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담화 본능과 진화심리학으로 풀어보는 ‘나솔 열풍’
얼마 전 나는솔로를 즐겨보는 지인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주제는 28기에서 화제가 됐던 영수라는 참가자였다. 지인은 그의 과장된 태도와 허세적인 모습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그 이야기를 하면서도 스스로 약간의 죄책감을 느낀다는 점이었다. 평소 도덕적 기준을 중시하는 친구라서 “내가 뒷담화를 하고 있네” 하고 스스로 검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나는 그 장면이 무척 인상 깊었다. 왜냐하면, 사실 나는솔로를 보는 재미 중 하나가 바로 그런 뒷담화에 있기 때문이다. 출연자들의 말과 행동을 보고 나누는 대화, 때론 비판, 때론 공감- 이게 없으면 프로그램을 보는 맛이 반감된다.
나는솔로를 꾸준히 챙겨보는 지인은 주중에도 종종 나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야, 이번 주 숙소 분위기 봤어? 누구랑 누구 사이 좀 이상하지 않아?”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길게 답장을 보낸다. “맞아, 특히 ○○가 눈치를 너무 보더라.”
이처럼 나는솔로는 단순히 방송이 아니라, 지인과의 대화를 이어가는 매개체가 된다. 우리가 드라마를 보면서 “주인공이 왜 저렇게 했을까?”라며 수다 떠는 것과 비슷하지만, 나는솔로는 훨씬 더 현실적이다. 왜냐하면 등장인물이 일반인이기 때문이다. 출연자들의 직업, 말투, 행동에서 우리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자기 경험을 끌어와 더 깊이 개입한다.
사실 이런 경험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도록 진화해 왔다. 『사피엔스』에서 유발 하라리는 인간의 언어가 발전한 이유 중 하나가 ‘뒷담화’라고 설명한다.
생각해 보면, “사자가 나타났다!” 같은 정보보다 “누구는 신뢰할 만하다”라는 정보가 집단을 유지하는 데 훨씬 더 중요하다. 내 지인도 무의식적으로 이런 기능을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영수에 대한 평가를 나누면서, 우리 둘은 사실 출연자를 넘어 ‘우리가 무엇을 신뢰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뒷담화는 단순한 험담이 아니라 관계를 다지는 사회적 장치다. 친구와 나는솔로 출연자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 우리 관계도 더 가까워진다.
얼마 전 다른 친구와 저녁을 먹는데, 갑자기 그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솔로 안 보려고 했는데, 직장에서 동료들이 계속 얘기하니까 결국 보게 되더라.”
그 얘기를 듣고 고개가 끄덕여졌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어느 모임에서 나는솔로 얘기가 한창이었는데, 그 자리에 있던 몇몇은 대화에 끼지 못하고 조용히 웃고만 있었다. 그때 느꼈다. “아, 이게 요즘 사회적 화두구나.”
사람들은 단순히 연애 예능을 보려고 나는솔로에 빠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함께 이야기할 거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본다. 출연자들의 선택과 행동은 마치 우리 사회를 축소해 놓은 것 같아서, 누구와도 쉽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소재가 된다.
나는솔로를 보면서 지인과 나누는 대화는 대개 비판 섞인 평가로 이어진다. “○○는 왜 저렇게 자기만 아는 거야?”라든가, “△△는 진짜 솔직한 것 같아” 같은 말들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대화를 나눌 때의 즐거움은 꽤 크다.
한 번은 영수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지인이 뜬금없이 “근데 나도 가끔 저렇게 허세 부릴 때 있잖아”라고 고백했다. 우리는 한참 웃으며 “그래도 너는 저 정도는 아니야”라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흥미로운 건, 이런 대화를 통해 단순히 출연자에 대한 뒷담화를 넘어서 서로에 대한 이해로까지 이어졌다는 점이다.
서은국 교수의 『행복의 기원』에서는 인간이 관계를 맺을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고 말한다. 나는솔로를 보며 떠드는 순간이 행복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건 단순한 연애 서사가 아니라, 우리가 관계를 맺을 기회를 늘려주는 장치다.
개인적으로는, 친구와 나는솔로 이야기를 나눌 때 느끼는 유대감이 꽤 깊다. 특히 평소엔 진지한 주제를 이야기하던 친구가 출연자의 행동에 열을 내며 분석하는 걸 보면, 의외의 모습에 더 가까워지는 느낌마저 든다.
나는솔로 열풍을 단순히 “재미있으니까 본다”라고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 안에는 인간 본능이 숨어 있다. 우리는 타인의 관계와 행동을 관찰하고, 그것을 이야기하며 관계를 강화하도록 진화해 왔다. 나는솔로는 이 오래된 본능을 절묘하게 자극하는 무대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나 역시 친구들과 나는솔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참 좋다. 출연자를 평가하는 대화 속에서 우리는 웃고, 공감하고, 서로를 더 잘 알게 된다. 결국 나는솔로를 보는 즐거움은 화면 속 사랑 이야기에만 있지 않다. 진짜 즐거움은, 그 이야기를 매개로 화면 밖에서 우리가 맺는 관계 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