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될 때까지 친절에 대해 크게 고민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누군가에게 늘 친절하신 부모님을 보고 자라서였을까? 까칠한 사춘기 시절에도 친절이 나쁜 거라고 의심해 본 적은 없었다. 친절을 악용하는 사람이 나쁜 거지, 친절 자체엔 무슨 죄가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철이 들고 난 후에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다정다감하게 대하려는 편이었다. 누구에게나 늘 상냥했던 건 아니지만, 못된 말이라도 하고 나면 두고두고 내 모습에 대해 생각하며 부끄러워했다.
그러는 사이에 사회적 분위기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친절을 당연하게 요구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하는 소리들이 여기저기에서 나왔다. 그 덕에 친절을 시늉하기 위해 혹사당하는 감정 노동자들에게 관심이 쏠렸고, 당당히 무례를 범하는 갑질에도 제동이 걸렸다.
그렇게 친절은 의무가 아닌 선택이라는 분위기가 조금씩 형성되어 온 것 같다. 물론 내가 무슨 사회학자도 아니고 현인도 아니니 이건 어디까지나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에 불과하다. 어느 정도 감정 노동이 필요한 분야에 종사해서일까? 여하튼 난 꽤 오랫동안 친절에 대해 생각해 왔던 것 같다. 엄마가 된 지금은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좀 더 철저히 고민하는 중이다.
우리는 친절해야 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왜 친절해야 하는가? 친절은 선천적인 것일까? 아니면 배워서 되는 것일까? 못 배웠으면 배워야 하는 것일까? 친절의 순기능과 부작용은 무엇일까?
여러 잡다한 생각들이 떠올랐지만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주제는 이것이다. 친절은 의무일까, 아니면 선택일까? 친절을 의무로만 보면 어떻게든 남의 친절을 이용해 먹으려는 자칭 갑들에게 대놓고 기회를 주는 것 같아서 어쩐지 불안하다. 그렇다면 친절은 선택일까? 친절을 선택으로 보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는 듯한 느낌이고, 해로울 게 없어 보인다. 한동안은 이런 분위기가 사회를 장악했던 것도 같다. 그런데 나는-다시 말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으로- 이런 분위기가 점점 아슬아슬하게 느껴진다.
친절이 선택이라는 믿음은, 불친절도 선택할 수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애초에 불친절을 친절의 부재 정도로 가볍게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험상 보면 불친절은 친절의 부재 그 이상인 것 같다. 마치 하나의 새로운 실체인양 적극적으로 힘을 행사한다. 친절이 인간의 연약함을 보듬고 관계를 결속시키듯, 불친절은 인간의 연약함을 찔러 상처를 만들어 내고 관계를 파괴한다. 무엇보다도 불친절은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에서 맹렬히 기세를 떨친다. 부부간의 대화는 아주 사소한 것들로 인해 어이없이 깨진다. 노려보는 눈, 퉁명스러운 말투, 성의 없는 침묵을 거스를 애정은 없다. 엄마와 아빠 사이에 흐르는 냉랭한 공기 속에서 아이들은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불안을 감지한다. 불친절은 언제든 갈등을 촉발할 수 있는 도화선이다. 이런 불안정한 환경에서는 상호 간의 신뢰, 친밀한 교류, 건강한 정서를 형성하기 어렵다.
그렇게 자란 마음들이 모여 결국 사회가 된다. 그런 사회는 어떤 분위기일까? 피치 못할 사정, 어쩔 수 없는 약점, 예기치 못한 실패를 보듬고 다시금 기회를 주어 함께 성장하는 사회일까? 행여나 불친절에 덜미가 잡히지 않도록 꽁꽁 감추다 곪아버리는 건 아닐까? 불친절은 사람들 사이에 높은 담을 쌓는다. 그리고 통하지 않는 곳에는 불순물이 쌓이기 마련이다.
친절이 선택인지 의무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보다는 친절을 설명할 새로운 말이 있으면 좋겠다. 선택과 의무의 중간쯤 어딘가라든가, 아니면 받는 사람과 베푸는 사람에게 다르게 적용되는 원칙이라든가. 의무는 아니되, 무거운 책임이 따르는 선택 정도로 이해하면 어떨까? 친절을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상대의 선택을 고마워하되, 친절을 행하는 사람은 자신의 선택의 무게를 충분히 느끼면 좋겠다. 누구에게도 친절을 요구할 권리가 없는 것처럼, 누구에게도 불친절을 행사할 권리는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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