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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고캐런 May 17. 2021

엄마가 기억하는 못난 딸

어버이날 감사 인사도 못하고...

   

뭐하노, 밥 묵었나.

응. 엄마는 먹었나.     


전화에서 들려오는 엄마의 첫 마디는 언제나 똑같은 질문이다. 경상도 억양의 무뚝뚝함도 있지만 매번 이렇게 시작되는 모녀의 대화도 놀랍다. 수년 전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신 이후 엄마는 부쩍 혼자 사는 딸에게 자주 전화를 다. 그러나 모든 대화는 나의 한 문장으로 상황이 종료된다.      


엄마, 지금은 바쁘다. 저녁에 통화하자.     


그렇게 끊어진 전화는 그날 다시 통화할 일이 없음을 엄마도 안다. 모녀지간에 그런 통화를 하며 산지 이미 오래다. 도시에서 먹고 사느라 바쁜 둘째딸이 엄마 눈에는 언제나 걱정이다. 명절과 아버지 제사 날에도 집에 오지 않는 딸은 한국의 서울이 아니라 차라리 외국에 사는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란다.        


엄마, 내가 이번 추석에는 집에 갈려고.

정말, 너가 왠일로?     


명절에 고향 가는 길이 나한테는 유럽배낭여행 가는 것보다 멀게 느껴진다. 가족들과 전화로 1분 이상 통화하기도 힘든데, 십여 분이면 끝나는 제사를 위해 1박 2일을 고향집까지 움직이는 건 정말 만만치 않다.


어쩌면 포장마차에서 옆 테이블 손님들과 밤새 대화를 나누는 게 오히려 쉽다. 그런 엄마한테는 3가지가 없다. 여권. 신용카드. 스마트폰. 그런데 갑자기 우리 집에 가자며 남동생을 찾았으니 나로서도 놀라운 일이다.   

   

누나, 오늘 집에 가도 되나? 엄마가 갑자기 가자고 하시네.

     

해외여행 같이 가자며 여권 만드시라고 한지 20년째인데 여태 안 만드시고, 이제는 비행기조차 타기 힘든 체력의 엄마. 허리 아프다 다리 아프다며 외출도 거의 하지 않는 분인데 갑자기 먼 길을 가자고 하시니. “비 많이 온다고 하는데 거기 비 많이 오나?” 엄마의 다음 대화는 언제나 일기예보와 최근 뉴스가 주제다.


“엄마 아직 여기 비는 안 오는데 오늘은 친구들이 오는 날이라 내일 오는 게 어때”


동생한테 문자로 거듭 나의 현재 상황을 설명 했지만 갑자기 누나 집에 가자는 엄마를 남동생도 어찌하지 못한다. 나도 한 고집하는데 엄마를 닮은 것이 분명하다.


엄마는 결국 내가 외출한 사이 집에 도착다. 큰방은 서먹해 할 지인들에게 내주면 되지만, 예고 없이 도착한 엄마와 남동생을 거실에서 잠들게 하는 것도 역시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시골 사시는 엄마의 아침은 무척 부지런하다. 새벽에 일어나 스트레치를 하고 나면 동네를 한 바퀴 걷는다. 마치 뉴욕의 센트럴 파크를 조깅하는 사람들처럼 엄마의 아침은 신선한 공기와 함께 아침산책으로 시작한다. 아침식사는 매일 갓 지은 밥과 나물드시고 여유 있게 모든 아침드라마를 시청한다.


하루의 유일한 외출은 마을회관에 가서 동네 할머니들을 만나 수다를 떠는 일이다. 허리가 많이 굽어서 걸음걸이조차 불편한데, 그런 걸음으로 매일 사람 만나러 다니시는 거 보면 사교적인 유전자도 역시 엄마를 닮은 게 분명하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랑 대가족이 같이 산 우리는 집이 작아서 여러 명이 한 방에서 자거나 마루에서 자는 것도 익숙하지만 도시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엄마는 어릴 적 생각만 하시고 집에서는 아무데서 자도 된다며 거실에 먼저 누우셨지만, 정작 불편 사람들은 늦게 도착한 지인들이다.


결국 다음날 아침을 푸짐하게 먹으며 무한 수다를 떨기로 한 우리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친구들은 예정보다 빨리 집을 빠져나갔다.


텅 빈 집에서 엄마와 오랜만에 대화를 나눈다.       


- 평생 이렇게 살거가? 내 딸이지만 정말 걱정이다.

- 누구 힘들게 하며 사느니 혼자 편하게 사는 게 좋다.     


엄마의 질문은 언제나 단도직입적이다. 그런 엄마를 닮은 나도 상처가 될 만큼 솔직하다. 게다가 엄마는 엄청난 기계치다. 가끔 엄마가 가족들한테 풀어놓는 애피소드는 웃기지만 슬픈 내용이다.


얼마 전에도 어디 갔다가 물이 먹고 싶어서 정수기를 발견했는데 버튼을 어떻게 눌러야 할지 몰라서 못 마셨다는 이야기. 병원에 가서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어떤 버튼을 눌러야 할지 몰라서 갇힌 이야기. 은행에 갔다가 자동문 앞에서 어떻게 들어갈지 몰라서 헤매다가 직원이 열어주었다는 이야기 등.


엄마의 이야기는 모인 가족들이 배를 잡고 웃으며 듣지만 항상 슬픈 개그다. 시골에서 먹거리를 자급자족 하시는 분이라 생활의 많은 기계장비들이 필요 없고 있어도 익숙하지 못한 엄마.


지금은 이해하지만 어릴 때는 런 엄마를 개된 자리에서 보는 게 부끄러워서 나도 피하고 싶었던 아이였다. 당시 나는 엄마가 학교에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문제 일으키지 않으려고 했고, 다행히 착한 성적으로 사고없이 졸업했다. 그러다보니 엄마는 초중고 12년 동안 한 번도 나를 보러 학교에 올 일이 없었고 그런 엄마한테 나는 여전히 모범생 딸로 여겨지는 거 같았다.      


그 사람 어떻게 사는지 한번 만나봤으면 좋겠다. 이런 선머슴아 같은 내 딸한테 상처받은 그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누구랑 살든 어디서 잘 살고 있겠지만 내가 죽기 전에는 꼭 한번 보고 싶다.    

  

최근에 만난 사람조차 기억하지 않는 나와 달리 딸이 인사시킨 첫 남자를 기억하는 엄마. 뭐라고? 지금 20년 전에 헤어진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갑자기 집에 찾아온 것도 놀랍지만 오십인 딸의 첫사랑을 기억하는 엄마라니. 엄마는 내가 울면서 떠나보낸  남자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여고 시절 자취를 하면서 일찍 독립한 나는 족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고 특히 엄마에 대한 기억 별로 없다.


그런데 이 무슨 상황? 올해 팔순이 신 엄마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엄마는 딸이 청춘을 바쳐 사랑했던  사람을 기억하는 것이다.


세월은 그냥 흐르지 않는다. 오십인 내가 팔순이 되신 엄마 소원을 이루어 드리지는 못하겠지만 엄마의 목소리에 담긴 사랑을 나는 안다. 혼자 씩씩하게 잘 사는 거 같아도 엄마 눈에는 딸의 모든 것이 보이는 것이다.


엄마 고마워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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