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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고캐런 Jan 01. 2020

2020 비엔나 신년의 밤 현장 스케치

불꽃처럼 살 것인가 온돌처럼 존재할 것인가


여행시기 : 2020 새해맞이



자정이 되어야 오스트리아에서 제일 큰 종을 친다고 하니 한숨 자고 나가야지.


생각하고 숙소를 나선 시간이 23:15 분이다.


이미 창문 틈새로 들려오는 폭음? 축포 소리에 밖의 상황이 예상된다. (이 곳이 유럽이 아니라 미국이었다면 어디 총기사건이라도 난 줄 알고 놀랄 정도의 소리다)


밤 11시가 넘은 시각.

차량이 통제된 대학가 도로는 사람들이 점령하고 있다.



공중에는 불꽃 소리

광장에는 음악소리

도로에는 사람 소리


대한민국에서도 종각에는 사람 많다고 심야의 종소리 들으러 안 가는 사람이  비엔나에서 자다가 일어나 자정을 기다리는 건 무슨 마음일까.


종소리를 들으려면 슈테판 광장 쪽으로 가야 하는데 시청 쪽으로 몰려가는 이 엄청난 행렬은 뭘까?


그래도 난 성당에서 들려주는 큰 종소리 듣겠다고 그들과 역방향으로 흔들림 없이 걷고 있다.


비엔나 시내 골목 광장 곳곳에 설치된 크고 작은 무대에서는 12월 31일 하루 종일  음악소리가 들리는 거 같다.



경기 탓하며  조용하게 보낸 한국의 연말연시가 잊혀질 정도로 내 생애 최고로 사람 많은 새해맞이 현장에 있다.


생각보다는 비엔나 겨울이 춥지 않아서 (올해 날씨가 눈도 안 오고 따듯한 것일 수도 있고) 두껍게 싸 메지 않아도 산책하듯 살랑살랑 걸어 다니기 너무 좋다.



시내지도 없어도

밤에 도로명 안 보여도


그저 사람들 행렬에 방향 잡고 같이 가면 항상 공연 무대가 펼쳐진다. 서울에서는 시청 광장 잔디밭에 설치된 메인 무대 1개에서만 행사를 하지만 여긴 시내 골목 여기저기에서 각개전투처럼 짜여진 행사를 진행한다. 그러다 보니 윈도우 쇼핑을 하다가 충동구매가 일어날 즈음에 잊을라 하면 들려오는 음악소리에 내가 왜 여기에 왔나 알게 해 준다.



사람이 쫌 많을 거라 생각하며 도착한 슈테판 교회 광장은 상상불가+예측불허의 인파? 아니 전 유럽의 사람들이 모두 모였나 싶을 정도로 걸음 1보를 옮기는 게 힘들다.


큰 종이 걸려 있다는 교회 방향으로 가는 건 일단 포기하고 멀리서 스크린이라도 보려고 비집고 또 비집고 들어갔다. (그나마 작고 왜소한? 사이즈라 뚫고 가는데 유리했지만 내 사이즈의 비애는 스크린 외 무대 정면을 볼 수가 없다는 사실)


아무리 뒤꿈치를 올려도 장신의 민족 앞에서 좌절한 아시아인은 그들의 목덜미 내지 헤드에 가려 시선 제압에 허탈하다.



그냥 이런 소란스러운 새해맞이도 하나의 추억으로 의미를 두고 이 분위기 그대로 즐겨보자. 더 가까이 갈 수도 없지만 여기쯤 서 있다고 해서 카운트 다운할 때 옆에서 금발의 남자가 키스할 행운(?)은 발생하지 않을 거 같다.


그저 그 공간에 혼자지만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함이 올라온다. 그렇게 오케스트라 연주는 멈추고 3분 전에 뒤쪽에서는 불꽃 올리고 사람들은 키스타임을 기대하며 아님 옆자리 누가 서 있나 눈빛으로 스캔한다.



나도 양치를 하고 나오긴 했는데 옆자리 상태가 별로다.


좌측에는 목 아프게 담배 피는 두 언니

뒤쪽에는 아랍에서 온 듯한 구레나룻 아저씨

앞에는 키가 커서 내 시선을 막는 키다리 아저씨.


우측에서 날아올 기습키스를 기대하지만 임시 천막이 설치되어 있으니 이걸 뚫고 나올 남자는 없을 테고...


결국 종로보다 사람 많고 광화문 촛불 행렬보다 긴 비엔나에서 좌절의 미소와 함께 휴대폰을 꺼내 동영상 모드를 설정한다.



5 4 3 2 1 (퐝)


굉음과 함께 사라진 2019.

아무렇지도 않게 온 2020.


이런 새해  첫날!

지금 나의 기분?


3분 전 쏘아 올린 불꽃처럼 살아갈 것인가,

한국형 온돌처럼 따스하게 살다갈 것인가.


비엔나에서 처음 맞이한 유럽의 새해맞이.

오래도록 나의 여행 다이어리가 기억할 것이다.


★2020 새해맞이 현장 스케치 in Vie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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