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은사님께 연락을 드렸다.
나는 인복이 많다. 성장기에 좋은 선생님들을 많이 만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선생님들의 웃는 모습, 기억에 남는 몇몇 말씀, 함께 했던 활동들이 떠오른다. 물론 사람이니 어찌 완벽할 수 있으랴. 그렇지만 내게 충분히 좋은 어른들이었던 선생님들께 받은 온기, 믿음, 관심, 웃음 등은 그대로 마음속에 남아 자양분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좋은 어른의 표상을 형성할 수 있었다. 그 시절이 결코 꽃길만은 아니었음에도, 길목마다 든든히 버팀목이 되어 주셨던 어른들 덕분에 나는 밝게 자랄 수 있었다.
오늘, 그중 한 분과 연락이 닿았다. 전화번호가 있었음에도 그간 사는 게 버겁고 바빠서 차마 연락드릴 수가 없었다. 그러다 지금이 아니면 앞으로 기회가 영영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용기 내어 카톡을 남겼다. 불쑥 전화드리면 곤란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예고편 먼저 쓰윽 보여드린 셈이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000입니다.
너무 오랜만에 인사드리네요.
그동안 바쁘게 사느라 정신이 없어서 한 번 찾아뵙지도 못했어요.
혹시 바쁘신 시간일까 해서 카톡으로 먼저 연락드립니다.
편하신 시간 알려주시면 전화드릴게요.
이렇게 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선생님께 전화가 걸려왔다. 맙소사. 이게 이렇게 쉬운 일이었는데 왜 연락드리지 못했을까. 그동안 머릿속에만 맴돌던 고민들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으니 만감이 교차했다. 그런데 대략의 근황이 빠르게 오간 후, 선생님이 갑자기 이렇게 물으셨다.
너 무슨 일 있냐?
행여나 제자에게 힘든 일이라도 생긴 건지 걱정하신 걸까? 무척 잘 지내는 중인데도 왠지 울컥했다. 이런 진심으로, 이런 따듯한 시선으로 어린 시절의 나를 바라보셨겠구나. 그 따듯함을 먹고 내가 자랐구나. "아녜요, 선생님. 저 잘 지내고 있어서 잘 지내는 거 보여드리려고 연락드렸어요." 선생님을 안심시켜 드린 후 조만간 찾아뵙겠다고 약속드렸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참 동안 뭉클하고 설렜다.
나는 어려서부터 종종 그런 상상을 했다. 나중에 성공해서 감사했던 어른들을 찾아뵙는 상상. 어느새 나는 그 시절 선생님들과 엇비슷한 나이가 되었다. 대단한 부와 명성은 없어도 자기 앞가림은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성공은 못했지만 충분히 잘 성장했다. 그래서 이만큼 잘 컸다고 보여드리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