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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진흙탕에서 노는 캐나다 일상

캐나다에서 엄마직에 종사합니다.

by 누스

나는 사실 캐나다에 온 게 아니라

캐나다 놀이터에 왔다...


라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로 매일 놀이터로 출근하고 있다. 보통 오전 6~7시쯤에 아이들이 눈을 뜬다. 눈곱 떼고 아침 차려 먹고 집안일 좀 하다 보면 금방 9시가 되는데, 이쯤 우리의 내니(nanny)가 도착한다. 아, 우리는 하루에 4시간씩 일하는 내니를 고용했다. 상황상 내니가 있어야 모두의 안녕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판단 하에, 우리 부부는 그동안 꽁꽁 봉인해 두었던 지갑을 과감히 열기로 했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보자면, 그건 정말이지 탁월한 선택이었다. 내니 이야기는 차차 풀어보도록 한다.


그렇게 내니가 도착하면 모래놀이를 위한 준비물과 두 아이를 웨건에 싣고서 길을 나선다. 한국에서도 모래놀이깨나 해본지라 웬만한 아이템은 구비되어 있었고, 나 역시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도착해 보니 아뿔싸. 모래 놀이터 한가운데에 수도꼭지가 있었다. 이 말인즉슨 그냥 모래놀이가 아니라 진흙탕 놀이가 될 거란 뜻이다. 아이들에겐 로망 엄마에겐 폭망이다.


그렇게 매일 우리 아이들은 진흙탕에, 나는 애벌빨래에 푹 담가지고 있다. 놀이터로 출근한 지 3일째부터는 아예 래시가드와 아쿠아슈즈를 작업복으로 정했다. 지금 이 기세면 아무래도 얼마 못 가서 바지에 구멍이 날 것 같지만, 부디 작업복이 오래오래 버텨주면 좋겠다. 우리 숙소는 어느 휴양지에나 있을 법한 리조트처럼 변했다. 하루에 청소기를 서너 번씩 돌려도 온 바닥에서 모래가 밟힌다. 애들의 몰골은 말할 것도 없다. 애들도 애벌빨래하듯 박박 씻겨야 겨우 땟국물이 빠진다. 특히 아들 녀석은 적응력이 좋은 건지 아님 원래 이런 애였던 건지, 그 놀이터에서도 더럽기로는 상위권 안에 들고 있다. 오늘도 거의 1등을 할 뻔하다가, 흙 묻은 장난감으로 물을 퍼먹던 한 아기에게 간신히(?) 1등을 빼앗겼다.


이렇다 보니 한국에서보다 해야 할 노동이 많아졌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기분은 썩 나쁘지가 않다. 적어도 아직까진 그렇다. 아마 아이들을 여한 없이 놀게 해 줬다는 뿌듯함 때문일 것이다. 한국에서는 늘 제한적인 시간과 통제된 환경 하에서 아이들을 놀게 했던 것 같다. 한국이 전반적으로 위생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인 데다가, 그중에서도 우리 부부는 좀 더 깔끔 떠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그래서 바깥에 아이들을 "풀어놓지" 못하고 알게 모르게 통제하곤 했다. 그러는 동안 옷은 깨끗할지언정 마음은 결코 깔끔하지 못했던 것 같다. 만지려는 아이들과 말리는 부모 사이의 실랑이가 진흙보다 더 끈덕지게 엉겨 붙었기 때문이다.


그랬던 나도 어느새 자연스레 이 더러움에 동화되고 있는 듯하다. 너도 나도 진흙탕에서 나뒹구는 분위기에 있다 보니 혼자 깔끔 떠는 게 유난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확 놔버리니 이것저것 신경 쓰지 않아도 돼서 홀가분해지기도 했다. 적어도 여기서 머무는 동안은 이 더럽게 편안한 생활을 지속할 것 같다.





* 그나저나 지난 글이 조회수 1000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보내주신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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