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엄마직에 종사합니다.
밤잠을 설친 지 어언 4년 반이 지나고 있다. 잠버릇이 아주 고약한 아이들을 연달아 둘이나 낳아 기르고 있기 때문이다. 애들 잠버릇이 고약해봤자, 이렇게 생각하실 분들을 위해 좀 더 설명해 보자면.
- 내 입으로 말하기 남사스러울 만큼 오래, 아주 질리도록 오래 모유수유를 하게 되었고(자의로 시작했으나 타의로 지속 중), 그중 한 놈은 그 악명 높은 젖물잠*을 하는 바람에 나는 인간 쪽쪽이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 누구라고 밝히진 않겠지만 우리 집 녀석들 중 한 분께서는 두 돌이 넘도록 자다가 갑자기 깨서 울기를 반복했고, 나는 그때마다 아이의 울음이 다른 집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노심초사하며 아이를 달래야 했다.
- 어떤 녀석은 잠들기까지 평균 한 시간 반이 걸리곤 했는데, 엄마의 손등을 애착 인형 내지 스트레스 볼로 삼아서 꼬집고 쥐어뜯는 바람에 손톱자국이 선명히 남곤 했다.
- 둘 다 엄마 껌딱지 유전자를 타고났는지... 대단히 훌륭하신 아버지를 두고도 잠은 꼭 나랑만 자려고 한다.
(* 젖물잠: 젖을 물고 자는 습관으로, 젖물잠을 하는 아기들은 밤 중에도 엄마 젖을 수시로 찾고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한다.)
이 지난한 세월을 고작 4년 반이라는 몇 글자로 줄여서 쓰자니 고통이 절절히 표현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굳이 천육백사십일 가량의 수난을 겪고 있노라고 말해 본다.
분리수면은 왜 안 했냐고? 내가 안 했겠나? 못한 거지. 분리수면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잠버릇이 순한 아기를 점지당하신 참으로 부러운 분, 아니면 아이를 길러본 적이 없으신 분. 나도 그 유명한 책의 제목처럼 똑똑하고 게으르게 아이를 재워보고 싶어서 별 짓을 다해봤지만... 똑똑함이 부족했는지 게으름이 부족했는지 여하튼 나는 몽. 땅. 다. 실패했다.
아 참. 갸륵하게도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건 아니다. 분리가 되긴 했다. 애들 말고 애들 아빠가 저 방에서 혼자 주무신다.
캐나다에 오기 직전엔 언뜻 희망의 빛을 보기도 했었다. 둘째도 슬슬 통잠을 자길래, 아 이제 나에게도 해방의 시기가 올 건가 보다 기대했었다. 그런데 웬걸? 오대호에서 수맥이라도 흐르는지 뭔지, 캐나다에 온 후로 밤만 되면 이 녀석이 매미처럼 나에게 들러붙는다.
그래서 나는 한 달 반 째, 마치 신생아를 키울 때처럼 두어 시간마다 잠에서 깨는 중이다. 나만큼이나 잠을 설치는 중인 우리 둘째 역시 컨디션이 좋을 리가 없으니, 낮엔 아이의 투정과 짜증에도 시달려야 한다. 그나마 그동안 다져온 체력과 내 나름의 방식으로 버티곤 있으나, 가끔은 탁. 퓨즈가 끊어진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매일 겪는 불면증인데도 오늘따라 유난히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니냐? 나도 잠을 자야 살지. 이러다 나 병나면 네가 책임 질래?'
"아이들은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평소보다 얌전했다." 이런 전개면 얼마나 좋았으랴? 빠삭한 눈치도, 자기 조절 능력도 아직 다 발달했을 리가 없는 애들은 엄마가 힘든 날엔 더 얄궂게 투정을 부린다. 그러면 아이들과 나 사이에 사나운 감정의 소용돌이가 만들어진다. 그 소용돌이에 발끝이라도 살짝 닿으면 평소 나를 어른답게 살도록 지켜주던 이성의 끈도 풀리고 만다. 그런 순간엔 어른답지 못한 짓을 퍽이나 하게 된다. 아니, 어떤 면에선 애보다 더 못한 짓을 하게 된다.
이런 날이 최악이다. 감정 조절에 완전히 실패한 날. 욱하는 건 순간이지만 결과는 어마어마하다.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 후회, 죄책감, 나 자신에 대한 실망과 혐오 등. 내 인성의 처참함을 두 눈으로 낱낱이 확인한 그 더러운 기분을 말로 다 할 수 없다.
내가 아이들에게 절대로 해선 알될 짓을 해서가 아니다. 개인적으로, 유행처럼 번진 심리학이 육아에 대한 기준을 한껏 높여 놨다고 생각한다. 그런 탓에 요즘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심리적으로 흠이 없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다. 그리고 강박적으로 아이들의 '행복'을 도모한다. 행복? 말이 쉽지, 그 얼마나 모호하고도 숭고하며 달성하기 어려운 기준인가?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 높디높은 기준은 마치 삶의 기본 전제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다. 때문에 행복의 하한선에도 미치지 못한 것 같은 날엔 온갖 자괴감이 밀려온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이론이 그런 비합리적인 완벽을 강요하는 게 아니란 걸 잘 알면서도, 막상 삶의 현장에선 가타부타 따질 여력이 없다. 대세를 거스르기가 이토록 어려운 일이다.
행복에 실패한 날엔, 순식간에 내 인생 전체가 아주 형편없는 것으로 평가절하되기도 한다. 가슴으로는 불행에 가까운 감정들을 느끼면서도, 이성은 아직 양심이 남았는지 극적인 나 자신을 나무란다. '등 따습고 배 부르면 됐지 뭐. 엄살 부리지 말자.' 하지만 핀잔해도 소용없다. 오늘 하루, 다시 웃으며 아이들을 대할 수 있을까?
내 경험상, 감정이 나락으로 떨어진 순간엔 갑자기 감사 일기를 쓰며 삶의 다행스러운 부분들을 곱씹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진정한 감사는 끓어오른 분노와 속상함이 어느 정도 가라앉은 후에나 가능하다. 감정이 휘몰아칠 때, 그리고 나 혼자서 차분히 그 감정을 달래고 있을 여유가 없을 땐(다리에 매달린 두 아이를 떠올려 보라), 차라리 행복이나 심리 같은 건 관심도 없는 사람처럼 투박하게 생각하는 게 더 낫다.
힘들면 뭐 어쩔 거야? 포기할 거야?
어쨌거나 내가 엄마니까 얘들을 키워야 해.
좀 안 행복하면 어때. 애들 밥 안 굶기고 내 할 일 하면 됐지.
아무렴 어때. 그냥 사는 거지 뭐.
사실 아예 틀린 말도 아니다. 사람이 어떻게 맨날 행복하겠나?
그냥 엎치락뒤치락하면서 행복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조금씩 가는 거지 뭐.
그렇게 생각을 일단락 지은 후엔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야 한다. 기왕이면 분위기를 전환할 수 있도록 집 밖으로 나가는 게 좋다. 내 힘으로 감정의 소용돌이를 피할 수 없을 땐 외부의 힘을 빌려와야 한다. 햇볕을 좀 쬐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 틈에서 분주함을 느끼며, 비극으로 치달을 뻔했던 망상에 현실감각을 찾아줘야 한다. 일단 집 밖으로 나가서 좀 걷기 시작하면 많은 게 바뀐다. 그 효과를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오늘도 애들을 유모차에 싣고 부지런히 밖으로 나섰다.
그렇게 한두 시간이 지났을까? 장난기가 가득 서린 아이들의 눈이 다시금 귀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 눈에서도 독기가 좀 빠졌는지 애들이 슬슬 장난을 걸어왔다. 달려와서 와락 안기는 말랑한 몸짓도 그다지 성가시지 않았다. 용케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왔다. 그렇게 오늘 하루를 또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