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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고캐런 Nov 02. 2017

프랑스로 떠난 가을 와인여행! 그 진정한 맛을 찾아서~

부르고뉴 와인 가도를 달리다




가을이다.


그래서 쓴술 한잔이 더 생각난다면 고독한 여인의 지나친 사치인가? 한국의 술집에서 여자 혼자 폼 잡고 몇 시간씩 술을 마실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차라리 그냥 여행가서 편하게 마시자는 생각에 이번 나의 여행 테마는 오래간만에 ‘술’로 잡았다.



일단 맥주와 와인을 모두 마시기 위해 먼저 옥토버페스트 200주년으로 한참 흥청대고 있는 뮌헨에서 시원하게 이스트가 살아 숨 쉬는 독일 맥주로 며칠간 목을 축이며 신나게 놀다가 고속열차를 타고 다시 프랑스로 이동.  


그래도 와인 하면 왠지 프랑스가 먼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오랫동안 여행을 직업으로 해온 나로선 명승지를 돌아다니면서 사진 찍고 감동하는 관광은 나에겐 출장이지 더 이상 여행이 아니다. 아무것을 보지 않아도 아무것도 찍지 않아도 그저 입이 즐겁고 배가 부르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가을에는 나만의 진정한 자유로운 여행을 만끽하기 위해 황금밭으로 물들고 있는 프랑스 부르고뉴 와인 산지로 일단 고고씽!  



워낙 바쁘게 지내다 떠난 여행이라 특별히 준비한 건 없지만 그래도 와인에 대해 나름 재미있고 쉽게 풀은 만화책 한 세트는 읽어주고 떠났다. 그래서일까?  부르고뉴-본 지역에 펼쳐진 포도밭을 보는 순간 야~호~ 함성이 절로 나온다.


“Vosne-Romanee"  

여기가 바로 와인 애호가라면 누구나 꼭 한번 눈도장 찍고 간다는 '로마네 꽁띠'다.  


“아~ 여기가 로마네 꽁티구나”  


나도 간판을 보며 아는 척을 했다. 

 


“근데 별로 특별히 포도밭이 다른 건 모르겠는데?”  


와인을 잘 모르는 나도 ‘로마네 꽁띠’라는 말은 들어봤을 정도니 얼마나 그 명성이 대단한 곳인지는 가히 알만한 곳이다.


“이것 보셔요~ 지금 말씀하신 로마네 꽁띠는 여기가 아니거든요?”  

“아니, 여기 안내판에 이렇게 Vosne-Romanee라고 적여 있는데 왜 아니에요?” 





“그 유명한 로마네 꽁띠 포도밭은 저기 마을 뒤에 약 오천 평밖에 안 되는 작은 포도밭이거든요.


근데 여기 동네 입구에 서서 마치 로마네 꽁티 포도밭을 본 것처럼 말씀하시면 안 되죠.”  


와인에 일가견 있는 동행들 덕분에 내 수준이 들통. 그 명성에 비해 실제 와보니 본 로마네 마을은 참 자그마하다.  




9월이라 한참 포도 수확철이라 그런지 비가 오는 이런 궂은 날씨에도 여기저기 포도밭에서는 포도 수확하느라 분주하기만 하다. 뿐만 아니라 도로 중간중간에 수확한 포도를 나르는 느린 장비들 때문에 가끔 도로가 정체되기도 한다. 설마 이렇게 작은 마을단위 와이너리일 줄이야! 알려진 유명세에 비해 마을들은 너무나 작고 심플하다.


“그래요? 그럼 여기까지 왔으니 그 꽁티지 뭔지 하는 그 밭으로 한번 가봅시다”  

도대체 여기가 왜 와인 애호가들의 성지인 거야? 




주택가 여기저기를 잠시 들여다본다.  


살짝 겉에서 봐도 그다지 규모가 크지 않은 와이너리들이다. 일하는 사람들은 별로 보이지 않고 그저 용도를 알 수 없는 각종 설비들만 각자 제 역할을 하며 열심히 돌아가고 있다. 그리고 계속 걷다 보니 마을 골목이 금방 끝난다.


순간 눈앞에 펼쳐진 엄청난 포도밭.
 


와~  

그러나 여기도 거기가 아니란다. 다시 비포장 도로를 따라 조금 더 걸어 올라갔다. 


멀리 작은 십자가가 보인다.

묘지도 아니고 포도밭에 웬 십자가?





좌측 십자가 사진이 로마네 꽁티 포도밭 앞에 서 있던 와인 성지 역할을 하는 표지판(?) 같은 십자가이고,

우측 세 가지 사진은 작은 마을단위 와이너리 곳곳의 포도밭 풍경이자 수확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바로 거기가 그 유명한 로마네 꽁띠 포도밭이란다.

 헉~ 여기가? 



바로 그 유명한 로마네 꽁티의 작은 포도밭 전경



마냥 아름다운 장미꽃 울타리라도 쳐져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소박하다. 로마네 꽁티 포도밭이라고 해서 포도를 보호하기 위해 크게 울타리를 치거나 무슨 의리의리 한 간판이라도 내다 걸어놓았을 줄 알았나 보다.




“이곳까지 올라와서 정확히 포도밭을 확인하고 로마네 꽁띠라고 해야지, 저기 도로가 표지판 보고 길가에 대충 서서 그렇게 말하면 안 되죠"



 

도로가에 인접한 유명한 포도밭이라 보호차원일까? 저렇게 포도나무와 도로 사이에 돌담을 쌓아 두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도로 가라 혹시라도 방문객들로 인해 포도나무가 몸살을 할까 봐 도로와 포도나무 사이에 약간의 거리를 두고 돌담이 낮게 쳐진 거 외는 정말 특별한 게 없다.






그렇다.  


한라산 밑에서 한라산 한번 올려다보고는 마치 한라산을 다 본 것처럼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무엇보다 이번에 만난 부르고뉴는 보르도 지역과 달리 구릉으로 된 완만한 언덕을 따라 포도밭들이 펼쳐져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여행자가 본 이 곳의 진짜 매력은 작은 마을들을 쭉 이어 만든 와인 가도를 달리는 것만으로도 그대로 뛰어난 와인 향기를 찾는 드라이브 코스가 된다는 사실. 


이곳의 국도는 유럽에서도 알아주는 와인 가도로 그랑크뤼(Grand crus) 코스라고 하니 와인을 알고 여행을 온 사람이라면 여기저기 걸린 마을 이름 간판만 봐도 무지하게 흥분할 일이다. 




나야 그저 길게 쭉 펼쳐진 포도밭을 보는 것만으로도 함성이 나오지만 사실 초보 와인 여행자들은 워낙 길고 넓게 펼쳐진 방대한 포도밭이라 조금만 방심해도 금세 와인 가도를 벗어나 자그마한 시골마을로 들어가 버리므로 약간의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그랑크뤼 가도를 따라 보이는 간판에 적힌 지명에서 진정한 와인의 값어치를 파악하지 못하는 여행자라면 

정신이라도 똑바로 차리고 부르고뉴 와인가도 지도를 열심히 보거나 내비게이터에 시선을 두면서 달려야 할 코스이다. 


(부르고뉴-본 지역에서도 유명한 80km 드라이브 코스인 그랑크뤼(Grand Crus)를 달리며 바라본 포도밭)



오늘 이 곳에서의 첫 일정은 한국인이 와인메이커로 있는 ‘루뒤몽’사의 와이너리 방문이다. 이번 와인여행을 준비하면서 와인을 좀 더 쉽게 접하기 위해 골라 읽은 일본 만화책 중 일본인 남편과 함께 부르고뉴에서 와인을 만들고 있는 한국인 박재화 씨의 얘기가 나온다.




(루뒤몽사의 대표로 현재 프랑스에서 와인을 만들고 있는 거제가 고향이라는 박재화 대표님)



 

그날은 마침 일본인 남편 코지 씨는 다른 와인 산지로 출장 중이라

한국인 아내 박재화 씨가 손수 우산을 받쳐 들고 대문 밖까지 나와 맞아 주었다. 


프랑스에서 비싼 와인을 만들며 살아도 역시 마음은 한국적이다.

그녀의 따듯한 환대와 함께 그녀가 내놓은 사발면에 말아먹은 밥과 김치는

 와인이라는 테마를 떠나 이번 여행에서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와인이 한참 숙성되고 있는 지하 카브는 생각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그래도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와인을 오크통에서 바로 뽑아 마시는 기분은

정말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는 감동이 있다.



우리가 오늘 마신 루뒤몽사의 와인 레이블은 바로 요거!











지하 와이너리에서 현재 숙성 중인 와인을 직접 뽑아 올려 여러 가지 시음을 하고 있는 중~  머릿속의 와인 지식은 제로지만 그래도 내 혀는 거짓말을 안 한다. 역시 좋은 게 맛있구나. 사실 한국에서는 병입 되어온 와인만 사서 마시다가 이렇게 오크통에서 숙성되고 있는 와인을 직접 뽑아 마시니 정말 하나도 안 남기고 다 삼키고 싶다.




그때 초등학생 딸 레아가 지하 카브로 내려와 엄마에게 자기도 와인을 달라고 한다. 학생이 벌써 술을 마시면 되나? 그러나 아이는 와인을 입으로 오물오물하더니 툭 뱉는다. 역시 그녀가 제대로 된 정통방식으로 시음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는 엄마한테 이 와인맛은 어떻고 향은 어떻다고 말한다.     


와~ 내가 어릴 때는 아버지 심부름 때나 맡아보는 막걸리도 한잔 못 마시고 자랐는데 이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이렇게 자연스럽게 와인을 접하니, 한국의 와인 애호가들이 성인이 되어 아무리 열심히 와인을 사다 마시며 공부를 해도 역시 유럽의 혀를 따라가기는 힘들지 않을까?




와인 테이스팅 초반부터 문화적 충격에 멋지게 한방 맞고 나니 와인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다. 같은 오크통에 들어있어도 시간에 따라 다른 맛을 내는 와인을 보며, 같은 포도나무에 달려있어도 수확시기에 따라 다른 맛을 내는 와인을 보며, 잠시 딴생각을 한다.



태양이 얼마나 많이 비치는 위치냐에 따라 이 포도밭과 저 포도밭의 가격이 다르고, 이 포도가 어느 밭(떼루아)에서 따온 것이냐에 따라 와인의 가격도 다르고 와인의 대우도 달라진다는데, 산다는 건 이 키 작은 포도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포도송이만도 못한 인생은 아닐는지! 

 



어디에서 태어나 어떤 환경에서 자라냐에 따라 우리네 인생도 명함도 대우도 달라지는데 막상 여기 와인의 성지에 와서 보니 포도가 그냥 포도가 아니고 와인도 같은 와인이 아니라는 사실, 


지하카브에서 판매를 위해 병입될때까지 아직 숙성중인 다양한 오크통들


내가 지금 근사한 와인바가 아닌 프랑스 부르고뉴-본까지 와서 포도나무를 직접 만지고 비를 머금은 포도를 따먹고 오크통에 든 와인을 마시며 얻은 건, 앞으로 내 인생을 얼마나 풀바디 있게 펼칠 것인가! 이렇게 오감을 골고루 자극하는 멋진 와인들을 하나도 뱉지 않고 모두 삼키고 싶은 건 바로 와인처럼 우아하게 와인처럼 열정적으로 살고 싶은 여행자의 꿈이자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와인을 닮고 싶은 소박한 여인의 희망사항이라고나?


그랑크뤼 와인 가도를 달리다 만난 와인판매점 (Cave라고 간판은 적혀~) 현지라서 그런지 좋은 와인들이 착한 가격에 쭉 진열~ 음메 ~ 와인투어의 진정한 매력은 이런데 들어가서 제대로 된 와인을 알고 골라 마시는 재미가 아닐까! 다음엔 와인공부 좀 하고 와서 종류대로 사다 놓고 며칠 진탕 마시며 놀다 가고 싶은 기분이라꼬나? 




<와인 가도 여행 추억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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