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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와서 달리기 광인이 되었습니다.

캐나다에서 엄마직에 종사합니다.

by 누스

우리 애들은 한창 말을 안 들을 시기에 캐나다에 왔다. 자율성과 주도성은 솟구치지만 자기 조절력과 기술은 부족한, 그래서 메뚜기 떼처럼 지나간 자리마다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는 딱 그 시기에 말이다. 그렇다 보니 하루에 "하지 마", "이거 해"라는 잔소리를 수 백 번씩 하게 된다.


육아 전문가들은 자꾸 입으로 떠들지 말고 가서 눈을 보고 딱 한 마디만 하라고, 아예 이상한 짓을 할 환경을 제공하지 말라고, 타임 아웃 기법 등을 활용하라고 조언한다. 모두 효과적인 방법이고 나도 이것들을 실천하려고 엄청 애를 쓴다. 그런데 현실은 참 야속하게도 이론만으로는 풀 수 없는 퀘스트를 쉴 새 없이 던진다. 예컨대 양파를 다듬는 중에 서로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운다든가, 환경 조성한답시고 내다 버릴 수도 없는 소파 위에서 원숭이처럼 폴짝폴짝 뛴다든가. 내가 무슨 국가대표 선수도 아니고 매번 애들 있는 데까지 걸어가서 눈맞춤할 기력도 없거니와, 이 모든 일들은 항상 동시다발적으로 급박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암만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봤자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 생긴다. 라고 나는 핑계를 대어 본다.


가끔은 나도 이런 내 목소리에 지칠 때가 있다. '아우 말하기도 지겨워'라는 마음의 소리를 무심결에 입 밖으로 낼 때도 (자주) 있다. 애들은 오죽 스트레스일까 싶어 잠시 짠하다가도, 안 들리는 건지 안 듣고 싶은 건지 여하튼 말을 참 꾸준히 안 듣는 아이들을 보면 너네도 참 너네다 싶다. 난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나 보다. 가끔은 멀찍이 앉아서 리모컨 하나 틱 누르면 아이들의 행동이 멈춰지는 상상을 한다.


그런 보잘것없는 나의 말에도 귀 기울여 주는 게 있었으니 그건 당연히 남편은 절대 아니고, 바로 트레드밀이다. 트레드밀은 어찌나 기특한지 구태여 목 아프게 말로 할 필요도 없다. 원하는 대로 버튼을 누르면 누르는 대로 따라준다. 내가 가겠다면 가고 멈추겠다면 멈추는 이 고마운 녀석은, 통제 불가한 요즘 나의 삶에서 거의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다.


그런 트레드밀을 처음부터 이토록 사랑했던 건 아니다. 예전에는 마지못해 만나야 하는 어려운 손님 같았지만, 딱히 혼자서 놀 시간도 놀 거리도 없는 캐나다에 와서는 그에 대한 나의 애정이 부쩍 깊어졌다. 남편이 퇴근하면 한 시간 정도 아이들을 맡겨 놓고 나는 숙소 내에 있는 짐으로 향한다. 그 시간만큼은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다. "으라차차 힘센차~ 사랑의 하츄핑~"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아이들의 동요 대신 오로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나는 달리기 시작한다.


내 말을 들어주는 건 트레드밀뿐이라 냅다 달렸더니,
7월 한 달 동안 무려 127.7km를 뛰었다
(누적 거리, 실내 러닝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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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개천이나 3킬로씩 슬슬 달리던 런린이로서는 어마어마한 성과이다. 덕분에 한 시간을 쉬지 않고 달려도 헐떡이지 않는 심폐력도 얻었다. 시작한 지 30분쯤 지나면 엔도르핀이라는 합법적인 천연 마약 물질이 뇌에 뿌려진다. 그때부터는 발바닥이 땅에 닿을 때마다 규칙적으로 느껴지는 온몸의 흔들림을 더욱 즐길 수 있다.


달리기를 비롯한 운동은 엄마들의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몇 안 되는 수단이기도 하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자기 자신에게 "잘했다"라고 칭찬하고픈 일은 많지 않다. 아니, 실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루를 돌아보면 잘한 일보다는 아이들에게 잘 못해준 일, 미안한 일, 후회되는 일들이 먼저 떠오르곤 한다. 하지만 운동은 하기 전엔 싫을지언정 다 하고 나서는 반드시 기분이 좋아진다. 적어도 하나는 제대로 해냈다는 뿌듯함, 그리고 새롭게 얻은 힘으로 육아도 다시 잘해볼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 이 시간에는 아이에게만 맞춰져 있던 관심의 초점도 다시 나에게로 가져올 수 있다. 하루 내내 소외되었던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잠시나마 돌아보며 위로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다.


달리기의 효과는 내 안에만 머물지 않고 멀리 퍼져갈 것이다. 흠뻑 땀을 흘리고 나면 갑자기 사람이 착해진다. 스트레스 풀었지, 자신감도 넘쳐나지, 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때부터 얼마 동안은 아이들도 착한 엄마를 경험할 수 있다. 그런 엄마의 상냥함을 타고 아이들의 마음에도 엔도르핀이 전해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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