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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고캐런 Nov 06. 2017

독일만의 매력! <고성 투어> 백조의 성을 찾아라~

퓌센 캐슬 투어 in Bayern

여행 제목 : 로맨틱가도의 종착지 퓌센의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가다

여행 이유 : 독일 바이에른 퓌센 캐슬 투어 1+1 프로모션 50% 할인의 유혹






여행이란 그 자체로 충분히 과거 속으로의 시간 이동이 가능하다. 특히 과거에서부터 현재 그리고 최첨단의 미래까지 한 번에 느껴지는 독일에서는 더욱 과거로의 여행이 멋지게 느껴지는 거 같다. 유럽에서도 독일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테마 중의 하나가 바로 고성, 바로 캐슬(castle)이다. 라인강변을 따라 유람선을 타고 가다 보면 수백 년 된 고성들을 볼 수 있는데 객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라인강을 따라 우뚝 서 있는 수백 년 된 고성에서부터 현대적 감각으로 리모델링된 고성 호텔까지. 


디즈니랜드의 모델이 되어서 백조의 성이라 불리는 노인슈반슈타인 성


그러나 오늘의 여행 테마는 백조의 성으로 불리는 퓌센의 ‘노이슈반슈타인 성’과 바이에른 영주 루드비히에 대한 일화이다. 천하를 휘어잡을 왕의 권력을 가지고도 고독한 삶을 살았던 루드비히 2세가 17년간을 공을 들여 만든 성. 그러나 의문의 죽음으로 결국은 미완성으로 남아있는 미스터리의 성.




오늘도 뮌헨 중앙역은 첫 기차를 타고 백조의 성을 보러 가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 첫 기차를 타고 가야 성을 돌아보는 시간이 그나마 넉넉하다 -. 삼삼오오 짝을 지어 수다를 떨며 모여드는 여행자들과 뜨거운 커피 한잔을 마시며 뮌헨의 쌀쌀한 바람에 옷깃을 올리는 사람들로 플랫폼은 채워지고 있다.


배낭을 짊어진 여행자의 무게는 가방의 무게 때문이 아니라 여행에 대한 욕심과 연속되는 긴장 속에 흘러가는 시간은 더욱 힘겹게 느껴진다. 그래도 호기심을 담은 여행자들의 눈빛과 특유의 여유 있는 표정이 오버랩된 기차 속은 여행자들의 열기로 충분히 달구어져 있다. 어깨에 마사지 크림을 발라가면서도, 굳은 종아리에 근육 크림을 문질러가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또한 이런 멋진 고성으로의 여행이 아니던가!


독일 시골냄새가 물씬 나는 조그마한 역에 내리자마자 준비된 버스를 타고 평화로운 전원 속으로 달려간다.

시골스러운 풍경에 마음마저 차분해지니 여행 나온 기분이 더욱 업 된다. 보일 듯 말 듯 이어지는 지평선을

바라보며 시원한 바람에 이마에 맺힌 땀을 씻는 건 복잡한 유적지에서는 느끼지 못한 새로운 기분이다. 



높이가 제법 되는 언덕에 들어선 그림 같은 주홍색 지붕들을 보며 연거푸 감탄사를 연발하기가 무섭게 카메라 셔트에 힘이 들어간다. 독일과 인접한 오스트리아 국경을 살짝 드나들며 달려가는 버스 차창 너머로 어느새 알프스 산자락이 펼쳐진다. 수세기 동안 녹아내린 만년설의 빙하 물줄기가 모여 만들어낸 비취색 호수를 보자. 지친 나그네의 가슴은 흥분으로 달아오른다. 손을 담가 보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성에 차지 않아 이내 샌들을 던지고 양말을 벗었다. 호수가를 한참 첨벙거리고 나서야 왜 물속에서 노는 사람이 없는지 알겠다. 도저히 발이 시려 5분 이상 물에 있을 수가 없다. 그래도 발바닥에서부터 밀려오는 차가운 기운에 머리까지 맑아지며 기분은 한층 더 고조되어간다. 


이 아름다운 호수 사진은 내 책상 앞에 확대하여 롤스크린으로 걸어놓고 감상하고 있다.





< 두 개의 성을 하루에  모두 구경하는 유일한 방법>


캐슬 투어란?

루드비히 2세가 17년 동안 정성을 들여지었지만 안타까운 죽음으로 인해 미완성으로 남은 디즈니랜드의 모델이 된 ‘노이슈반슈타인 성’과 실제 그의 통치 기간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바이에른주 최고의 화려한 성 ‘린더 호프 성’ 내부를 버스로 하루에 두 개의 성을 동시에 둘러보는 현지 영어가이드 투어.


여기서 잠깐!    

" 디럭스 버스로 떠나는 캐슬 투어"

                                                  

뮌헨 중앙역에서 08:30분에 출발하는데 버스 캐슬 투어의 장점은 루드비히 2세가 만든 세 개의 성중에서 가장 내부가 화려하고 웅장한 성이면서 살아생전에 가장 오래 머물렀던 ‘린더 호프 성’과 디즈니랜드의 성의 모델이 되어 유명해진 백조의 성인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하루에 모두 돌아볼 수 있다. 


(아침 8시 뮌헨 중앙역에서 출발~오후 6시까지 뮌헨 중앙역 도착하며 버스는 선착순으로 좌석을 이용하므로 미리 나가서 창가에 자리를 잡도록. 투어 순서는 시즌에 따라 진행방법이나 소요시간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알프스 산자락에 우뚝 서있는 웅장한 외관과는 달리 내부에서 느껴지는 허전함은 생각보다 실망스럽다. 기대가 커서 실망도 크겠지만 의문의 죽음으로 주인을 잃은 이후 성의 역사는 건축학적으로나 관광학적으로 이미 유명세를 탄지라 화려한 외관에 비해 내부는 텅 빈 느낌이다. 화려한 부귀영화의 끝이 주는 허탈감에 백조의 성은 더욱 고독해 보인다. 마치 주인을 기다리는 망부석(?)처럼. 



음악가 바그너를 사랑하고 -동성연애자였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아름다운 건물 짓기에 전력을 투구했던 건축광 루드비히 2세. 자신만의 아름다운 공간을 짓기 위해 왕이 된 이후 의문의 죽음으로 사망하기까지 정치보다는 성을 짓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던 왕. 


비록 한 개의 화려한 성(린더 호프 성)과 2개의 미완성인 성(노이슈반슈타인 성, 헤렌킴제 성)을 남기게 되었지만 그의 건축적 집착은 오늘날 독일 관광수입의 핵심에 있으니 결코 헛된 결과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세 개의 아름다운 성을 지어 호수에 노니는 백조처럼 우아하게 동화처럼 살고 싶었던 왕이 백조가 아닌 변사체로 호수에서 발견되었으니 그의 죽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과연 그는 마음에 담아둔 그 백조를 찾아 스스로 호수로 뛰어든 건 아니었는지~. 



선천적으로 권력보다 예술세계에 관심이 많았던 왕의 풀어내지 못한 ‘끼’는 훌륭한 정치보다 훌륭한 건축물에 집중되었다고나 할까. 화려한 궁정생활보다 조용한 정원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 루드비히 2세는 결국 가장 아름다운 성을 짓고도 정작 자신을 위한 아름다운 삶은 찾을 수 없었으니 이 또한 인생의 아이러니가 아닐는지~ 평생을 독신으로 살다 간 화려한 꽃미남의 처절한 고독을 누가 알리요.


세 개의 성 중에서도 특히 미완성의 걸작인 백조의 성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그 환상적인 자태로 더욱 유명하다. 산 위에 올라앉은 한 마리의 백조 같은 성을 담아내기 위해 방문자들의 카메라는 정신없이 돌아가지만 백조의 내부는 아직 알 수가 없다. (내부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오늘의 독일 그리고 독일이 만든 역사, 그 미완성의 힘에도 숨겨진 에너지가 있으니 독일에 와서 이 고독한 황제를 모르고, 이렇게 아름다운 성을 보지 않는다면? 이런저런 감상에 혼란해진 객의 마음을 아는지 흰구름이 성을 휘감으며 어지럽게 파아란 하늘을 수놓고 있다.  



<캐 슬 정 보 코 너>


Q : 백조의 성은 누가 만들었나요?

A : 루드비히 2세 (Ludwig II,1845-1886)  


1845년 8월 25일 뮌헨 인근에서 막시밀리안 2세의 아들로 태어나서 1864년에 타계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18세에 왕위에 오른다. 막시밀리안 2세의 아들로 태어나 1866년 보 오 전쟁에서는 오스트리아 편에 섰다가, 1년 뒤에는 프로이센과 동맹관계를 맺고 그 후 보불전쟁에 참여하며, 1년 뒤에는 프로이센의 사주에 못 이기는 척 편지를 돌려 독일 제후들에게 프로이센의 빌헬름을 독일제국의 황제로 추대할 것을 종용한다. 그러나 이 사발통문을 돌린 대가로 그는 비스마르크의 재정지원을 받아 성 건축과 바그너의 오페라 후원금으로 사용한다.


그는 바그너의 열성적인 후원자로서 바그너에게 바이로이트 (마인강 최상류에 위치) 극장을 헌정했다. 이 오페라 극장은 아직까지 남아 있어서 매년 이 도시에서 바그너 음악 축제가 성대히 열린다. 1864년 타계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약관 18세에 왕위에 오르게 되었으나, 이제는 과거와 같은 절대군주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자유화와 자본주의 시대가 왕의 권위에 도전하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기 시작하여 상황이 예전 같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체질적으로 정치에는 관심도 소질도 없었다. 오히려 음악과 시, 미술과 같은 예술세계 속에 빠져들기 좋아하는 심약하고 감성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대부분의 시간을 궁전이 있는 뮌헨을 가급적 피해 남부지방이나 알프스 부근의 전원에서 더욱 행복감을 느끼곤 했단다. 1870년 초가 되자 유럽의 정치적인 상황이 현안으로 떠오르면서 러시아와 프랑스 간의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충돌에 휘말리게 된다. 특히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한 이후로는 더욱더 성을 짓는 일에 몰두하고 정치에는 흥미와 자신감을 잃게 되었다.


1870년대 초, 러시아와 프랑스 간의 긴장 속에 휘말리게 되면서 정치에 점점 흥미를 잃다가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한 이후 자신감까지 잃으면서 성을 짓는 일에 몰두한다. 그러나 41세의 젊은 나이에 의문의 죽음을 당하면서 아직까지 그의 죽음은 미완성된 성처럼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왕의 죽음은 두 가지로 추정되고 있는데 첫째는 왕의 정치적 무능을 보다 못한 정적에 의해 살해되었을 가능성과 두 번째는 침실에서 자다가 정적에게 납치되어 슈탄 베르크 호수의 요양소에 강제로 연금을 당한다. 그러나 사흘 뒤에 왕의 주치의인 구텐 박사와 함께 변사체로 발견된다 (1886년 6월 13일). 여기서 다른 의견도 있는데 강제 연금된 자신을 비관해 자살을 시도하였는데, 이때 그를 말리던 구텐 박사는 실수 또는 고의로 물에 빠졌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말이 안 되는 것이 왕의 키가 1미터 90 정도에 어릴 때부터 수영선수에 버금가는 실력을 가졌기 때문에 익사는 아닐 것으로 보아 타살로(혹은 자살로 추정)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구텐 박사는 왕을 구하려다 같이 빠져 죽은 것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무엇보다 루드비히 2세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다가 죽었다. 그가 결혼을 하지 않았던 이유도 분분한데, 첫째는 그가 바그너와 동성연애를 한다는 소문이 그것이다. 하지만 바그너는 당시 유명한 음악가이자 시인이었던 리스트의 딸과 결혼하기 전이나 그 후에도 여러 여자를 섭렵하는, 여자를 너무 밝히는 사람이었으므로 동성연애자라는 것은 당찮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동성연애자도 두 종류가 있다고 하는데 한 가지는 남자만 좋아하는 동성연애자가 있는 반면, 남자도 좋아하고 여자도 좋아하는 동성연애자도 있다고 함으로써 왕이 총각으로 살다가 죽은 이유는 그가 죽음을 당한 이유만큼이나 베일에 쌓여있다.


그 외에도 평생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다 간 왕에 대한 의문은 그의 죽음만큼이나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전설 속의 영웅을 꿈꾸면서도 자신은 동화 속의 왕자처럼 화려한 마차를 끌고 다닌 루드비히 2세는 가끔씩 주체할 수 없는 감정으로 눈 덮인 노 인슈 반슈 스타인 성에서 썰매를 타고 광란의 질주를 하기도 했단다.


 전설 속의 영웅을 꿈꾸면서 그 자신 동화 속 왕자와 동일시 하고팠던 루드비히 2세의 마차는 무척 화려하다. 동화 속에 나오는 상상 속의 화려한 마차를 실지로 제작해 타고 다닌 루드비히 2세는 추운 겨울날 털코트 자락을 날리면서 달빛 속의 눈길을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산언덕 아래로 지쳐 내려오곤 하였다


                                                                                  



Q : 루드비히 2세가 만든 성은 몇 개인가요?

A : 린더호프 성(Schloss Linderhof), 노이슈반슈타인 성(Schloss Neuschwanstein), 헤렌킴제 성(Schloss Herrenchiemsee) 

 


캐슬 1. 린더호프 성 (오버아머가우 위치)


숲속에 둘어싸여 은밀한 정원처럼 느껴지는 린더호프 성의 외부전경 (내부 사진촬영은 불가)


루드비히 2세가 가장 오래 머물렀던 성으로 유일하게 살아생전에 완공된 성이다. 로코코 양식으로 건축물로 파리 방문 시 감명을 받아 베르사유의 '쁘띠 트리아농 (petit Trianon)'을 본떠 1869-78년에 세운 것이다. 노이슈반슈타인 성과는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으나 마을과는 많이 떨어진 계곡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이 곳 린더호프 성에서 은둔 생활을 하듯 보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왕의 상상력에 따라 시멘트로 만든 인공동굴 (die Venus Grotte)과 성 정면에 꾸며진 유럽의 대표적인 3가지 정원 양식(이탈리아, 프랑스, 영국)이 총집합한 아름다운 정원이 있다. 정원 중앙에는 분수가 있는데 물줄기를 하늘 높이 뿜어 올리면서 금동상 'Flora'를 적신다. 성 내부에서 볼만한 것으로는 태양왕의 청동상과 왕의 식탁으로 사용된 "Tischlein deck dich"이다. 사람을 기피한 왕이 기계적인 설비를 가동해 아래층에서 식사를 준비해 위층으로 끌어올리는 식탁이 아름답게 장식했으며, 식사가 끝나면 식탁이 바닥 밑으로 사라지게 되어 있다. 그 외 주목할만한 것으론 그가 감탄해마지않았던 태양왕의 청동상이 있다.



캐슬 2. 노이슈반슈타인 성 (정확한 마을 이름은 '호엔 슈방가우' 위치)


언덕위에 자리잡은 미스테리한 백조의 성 노인슈반슈타인 성


디즈니랜드의 모델이 되어 일약 유명해진 성으로 이 성은 부왕 막시밀리안 2세가 사들인 슈 방가 우 재지 귀족의 옛 성채 중 하나로 1869~1886년 루드비히 왕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1896년에 일부 완공시켰다. 


바그너[1813.5.22 ~ 1883.2.13]를 좋아한 루트비히 2세가 오페라 '로엔그린' 중 백조의 전설에서 모티브를 얻어 1867년에 방문한 바 있는 발트 부르크 성채와 베르사유 궁전 등을 모델로 삼아 독특하고 낭만적인 느낌으로 지은 성이다. 


노이슈반슈타인 성 (Schloss Neuschwanstein Castle - New Swan Castle)은 "새로운 반석 위에 앉은 백조"라는 뜻으로 동화 같은 삶을 살기를 원했던 루트비히 2세의 상상력이 동원된 건축물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백조의 성을 보기 위해 매년 수없이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오는데 가장 인기 있는  내부 투어는 왕이 죽 기직 전까지 공사가 이루어졌던 16개의 방을 중심으로 되어 있다 전설 같은 신비로운 꿈과 숨을 멎게 할 정도의 주변 경관과의 조화 또한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방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캐슬 3. 헤렌킴제(또는 헤른인젤,헤른힘제) 성 (킴제 호수 안 섬에 위치)

바이에른 최대의 호수 킴제 호에 섬처럼 자리잡은 헤렌킴제 성


루드비히 2세가 만든 최후의 성으로 원래 있던 큰 성을 사들여 1878-85년 동안 새로 건축되었지만 역시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 프랑스에 태양왕 루이 14세가 있다면 독일에 동화 왕 루드비히 2세가 있다고 할 정도. 자신의 이름을 프랑스어로 '루이(Louis)'라고 하며 평소에도 자신이 마치 루이 14세 인양 행동했다. '신사의 섬 (Herreninsel)'이라는 지명에서 유래한 이름을 가진 이 성은, 베르사유를 방문했던 왕이 큰 감명을 받아 경애하는 루이 14세의 오마쥬, '명예의 전당'으로 계획해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을 모방한 것이다. 특히, 성의 앞부분, 거울의 방, 계단 등 베르사유 궁전의 대표적인 부분을 본떠 만들었다. 헤렌킴제 성은 완성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인 가치가 있다. 오직 공상 속에서만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제왕의 위대한 업적이다. 성의 남쪽 날개 부분의 1층은 루드비히 2세 박물관으로 대관식 코트, 익사로 비극적인 삶을 마친 군주의 데스마스크 등 인상적인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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