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잔나비를 들으며, 일상으로 복귀준비하는 나에게
긴 추석 연휴의 끝이 점점 다가온다.
연휴가 끝을 생각하면 언제나 이상하게 쓸쓸하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이번엔 꼭 알차게 보내야지”라며 다짐했는데
돌아보면 남은 건 넷플릭스 시청 기록과 미완의 메모 몇 줄뿐이다.
나는 계획을 세웠지만, 계획은 나를 세워주지 않았다.
(그나마 글이라도 써서 다행이다 싶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아쉬움은 게으름에 대한 자책이라기보다
어딘가 존재론적인 허무감에 가깝다.
마치 여름밤이 끝나버린 것처럼 —
뜨거웠던 가능성의 공기가 식어버린 자리에서
나는 조금 멍해진다.
연휴의 시작은 언제나 뜨겁다.
커피 한 잔 앞에서 인생의 방향을 새로 정하고,
서점에 가서 철학서를 고르며
“이번엔 진짜 읽는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이틀쯤 지나면
그 철학서는 침대 옆 탁자에서 먼지를 먹고 있고,
나는 “인간은 원래 불완전한 존재니까…”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넷플릭스 다음 화를 재생한다.
그렇게 연휴는 끝나간다.
그리고 잔나비의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면
괜히 가사 한 줄이 심장을 툭 건드린다.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그 순간 문득 든다.
아, 연휴란 결국 ‘작고 사적인 여름’이었구나.
한순간 뜨겁고, 금세 사라지지만,
그 시간의 잔향은 꽤 오래 남는다.
연휴가 끝나면 우리는 다시 ‘해야 하는 세계’로 돌아간다.
회의, 보고서, 공부, 시험, 마감.
그 안에서 ‘나답게 숨 쉬는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그래서 연휴의 끝이 서글픈 건,
게으름 때문이 아니라 자유의 종말 때문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전환기 불안(transition anxiety)’이라 부른다.
자유에서 규율로, 가능성에서 현실로 이동할 때
우리 안의 리듬이 갑자기 바뀌며 생기는 불안.
그건 실패의 감정이 아니라
존재의 리듬이 변할 때의 어지럼증이다.
연휴가 끝나고 허무한 이유는,
사실 일상이 피곤해서가 아니라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가야 한다”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일지도 모른다.
잔나비의 노래는 그걸 너무 잘 안다.
‘볼품없다’는 건 단순히 초라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건 한때 뜨거웠다는 증거다.
열정이 지나간 자리엔 언제나 조금의 허전함이 남는다.
그건 무기력의 흔적이 아니라,
한때 살아 있었다는 증거다.
불타올랐기에, 지금은 식은 것이다.
그러니까 볼품없어도 괜찮다.
그건 그냥 ‘다 지나간 여름의 온도’다.
연휴가 끝나면 우리는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출근길의 버스, 시험공부, 회의실의 공기,
익숙하지만 낯선 리듬 속으로.
하지만 괜찮다.
연휴의 뜨거움은 사라졌지만,
그 열기 덕분에 일상의 온도가
조금은 더 따뜻해졌을지도 모른다.
뜨거운 연휴는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그 볼품없음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글을 쓴다는 건,
끝나버린 시간의 여운을 언어로 붙잡는 일이다.
그러니 지금의 이 허무도 언젠가
또 하나의 여름밤처럼,
부드럽게 나를 성장시킬 것이다.
“뜨거운 연휴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그 밤을 지새운 너와 나, 다시는 볼 수없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