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엄마직에 종사합니다.
내니를 고용한 데에는 몇 가지 기대가 있었다. 그중 하나는 엄마의 육아 부담을 덜기 위함이었고, 또 하나는 나와 아이들의 영어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이다.
내니와 함께 보낸 지난 3주는 어땠을까? 하나보다는 둘이 낫다고, 확실히 내니와 함께라서 오전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있다. 왠지 큰돈 들여 내니까지 고용하는데 집에만 있는 건 아까워서 매번 어떤 활동을 하게 된다. 게다가 나는 대단한 길치인데, 내니가 아니었다면 이 여름에 이 낯선 곳에서 한 손으로는 애들 웨건 끌고 다른 손으로는 구글맵을 보며 다녀야 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나보다는 덜 길치인 내니가 내비게이션 역할을 해주어서 몇 블록 떨어진 곳까지도 거뜬히 다녀온다.
숙소에서도 꽤 알찬 시간을 보내고 있다. 혼자라면 번거롭고 정신 사납다는 이유로 시도하지 않았을 물감 놀이도, 내니와 함께라면 무슨 용기가 생기는지 시도하게 된다. 그 밖에도 애들이 욕조에서 물놀이를 하는 동안 허튼짓 못하게 나 대신 살펴준다거나, 목욕시켜서 내보내면 딸내미 머리 정도는 말려준다. 엄마들은 알 거다. 이렇게 일손 하나 더는 게 큰 도움이란 걸. 내니가 애들을 감시해 주는 동안 맘 놓고 집안일을 하는 게 얼마나 소박한 힐링(?)인지.
아이들 입장에선 내니와 함께 있을 때 좀 더 친절해지는 엄마를 경험할 수 있어서 좋을 것이다. 아무래도 외부인을 의식하게 되니 인성 검열을 더 철저히 하게 된다... 국제적인 나쁜 엄마로 등극할 순 없다며, 내가 국위선양까지는 못해도 나라 망신은 시키지 말아야지 다짐하며... 그녀는 알아듣지도 못할 한국어를 고르고 골라 고운 잔소리로 포장해서 내뱉는다. 지금은 초기보다 인내심이 많이 무너져서 잔소리의 내용은 다소 험악해졌으나, 적어도 나의 목소리 톤에는 최소한의 상냥함이 배어 있다. 한 번은 양심에 찔려서 자기 고백을 했다. "내가 애들한테 하는 말 중 반은 협박, 반은 거짓말인 것 같아. 나는 임상심리학자인데 말이야 하하. 방금도 저기 저 아저씨 무서운 아저씨라고 거짓말했어 하하." 다행히도 심리학도인 그녀는 이론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잘 알고 있었다. 가정보육 길게 해 본 사람은 공감할 것이다. 기나긴 육아에 성인군자 없다. 내니가 있기에 이성을 잃지 않고 하루를 보낼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영어는 좀 늘고 있을까? 나의 경우 영어는 잘 모르겠고 넉살은 확실히 늘고 있다. 별 볼 일 없는 영어실력 그대로 대화만 점점 잘 통하게 되는 신비한 체험을 하는 중이다. 이제 영어로 그녀를 웃기는 것도 가능하다. 한국에서는 나름 친한 친구들에게 웃기다는 소리 종종 듣고 살던 나였다. 나의 유머의 원천은 고통이라서 보통 인생에 고난이 많을수록 더 웃겨지는 경향이 있다고들 했다. 그런데 여기서도 유머가 통하는 걸 보면, 해학을 누릴 정도의 고통이 여전히 있나 보다. 인생이 잘 풀릴 땐 잘 풀려서 좋고, 안 풀릴 땐 웃긴 사람이 되어서 좋은 그런 손해 볼 거 없는 인생이랄까.
아이들의 영어 실력은 어떨까? 부끄러움이 뭔지를 아는 우리 첫째는 영어로는 입도 뻥끗 안 한다. 첫날, 선생님이 한국말을 전혀 모르는 "영어 사람(외국인이라는 뜻이다.)"이란 사실을 알아챈 후로는 아예 대화를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런데 아직 부끄러움이 뭔지를 모르는 우리 둘째는 선생님이 알아들으시든 말든 그냥 한국어로 계속 떠들어 댄다. 그 덕에 내니의 한국어 실력이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 이제 우리 애들끼리 한국어로 쏼라쏼라 말해도 대충 알아듣고는 알맞게 대응한다. 역시 대학교를 갓 졸업한 따끈따끈한 두뇌라서 그런가 학습이 빠르다.
우리 애들의 영어 실력에 큰 변화는 없지만, 그래도 뭐가 좀 익숙해지고는 있는지 자주 듣는 단어들을 픽업해서 흉내 내곤 한다.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엘리베이터 안내 방송이다. "고잉 업, 고잉 다운, 그라운드 플로어" 아까는 퇴근하는 내니에게 아들 녀석이 수줍게 뭐라고 속삭였는데 알고 보니 이 말이었다. "찌유에에~~ (See you later.)" 역시 외국어는 뻔뻔하게 해야 빨리 느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