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을 하지 않은 채 스트리밍으로 1분 음악 듣기를 하면서 커피 한잔을 들고 복층 계단에 앉은 일요일 오후. 누워도 보고 유튜브 채널도 여기저기 클릭해서 다양하게 즐겨보지만 일요일의 오후는 소리 없이 흘러간다.
늦은 점심? 아니 이른 저녁을 오후 5시에 먹고 나니 오늘 하루도 다 보내고 남은 건 저녁시간뿐이다. 이선희가 부르는 백만 송이 장미가 꽃잎처럼 날아다니는 뜨거운 오후.
커피는 설탕을 듬뿍 넣어서 달콤한데 오후의 창가는 강렬한 햇살에도 느낌이 없다.
헝클어진 방은 주인의 감성을 앗아가지만 시각과 청각으로 방에는 낭만이 넘친다.
코로라 때문에 초기에 외출을 제한했을 때는 누군가에 의해 억지로(?) 차단을 당한지라 나의 집이지만 갇혀 있는 것처럼 숨이 막혔다. 그래서 가슴이 답답하고 주말 이틀 연속 방에만 있는 시간이 정말 길고 힘들었다.
몇 주가 아니 수개월 동안 이런 생활이 계속되니 생각도 생활도 바뀐다.
주말에 이렇게 조용히 잘 지내던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어색한 시간에서 내가 이렇게 하루 종일 가지가지하면서 혼자 재미있게 놀던 사람인가 놀랍기도 하다. 혼 밥에 혼 술은 기본이고 음악도 취향 따라 7080부터 90년대까지 시간을 거슬러 듣고 있다. 감정 상태에 따라 여러 가지 검색을 하면서 마음가는대로 추억에 잠겨 음악 속에서 희노애락을 만끽하고 있다.
스마트 폰 충전을 몇 번 해야 할 정도로 기상 후 시간대별로 일정을 짜서 이렇게 즐겁게 잘 놀다니.
이제는 mm(보이스 대화방)까지 장전되어 있어 혼자만의 시간이 심심할 수가 없다.
일을 안 해도 시간은 가고 책을 읽지 않아도 하루는 간다. 집에 혼자 있으니 누구 하나 신경 쓸 사람은 없지만 식사가 문제다. 바쁘게 살던 때처럼 반찬가게 반찬으로 한 끼 식사를 10분 만에 먹어치우던 시절이 까마득하다. 최근에는 일주일에 한두 번 장까지 보고 있다. 두 정거장 떨어진 재래시장까지는 못 가지만 마트에서 초록색의 야채를 사서 씻어 먹고 국 끓여 먹는 재미까지 붙었다.
하지 않던 행동이고 쓰지 않던 지출이지만 통장의 잔고는 사람만나고 술 마시면서 보내던 시절보다 지갑이 굳는다. 재료를 사서 직접 해 먹는 것이 이렇게 절약이 될 줄이야! 요리까지 못해도 내 입에 들어가는 찌개와 기본 반찬을 척척 매일 다르게 해결하고 있다. 예전에 자취 생활하던 내공이 코로나 때문에 살아난다.
나 밥만 할 줄 아는 줄 알았더니 반찬도 되는 여자였네.
스스로 칭찬하고 스스로 맛있어서 놀랜다. 오랜만에 주말 이틀 해보니 시간도 잘 가고 살림 재미도 있다. 몇 달 더 하면 주말 살림이 아니라 주부 선언해도 될 거 같은 이 뿌듯함. 주부로서 책임지고 밥 챙겨 먹일 아이들이 없는 싱글의 자유로움이 그나마 마지막 여유다. 주말이라도 불러내는 사람이 없고 요새는 걸려오는 전화도 문자도 없다. 이런 시절에 여기저기 약속 잡고 사람 만나는 자체가 피해가 되는 분위기니, 서울 생활 25년 중 가장 익숙하지 않은 일상이지만 점점 익숙해지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집에 혼자 있는 것도 지낼만한 걸.
아무 연락 안 와도 전혀 슬프지 않아.
혼자 있어도 누릴 자유가 너무 많아.
외출조차 생각나지 않는 평화로운 마음. 이런 시간이 더 길어지면 어떤 좌절이 올라올지 어떤 기대가 생길지 모르겠다. 코로나와 함께 하는 나의 시간은 외로움이 아니라 새로운 자유로움이다. 뉴스를 클릭하면 지구촌 모든 곳이 걱정이 되지만 부정적인 생각은 잠시 접어두기로 한다. 지금은 안 좋은 상황이지만 받아들이기에 따라 나도 모르던 나의 재발견이 시작된다.
나 자신을 집에서 고독하게 만나는 시간.
나를 위한 시간을 오롯이 쓸 수 있는 공간.
휴대폰도 열지 않고 뉴스도 신경 쓰지 말고 자신을 위한 시간을 잘 사용하면 어떨까.
코로나가 만들어 준 뜻밖의 휴식? 아니 새로운 자유!
이 모든 상황이 경제적으로는 힘들지만 마음의 상태는 그저 평화롭다. 기분은 더 묘하다.
코로나19라는 현재의 상황 때문에 그저 우울하고 불안해하기 보다는 지금 이 순간 나를 위하는 좋은 마음으로 일상을 보내는 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하니 오늘 하루 나에게 주어진 소중한 하루에 갑자기 알 수 없는 감사함이 올라온다.
이렇게 하루하루 잘 지내다 보면 내일은 기대하지 못한 행운의 여신이 내 일상 속에 씨앗을 뿌려 줄기를 키우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게 되지 않을까. 아무데도 갈 수 없고 아무도 만날 수 없지만 오늘 하루도 기분 좋게 나의 시간을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