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엄마직에 종사합니다.
여느 때처럼 놀이터로 출근한 날이었다. 몇몇 아이들이 모래 놀이를 하고 있었고, 엄마들은 주변에 둘러앉아 있었다. 그때 6개월쯤 되어 보이는 한 아기가 눈에 들어왔다. 아기는 모래 위에 펼쳐진 담요 위에 누워서 까르르 웃고 있었다. 옆에는 터울이 그리 크지 않은 듯한 첫째 아이가 아장아장 모래 위를 거닐고 있었다. 엄마는 두 아이 곁에 앉아서 번갈아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연년생을 키우는 사람으로서 딱 저 때가 육체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첫째는 간신히 직립보행을 시작했으나 미숙하기 그지없고, 둘째는 누워 있거나 겨우 네 발로 기어 다니던 바로 그 시기. 그럼 엄마는 둘째를 유모차에 태우거나 아가띠로 멘 채 어디로 튈지 모를 첫째를 쫓아다녀야 한다. 양손이 유모차에 걸쳐져 있다면 첫째를 붙잡아줄 수가 없고, 둘째를 몸에 메고 있다면 손은 자유로울지언정 아기의 무게로 인해 목, 어깨, 허리, 무릎 등에 무리가 간다. 나도 그 시기를 일 년 가량 거치면서 완전한 거북목으로 거듭나고 말았다.
엄마의 몸이 버거우면 아이들의 활동에도 제약이 생긴다. 나 역시 첫째를 놀이터에서 잔뜩 놀리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그러려면 다른 보호자를 동반하거나 아니면 아예 둘째를 어디에 맡겨 놓고 나왔어야 했다. 이런 번거로움들이 반복되다 보면 점점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길을 선택하게 된다. 한껏 제 신체적 능력을 시험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 집안에만 있으라는 건 벌이다. 그럼 아이들은 이내 지루해져서 투정을 부리거나 엄마한테 놀아달라고 매달린다. 그 모습을 보는 엄마도 덩달이 마음이 불편해진다.
놀이터에서 본 그 캐나다 엄마처럼 모래 위에 담요 한 장 깔아주면 되었을 것을. 그럼 첫째 아이가 노는 동안 둘째를 방치하지 않아도 되고, 둘째를 돌보면서도 첫째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었을 텐데. 왜 나는 그 생각을 못했을까? 창의력이 부족해서였을까? 맞다. 나의 창의력은 딱 내가 몸 담고 살아온 문화적 테두리 안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문화적 테두리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창의력 천재였다 한들,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는 한국 놀이터에서 나 홀로 6개월짜리 아기를 모래바닥에 눕혀놓는 일은 어려웠을 테다. 지난 글에서도 썼듯이 한국 육아의 위생관념상 그게 쉽지도 않을뿐더러, 머릿속으로 그려봤더라도 다른 이들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미처 실천에 옮기진 못했을 것 같다.
조금의 용기와 창의력이 있었더라면 나는 거북목이 되지 않았으려나? 그렇게 내가 먼저 신선한 놀이터 문화를 만들어 갔더라면 나뿐만 아닌 다른 엄마들도 거북목이 될 운명에서 건져질 수 있었을까? 다자녀도 얼마든지 엄마 혼자서 놀아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면 우리는 더 과감히 둘째, 셋째를 계획할 수 있었을까? 우리 아이들은 좀 더 자유롭게 세상을 탐험할 수 있었을까? 그 시기를 덜 지루하게, 덜 짜증스럽게, 덜 미안하게 보낼 수 있었을까?
이곳에 온 지 고작 일주일이지만 나는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많은, 그러나 알고 보면 별 쓸데없는 것들에 매여 살아왔는지 절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