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 리더의 컴플렉스가 비극을 낳는다.
[출처 : 이덕일 역사평설, 조선 왕을 말하다.1]
절차의 투명성은 결과 못지않게 중요하다.
특히, 최고권력을 잇는 절차는 나라 안의 모든 사람이 납득할 수 있는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것이 불투명한 당사자는 정통성 컴플렉스에 시달리고 이는 정국 운영에 큰 부담이 된다.
최고 지도자의 컴플렉스를 씻는 유일한 방법은 성공한 정치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부분은 컴플렉스에 허우적대다 실패한 정치가로 끝나기 마련이다. 무수한 비극을 낳는다.
유능한 지배층과 무능한 지배층을 가르는 기준 중의 하나가 현실인식 문제이다.
유능한 지배층은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보지만 무능한 지배층은 자신의 생각과 다른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이 보고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한다.
그렇게 머릿속의 바람을 현실인 것처럼 호도하는 동안 나라가 깊숙이 썩어 들어갈 수밖에 없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사라진 나라, 백성들도 버린다.
지배층이 피지배층의 신뢰를 받는 방법은 간단하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것이다.
로마의 파비우스 가문처럼 어린 후계자만을 남기고 모두 목숨을 바치는 가문을 어찌 백성들이 존경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조선의 사대부는 자기희생은 커녕 군역을 합법적으로 면제받았다.
지배층이 군대에 가지 않는 나라의 피지배층이 전쟁때 종군할 이유가 없음은 당연하다.
모든 위기는 기회를 수반한다.
임진왜란이 그랬다. 민심이 이반된 조선은 망국의 위기에 몰렸다가 면천법 등의 개혁입법으로 회생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 그들은 백성을 버렸다.
전시의 개혁입법들이 무력화 되면서 나라는 껍데기만 남게 되었다.
임진왜란은 우리에게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킬 자세가 되어 있느냐고 묻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 선조는 중종의 여러 서손(서자)들 중의 한명에 불과했다. 하성군 이균.
그는 이유가 어찌되었건 감히 상상할수도 욕심을 낼 수도 없는 상황에서 통치자의 위치에 올랐다.
정통성 컴플렉스가 생길수 밖에 없다.
그래서 현실인식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보게 된다.
이 시대 리더에게도 당연히 적용되는 것이 있다.
지금은 전시가 아니다. 하지만, 임진왜란보다 더 심각한 여러가지 형태의 전쟁이 수시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 개인의 삶이든 가정이라는 작은 공동체이든 사업을 하든 조직을 운영하든 국가를 경영하든....
그 안에서 우리는 수시로 '여러형태의 위기상황'을 맞이한다.
모든 위기는 기회를 수반한다고 했다.
어떤 사회나 국가를 이끌어 가는 리더는 잘되는 것에만 집중하는 성향이 있다.
맞다. 잘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그런데 간과하기 쉬운게 있다.
어떤 사회나 조직에서는 늘 안되는 것으로 인해 난관에 봉착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고,
그 난관의 원인도 처음에는 잘되는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시작한 일이다.
어려움과 위기를 만날때 그것은 실패 또는 좌절이라는 모습으로 긴박하게 진화하는 경향이 있다.
잘되는 상황에서는 나타나지 않던 리더의 모습이 어려움과 위기의 상황에서는 정확한 리더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 리더는 진정한 리더의 모습과 못난 골목대장의 모습 중에서 하나의 태도를 보인다.
위기상황의 조선이라는 나라에 이를 감당할 수 없는 '선조'라는 리더가 통치자의 자리에 올랐다는 것은 조선이라는 나라에게는 불운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내가 속한 조직이나 사회, 국가에는 리더라고 인정할만한 진정한 리더가 있을까?
그 기대를 감당할만한 리더가 있기를 바란다.
리더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할 수 있는 마음과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
리더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 시대에 진정 존경받을만한 리더가 나타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