 2년쯤 벌어둔 셈이다.


20대의 나는, 낭만과 자아실현을 당연한 권리처럼 여겼다.
돈이 조금 부족해도, 미래가 불확실해도
‘지금 아니면 언제 해보겠어’라는 말로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 선택들이 완전히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시기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시간이 더 이상 내 편이 아니라는 감각이 찾아왔다.

자기실현이라는 말 뒤로 미뤄둔 현실이라는 중압감이,

이자가 붙어 되돌아 오고 시작한 것이다.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이는 시간 조망(time perspective)이 바뀌는 시기다.
젊을 때는 미래가 무한히 열려 있다고 느끼지만,
나이가 들수록 선택의 비용과 기회비용이 또렷해진다.
가능성의 개수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선택의 무게가 증가하는 것에 가깝다.

(나이 먹고 살만 찐줄 알았는데,

책임의 무게도 증가한 것이다.)



3.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글과 엇갈릴 때

요즘 들어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부쩍 많아졌다.
문제는 이 생각이 글쓰기와 자주 엇갈린다는 점이다.


물론 나는 일을 하고 있지만,

과연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여기에 쏟는게 맞는지

종종 의문을 느낀다.


글은 당장 돈이 되지 않는다.

적어도 나의 현재 실력과 위치에서는 그렇다.
이때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인지 부조화가 발생한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이 충돌할 때,
사람은 둘 중 하나를 폄하하거나 합리화한다.


그래서 나는 종종 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글은 나중에 써도 되잖아.”
“현실적인 선택이 먼저지.”


하지만 동시에, 글을 완전히 놓아버리는 순간
나의 핵심 정체성 일부가 함께 무너지는 느낌도 든다.
이 지점에서 갈등이 깊어진다.


돈을 벌어야 하는 나와,
글을 쓰지 않으면 공허해지는 내가
서로를 설득하지 못한다.



4. 쫓기지 말아야 한다는 말의 함정

나는 인생이 반드시 쫓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비교와 속도 경쟁은 분명 사람을 병들게 한다.
하지만 ‘쫓길 필요가 없다’는 말이
시간의 흐름 자체를 외면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성숙은
불안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불안을 견디며 선택하는 능력에 가깝다.
실존주의 역시 비슷한 말을 한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고,
그렇기에 선택한 삶을 스스로의 책임으로 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금의 나는
현실의 무게를 회피하지 말아야 하는 시기에 와 있다.
글을 쓴다는 이유로,
생계에 대한 고민을 미루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생계를 이유로,
나를 지탱해온 언어를 완전히 버리고 싶지도 않다.



5. 변곡점에서 내가 세우는 임시 결론

그래서 요즘 나는 이렇게 생각해본다.
지금은 ‘이도저도 아닌 시기’가 아니라,
두 삶을 병치해 실험해야 하는 시기라고.


글은 당장 결과를 요구하지 않는 영역으로 남겨두고,
생계는 현실적으로 책임진다.
다만 중요한 건,
글쓰기를 도피가 아니라 축적의 영역으로 두는 것이다.


언젠가 다시 선택해야 할 순간이 온다면,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더 많은 문장과 경험을
내 안에 쌓아둔 사람이길 바란다.
이 시기는 결론을 내리는 시간이 아니라,
나의 기준을 정교하게 다듬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한 줄 정리

"글을 놓지 않으면서도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이 시기,
어쩌면 지금이 내 삶의 가장 중요한 문장 초안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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