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엄마직에 종사합니다.
- 나: 있잖아. 한국에는 월요병이란 게 있어.
- 내니: 그게 뭔데?
- 나: 보통 직장인들이 쓰는 말인데, 주말에 쉬다가 월요일에 일하러 가기 싫어서 생기는 병이야.
- 내니: 아. 이해했어.
- 나: 오늘 우리 애들도 바로 그 월요병인 것 같아.
제들 딴에 주말 내내 노는 게 힘들었던 건지(?) 아니면 진짜 월요병이라도 앓는 건지, 우리 애들은 오늘 오전 내내 대단히 진상을 부렸다. 그 꼴을 그대로 내니에게 보이는 게 창피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저렇게 시답잖은 월요병 농담을 던져 가며 험악해진 분위기를 겨우 무마했다.
오늘따라 둘이 별 것도 아닌 일로 치고받고 싸우질 않나, 낮잠 시간은 아직 멀었는데 잠투정을 하질 않나, 소리를 꽥꽥 질러대질 않나, 문법에도 안 맞는 서툰 말로 반항을 하질 않나,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수십 수백 번 엄마를 부르질 않나. 바람이라도 쐬면 나아질까 싶어 아이들을 웨건에 태워서 나왔는데, 제정신이었을 리가 없던 나는 아뿔싸 아이들 신발 챙기는 걸 깜빡 잊었고. 웨건 안에 갇혀서 네가 비켜라 너나 치워라, 으르렁대는 녀석들을 데리고 장을 봤으니 상황이 얼마나 난장판이었을지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리.
다행히 한인 마트에 손님이 없어서 엄청난 피해를 끼친 건 아니었으나,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기에 주인아주머니께 사과드렸다. "저희 애들이 시끄러웠죠. 소란 피워서 죄송해요." 인심 좋은 아주머니께서는 "지나고 보면 아무 일도 아닌데요. 한창 그럴 때죠. 쌍둥이인가 똑 닮았네 허허"라며 우리 집 진상들을 너그러이 봐주셨다.
날이 날이니 만큼 오늘은 부쩍 자녀 교육에 대한 넋두리를 많이 하게 되었다.
나: 그거 알아? 이거 완전 악순환이야. 전문가들은 애들이 문제 행동을 할 때 부모한테 화내지 말고 차분하게, 단호하면서도 따뜻하게 훈육하라고 하거든. 근데 봐서 알겠지만 난 할 일이 엄청 많아. 쟤들 보면서 청소기 돌렸지, 설거지했지, 불고기 만들었지, 만둣국 끓였지, 쌀 씻고 밥 했지(여기선 쿠쿠가 밥을 해주지 않는다)... 그리고 한 놈 말 들어주면 다른 놈은 셈난다고 난리지. 나는 그래서 에너지도 없고 여유도 없어. 현실이 이론하고 달라.
내니: 맞아. 게다가 너는 네 직업도 있잖아(그렇다. 물론 여기에선 일을 쉬고 있지만).
나: 그렇지. 거기다가 애들은 나쁜 짓을 절대 한 번만 하고 끝내지 않아. 계속해 계속. 전문가들은 엄마더러 화내지 말랐지만, 물론 나도 전문가이긴 하지만(여기서 내니는 한 번 웃고), 나는 화가 나버려. 더 힘든 건 우리 애들은 민감해서 엄마가 조금이라도 화난 것 같으면 금방 알아차리고는 더 이상한 짓을 한다는 거야. 마음이 불편하다 이거지. 그럼 난 더 열받고. 이렇게 악순환이 지속되는 거야. 부모가 AI라면 이런 역동이 생기지 않겠지만, 나는 사람인 걸 어째?
(그러니까 뭐 진수성찬 해 먹인다고 불고기에 만둣국까지 끓였냐고 물으신다면... 한 놈은 불고기를 원하고 다른 놈은 만둣국을 원했는데, 입이 짧은 애들을 뭐라도 먹여놓지 않으면 오후 내내 배고프다고 칭얼거리며 낮잠도 안 잘 테고, 그나마 있던 낮잠 50분 간의 휴식마저 사라질 바에야 나로서는 음식 두 개 해버리고 마는 게 최선이었다.)
되지도 않는 영어로나마 열심히 한풀이를 하고 나니 흥분이 좀 가라앉았는지, 오전 동안의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아이들도 훈육의 탈을 쓴 엄마의 악다구니를 받아내느라 힘들었을 테다.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다 안다. 이게 제 분에 못 이겨 우는 울음인지, 어쩔 수 없어서 도와달라는 울음인지. 처음에는 반항하듯 울어 젖히다가 나중에는 지칠 대로 지쳐서 엄마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흐느끼던 아이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다른 훌륭한 부모들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인내심이 썩 좋지 못한 나란 사람은 자주 아이들에게 화가 나며 그래서 종종 실수도 한다. 엄마도 사람이니까 실수할 수 있다는 말도 맞고, 다 그러면서 크는 거란 말도 맞다. 그런데 사람이란 참 간사해서 때론 그런 위로의 말들을 빌미 삼아 형편없는 수준에 푹 눌러앉기도 한다. 더 나은 어른이 되려 애쓰지 않고 버릇없는 애처럼 발전하길 거부한다. 그럼 아이들은 별 볼 일 없는 부모에게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할 뿐 아니라 그 나쁜 짓을 그대로 답습한다.
눌러앉은 부모 자신은 편할까? 글쎄, 최소한 자기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부모라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아이랑 똑같은 수준에서 싸우고 있던 자신의 인간성을 역겹게 느끼며, 두고두고 가슴을 치며 아파할 것이다. 자녀 교육도 성공적일 수가 없다. 최소한 인성적인 측면에선 말이다. 그리고 아이들의 인성이 망가지는 것, 나는 그게 제일 두렵다.
그래서 결국엔 부모가 참아야 하더라.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지 않으려면 부모부터 멈춰야 한다. 어린아이들은 아직 감정을 멈출 줄 모르니까, 조금이라도 전전두엽이 발달한 부모 먼저 절제하는 수밖에 없다. 조금이라도 더 살아온 사람이 먼저 본을 보이고 계속해서 가르치는 것. 실수하더라도 멈추지 않고 계속 연습해서 나의 인내심을 확장하는 것. 이보다 더 좋은 훈육법을 난 잘 모르겠다. 그래서 부단히 곱씹는다.
참자. 참자. 내가 어른이다.
같이 화내지 말고, 같이 흥분하지 말고, 잘 가르치자.
가르치고 연습시키는 수밖에 없다.
부디 잘 참는 오후를 보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