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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겸상하는 캐나다 일상

캐나다에서 엄마직에 종사합니다.

by 누스

글을 쓰는 지금 캐나다는 6월 18일 오후 4시가 되어 가고 있다. 토론토에 온 지도 벌써 5일이 지났다. 처음 며칠은 시차 적응하느라 애를 먹었지만, 이내 리듬을 되찾았다.


아침 6시가 좀 지나면 둘째 녀석이 배가 고프다며 엄마를 깨운다. 활동량이 많아져서인지 아님 한국처럼 잘 챙겨 먹이지 못해서인지 금방 허기지는 모양이다. 여하튼 둘째의 배꼽시계에 맞춰 일찌감치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뭐니 뭐니 해도 아침 메뉴로는 바삭하게 구워진 토스트가 최고다. 애들도 군말 없이 잘 먹는 데다가 준비하기도 편하기 때문이다. 토스터에 베이글을 넣고 기다리는 동안, 머신에 팀홀튼 커피 가루를 넣고 커피를 내리고 있으면 불현듯 '이게 사람 사는 거지'하는 생각이 든다. 커피를 내릴 여유가 있는 아침이라니. 살다 보니 호강에 겨워 글을 쓰는 날이 왔다.


캐나다에 와서 갑자기 서양식으로 먹게 된 건 아니다. 원래 한국에서도 아침 식사는 빵, 과일, 계란으로 적당히 돌려 막기하고 있었다. 달라진 점이라곤, 한국에서는 기계로 계란을 삶았는데 여기서는 물에 직접 넣고 삶는다는 정도? 아 그러고 보니 달라진 점이 또 있다. 드디어 온 가족이 겸상을 하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남편은 이미 출근한 뒤라 아침에 주로 나와 아이들뿐이었고, 그나마도 나는 부랴부랴 애들 등원 준비를 하느라 셋이 나란히 앉아 아침을 먹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남편도 늦게 출근하고, 나는 아예 일이 없다 보니 다 같이 식탁에 둘러앉아 느긋하게 아침을 먹을 수 있다. 미드에서나 보던 장면이 우리 집에서 펼쳐지다니, 놀랍고도 행복할 따름이다. 이제야 사람 사는 것 같다.


다 같이 식사를 하면 기분이 좋은 것 말고도 유익한 게 또 있다. 바로 아이들의 식습관을 유심히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음식물을 넣고 말을 많이 하진 않는지, 부산스럽게 움직이진 않는지, 입을 벌린 채 쩝쩝 거리며 먹진 않는지. 어려서 부모님께 배웠던 식사 예절을 드디어 아이들에게도 가르칠 수 있게 되었다. 돌이켜 보니 한국에선 뭐가 그리 늘 바빴는지, 아이들과 겸상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아침엔 바빠서, 저녁에도 바빠서. 함께 식사하기보다는 식사를 챙기는 데에 급급했다. 아이들의 식사는 나에게 가장 버거운 과제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매일 그 과제를 시간 내에 마쳐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고, 그래서 아이들을 더 다그치곤 했다. 제대로 된 예절을 가르치거나 식사의 즐거움을 알려주기보다는 그저 일을 쳐내는 느낌, 그중에서도 가장 하기 싫은 일을 쳐내는 느낌이 들곤 했다.


역설적이게도 아이들의 식사는 캐나다행을 앞두고 가장 부담이 되었던 일이었다. 그나마 한국에서는 어린이집에서 점심 한 끼와 간식 두 번을 해결하고 오고, 또 주말마다 친정에서 조달받은 친정표 밀키트로 며칠씩 우려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내가 할 일이 많지는 않았다. 그 많지 않은 일만으로도 나는 매일 허덕이곤 했기에 더 걱정이 되었다. 전기밥솥도 없는 그곳에서 냄비 밥을 해가며 애들을 잘 먹여 살릴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역시나 우려하던 대로 냄비 밥은 어려워서 자꾸만 죽과 밥의 경계선에 있는 진밥을 만들고 있다. 차차 나아지겠지. 그래도 다행히 아이들이 곧잘 먹어준다. 전기밥솥은 없어도 겸상할 기회를 얻었으니 이만하면 꽤 쏠쏠한 도전 아닌가?


왜 이렇게 여유로워진 걸까? 솔직히 말하자면 얼마간은 일에 목을 매지 않아도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기간이라 그럴 것이다. 제아무리 캐나다라 해도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아야 하는 처지였으면 이렇게 좋지는 않았을 것 같다. 다신 없을 호사이다. 그런데 아무리 일이 줄었어도 그것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 땅 덩어리 하나 바꿨다고 그럴 것 같진 않고, 도대체 뭐가 날 여유롭게 만드는 건지 여기 있는 동안 차차 알아보려고 한다.


아무튼. 지난 글을 마지막으로 영영 켜볼 수 없을 것 같았던 브런치스토리를 다시 만나 기쁘다. 아이들의 낮잠 시간이 끝나면 곧 사라질 고요의 시간, 아직까진 잘 살아 있다고 생존신고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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