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고캐런 Oct 09. 2021

과거로 돌아가는 시간의 물레방아

치열하게 살아낸 어느 한 시절을 회상하며...


알람소리에 몸을 움직인다. 자는 둥 마는 둥 잠은 깨어 있지만 휴대폰에서 들리는 어떤 소리가 있어야 몸도 깨어나는 일상을 산지 오래다.


토요일이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햇살이 뜨거우면 뜨거운 대로 변화무쌍한 한주가 지나갔다. 한주의 알람이 어느 시간대에 맞춰져 있는지조차 모르고 울리면 일어나고 조용하면 누워 있다.


오늘도 휴대폰을 열고 알람을 중지한다. 일주일은 7일인데 저장된 알람은 요일수보다 많다. 매주 돌아가는 일상의 패턴을 나조차 규칙적인 흐름도 없이 살고 있었다. 모든 것이 정체된 지금 나의 활동 역시 예전 같지 않다. 그러나 왜 이렇게 많은 알람이 있는지. 휴대폰 알람만큼 정신없고 어지러운 나의 일상에 나도 지친다.  

    

매주 하루는 새벽에 일어나야 하는 날이 있다. 바로 화요일이다.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화상회의 때문이다. 그리고 알람 설정이 필요 없는 건 일요일이다. 약속이 없으면 알람조차 필요 없는 단 하루. 그 하루 덕분에 일주일을 버텨내기도 한다. 평소 기계치인 나는 새로운 기능을 배우는 게 힘들다. 시간도 요일별로 묶어서 설정하면 되는데 변경하는 자체가 겁나는 것이다. 혹시라도 생길 알람 오류에 대한 걱정으로 요일을 모두 다르게 설정하는 것이 마음 편하기 때문이다.      


8월의 첫날이다. 한참 휴가철인데 태양은 비구름에 가려져 오늘도 보이지 않는다. 휴가철에는 물놀이하면서 흠뻑 젖기도 하고 피부가 벗겨질 정도로 태워야 하는데 계속 축축하다. 그런 뜨거운 휴가를 보내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시내를 나가는 게 낫다. 그러나 썬글라스가 아닌 우산을 들고 외출을 하는 건 기분이 다르다.


회색빛 구름으로 어둑해진 창문을 닫으며 에어컨 버튼을 누른다.

오늘은 덥지 않아서 전원 버튼을 누르고 제습과 공기청정기 버튼을 추가로 눌렀다.

오~ 인공지능 설정까지 있네. 일단 모든 버튼을 누르며 기능을 살핀다.


내 손안에 잡히는 이 작은 리모컨 하나에도 이렇게 다양한 기능이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라는 아침이다. 휴대폰 알람기능 설정조차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사는 나로선 부끄럽다. 필요한 기능에 맞게 버튼을 잘 사용해야 기계도 작동이 제대로 되는데, 여러 기능을 닫아놓고 사는 이 집 주인은 언제나 산만한 일상의 연속이다.


내 인생에서 내가 가진 기능은 무엇일까? 한 때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라는 고민에 마음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던 시절이 있었다. 태어났으니 열심히 살아 보자는 답을 찾기까지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스스로 그런 결론은 냈지만 그렇게 사는 것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는 않았다.      


며칠 째 비가 와서 제습기 통에 물이 가득해도 리모컨 버튼에서 제습버튼 누를 생각조차 안했다. 봄에 황사와 함께 미세먼지가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해도 공기청정이라는 버튼을 누를 여유조차 없었다. 나에게 리모컨은 더울 때와 추울 때 딱 두 계절에만 사용하는 물건이었다.


내 인생이 그렇다. 필요하면 찾고 필요 없으면 방치한다.

내 삶의 역할도 기능도 잘 챙기지 못한다.

시계추처럼 집과 일터를 오가는 삶을 산지 오래다.


그나마 출장이 많은 업무라 외박할 일이 많아서 일상의 일탈이 가능하다는 이유가 삶의 즐거움이었다. 우리는 언제나 바쁘고 할 일은 많다. 버튼의 숫자만큼이나 써야 할 기능도 많은 게 우리들이다. 그래서 몸과 마음은 항상 필요에 따라 눌러야 하는 버튼 상태로 살고 있다. 그 모든 기능을 이제 단순화 할 필요가 있다. 사고는 멀티로 하면서 리모컨 버튼 하나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나.      


문득 물레방아 생각이 난다. 물레방아처럼 나도 돌아가기만 하면 될까. 물레방아가 멈추듯 생각을 멈출 수 있을까. 물이 흐르지 않으면 물레방아는 돌지 않는다. 바람이 물레방아를 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물레방아를 세게 돌리겠다고 많은 물을 흘리는 순간 바퀴도 힘들고 방아를 지탱하는 나무도 부서진다. 단순하지만 반복적인 기능이 주는 소중함이다.


우리의 삶이 그렇다. 멈추고 싶다고 멈추어서도 안 되고 빠르게 돌고 싶다고 혼자 빨리 가서도 안 된다. 물이 흐르는 속도대로 방아가 돌아가는 만큼 허용되는 일상이 필요하다. 그런 일상이 모여 인생이 되고 역사가 된다. 문득 물레방아보다 못한 나의 일상에서 이렇게 기능이 많은 버튼을 보니 리모컨조차 낯선 아침이다.      


가늘게 내리는 비에 우산을 들고 나가야 하는데 어지러운 마음에 우산을 놓고 나오는 바람에 빗방울이 얼굴을 때린다. 이런 빗방울 한줄기가 내 일상의 물레방아를 돌리는 힘이다. 나는 많은 것을 하느라 바쁘게 살지만 무엇이 중요한지도 모른 채 혼자 돌고 있다. 사실 돌고는 있지만 알 수 없는 고장으로 나의 물레방아는 자주 멈추거나 물도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걷다가 길가의 작은 돌 틈 사이에서 살아난 풀을 본다. 이렇게 소량의 흙이 주는 에너지로 생존한 생명조차 빗속에서 푸르기만 한데 나는 지금 비를 맞으며 휘청거리고 있다. 가느린 풀잎의 작은 잎사귀조차 나에겐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들리는 휘몰아치는 나의 일상에 화가 난다. 물레방아 같은 단순한 기능조차 나에게는 없다. 언제나 분주하지만 단순하지 않다. 그런 나를 풀잎에 얹어 놓고 빗속을 걸어가는데 빗방울이 눈물처럼 얼굴에 흘러내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코로나가 가져온 일상의 변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