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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탈고를 마쳤다.

by 누스

첫 탈고를 마쳤다. 홀가분할 줄로만 알았는데 갑작스럽게 텅 빈 시간이 당황스럽다. 나는 이렇게 갑작스러운 텅 빈 시간들에 항상 뭔가를 시작하곤 했다. 그렇게 시작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브런치스토리이다.


첫째를 낳고 3개월 만에 파트타임으로 일을 했었다. 주중에는 전업주부로서 아이를 돌보고 토요일에만 잠깐 나가서 일하고 오는 식이었다. 그러다가 둘째를 임신하고 체력이 떨어져서 일을 그만두었을 때는 열렬한 가정보육으로 시간의 빈자리를 메웠었다. 그런데 얼마 안 가서 더 큰 시간의 공백이 생겼다. 또 한 번의 출산을 앞두고 어쩔 수 없이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평일에도 나만의 시간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그 여유가 반갑다기보다 당황스러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백수가 된 느낌이었달까?


아이가 어린이집에 적응하는 한두 시간 동안 집에 다녀오기가 애매하다는 이유로, 나는 근처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주로 책을 읽다가 어느 날 갑자기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느닷없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 와서 보면 경력단절에 대한 두려움이 새로운 행동을 하도록 부추겼던 것 같다. 오히려 육아에 대한 만족도는 지금보다 더 높았던 시기였음에도, 마음 한편에서는 나와 달리 사회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동료들을 보며 조바심이 났던 것 같다. 그래서 몇 년 전에 가입해 뒀던 브런치스토리 아이디를 찾아서 로그인을 하고, 글이 필요하다길래 부랴부랴 두 편의 글을 써서 작가에 지원했다. 그 뒤로 스스로 숙제를 하듯이 시간과 체력이 허락하는 만큼 글을 써 올렸다. 그리고 어느 날 감사한 기회로 쓰게 된 칼럼 두 편이 한 편집자님의 눈에 들었다. 출간이란 믿을 수 없는 기회를 나는 덥석 물었고 그 뒤로는 어제까지 한 꼭지 한 꼭지 글을 완성시키기 위해 달렸다.


출간으로 가는 여정에서는 겨우 첫 발을 뗀 셈이지만, 여기까지 오는 길은 꽤 멀었다. 사실은 이게 길인 줄도 몰랐고, 길이 될 줄은 더 몰랐으며, 그냥 나는 뭐라도 해야 되는 사람이라서 뭐라도 했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시간의 공백에서 오는 당혹감을 메우고자 뭔가를 했던 것뿐이다. 둘째가 어린이집에 가는 시기에 맞춰서는 개업 준비를 했었는데, 그땐 좀 헷갈리기도 했다. 이게 잘하는 짓인지 아니면 일 중독자의 금단현상인지. 그렇지만 돌아보면 아무것도 안 했던 시간보다는 뭐라도 하던 시간의 쓰임새가 좋았다. 뭔가를 하면 반드시 시행착오를 겪게 되지만, 적어도 가장 큰 실패 하나는 면할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실패 말이다.


그래서 또 아무거나 써본다. 마음이 꽤 싱숭생숭했는데-아마도 이건 탈고 탓이 아니라 요즘 내게 닥친 많은 변화들 때문일 것이다. 그 이야기도 시간의 공백이 생기면 슬슬 풀어봐야겠다. 여하튼 뭐라도 쓰니 좀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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