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찾은 감성 힐링여행
여행시기 : 유난히 따스한 1월의 겨울날에.
여행목적 : 대학생활이 남긴 신입생 시절 추억의 마을을 찾다.
부산역에서 17번 버스를 탔을 때까지 몰랐다. 버스 안내방송이 남부민동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언덕길 차도를 달릴때서야 아~ 이 버스가 그 버스였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대학교 신입생 시절에 선배들과 한잔하면 취해서 집이 먼 자취생들은 여관비가 아까와서 학교와 가까운 친구 집으로 갔었다. 그렇게 나는 17번 종점에 사는 감천동 친구 집을 버스를 타고 나서야 기억해냈다. 술이 취한 상태에서 언덕길로 된 거기에 좁은 골목들로 이루어딘 감천동이 무척 불편했다는 기억은 지금도 생생한데 여기가 이렇게 변하다니!
점심을 사준 친구가 헤어지면서 감천문화마을로 가는 대중교통은 없으니 택시를 타고 가란다. 막연히 17번이 떠올랐지만 벽화가 그려진 구역은 다른곳인가보다 생각했을 뿐이다.
- 벽화 있는 곳에 내려주세요
- 그냥 마을 입구에 내려드릴게요. 벽화가 하도 많아서요..
택시기사의 말을 이해하는 데는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1990년 당시 나의 감천동은 벽화가 없었는데 언제부터 벽화를 그린 걸까.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도로에서 우르르 만나게 되는 외국인들.
여기가 이렇게 유명했다고? 사람들이 주중에 왜 이렇게 많지. 그것도 대부분 외국인들이네.
마치 내가 해외 어느 관광지 골목을 들어선 듯 여행자마냥 낯선 시선으로 거리를 바라보고 있다.
이 동네에서 행복하게 꿀잠을 자던 추억은 어디 가고 이제 낯선 이방인이 되어 그 골목에 방문자로 같이 걷고 있다.
거리를 지도 없이 발길따라 걷다보니 저기 이쁜 카페골목도 보이고 예외 없이 골목 구석구석에 갤러리 겸 미술관 겸 카페들도 보이고...길냥이조차 이 마을에서는 방문자의 카메라 모델이 되는, 어느 골목 하나 담고 싶지 않는 순간이 없는, 버릴 게 없이 모두 담고 싶은 풍경들이다.
차들이 다니는 대로를 걷다가 골목으로 내려가니 달동네로 불릴 감천 산동네는 외국의 여느 관광지 못지않은 전망과 꾸며진 색깔로 사람들이 카메라 셔트를 누르게 한다. 특별한 몇 곳은 인생 샷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줄까지 서는 포토존도 보인다.
거의 28년 만에 찾은 내 친구의 달동네는 이렇게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 나를 다시 소환했다.
이것이 추억여행인가, 단순한 기억의 회귀인가.
WOW~
길을 걷다가 영어가 들려 발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돌려보니 그냥 타일 박은 계단일 뿐인데, 그리고 주변에 살짝 색깔 좀 칠했을 뿐인데,
외국에서 배낭 메고 카메라 장착해서 올만한 곳이었나. 부산이 참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스타그램이 살려낸 포토존 마을은 아닌지,
골목을 누비는 인스타 스타들의 촬영 포즈가 예사롭지 않다.
골목을 지도도 없이 (스탬프 지도는 2천 원에 판매) 발길 가는 대로 돌아다니다 만난 빨랫줄은 차라리 중국의 어느 골목길을 연상하게도 했다.
사람 사는 모습 그대로 외부인에게도 보이는 감천 마을에는 시장도 있고 주차장도 있고 아파트도 있고,
어느 프레임이 세련되거나 인위적이지가 않다.
주민들이 사는 집이니 함부로 문을 열지 말라는 안내문이 이곳이 영화 세트장처럼 꾸며진 공간이 아닌 레알 주거지역임을 현실적으로 말해준다.
관광객들이 찾아가는 명소에도 업무상 바쁘게 골목을 누비는 사람이 있었으니 우체부이다. 용지를 들고 통화를 하면서 빠른 걸음으로 골목 계단을 오르내리는 그를 만나기 전후가 달라진다.
그래 여기가 그저 이쁜 문화마을이 아닌 보통의 사람 사는 동네였어.
우체부 아저씨는 그냥 할 일을 해야 하는 그의 일터일 뿐이야.
택시를 타고 입구에 내려서 마을 높이를 몰랐는데 한참을 걸어 내려와야 17번 종점이 보이자 그때서야 그래 여기가 참 다니기 불편한 산동네였다는, 특히 술 마시고 귀가하던 당시의 신입생한테는 꽤 오르기 힘든 오르막과 골목의 집들이 나를 불편하게 했던 사실들이 다시 떠올랐다.
골목을 완전히 빠져나와서 대로를 걸으니 바로 반가운(?) 버스 번호가 보인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
20세기에서 21세기로 골목여행을 떠난 느낌.
순수한 술자리가 행복했던 20대 초반에서, 건강을 생각해 술자리를 줄여야 하는 40대 후반의 달라진 인생길이 있을 뿐이다.
- 이거 타면 부산역으로 가나요
- 네. 6분 뒤에 출발합니다.
그렇게 과거로 소환했던 17번 버스는 다시 종점에서 나를 태우고 현재로 소환해 주었다. 나의 친구 그녀의 집은 아직 그대로 있는 걸까? 미리 연락하고 오지 못한 미안함에 안부전화도 못하고 나는 떠난다. 친구야 그 동네에서 잘 살고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