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던진 "욕"을 나는 먹지 않겠다.

귀는 못 지켜도 마음은 지키는 법

by 누스
신입 사원 정 만만(28세, 회사원) 씨의 귀는 오늘도 성할 새가 없다. 무섭기로 유명한 사수 때문이다. 만만 씨가 아직 일을 배우는 단계라 미숙한 건 사실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수의 말은 너무 아프다. 남들 보는 눈이 있어서인지 대놓고 욕설을 내뱉지는 못해도 만만 씨의 인격을 교묘하게 비하하고 자존심을 깎아내리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다.

그런 말을 듣고 나면 정신이 혼미해져서 다시 일에 집중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사수 앞에만 서면 심장이 쿵쾅거릴 정도로 너무 긴장해서 평소보다 실수도 더 많이 하게 된다. 사수의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은 각오해야 한다. 별 거 아닌 일까지 트집을 잡아 마음을 후벼 파기 때문이다. 사수는 기분에 따라 말이 달라지기 때문에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도 난감하다. 언젠가 수정하라는 대로 고쳐간 자료를 보더니 “시키는 대로만 해서 발전이 없을 사람”이라기에, 다음에는 용기 내어 아이디어를 하나 덧붙여 봤더니 “뭣도 모르는 신입 주제에 건방지게 나댄다”라고 욕을 먹었다.

앞으로도 일 년을 함께 해야 하는 사수이기에 만만 씨는 최대한 잘 지내보려고 갖은 애를 썼다. 사수에게 혼이 날 때마다 배우는 과정일 뿐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여 왔고, 일을 완벽히 해내려고 자처해서 야근을 하는 날도 많았다. 하지만 그렇게 욕받이로 반년 넘게 살다 보니 만만 씨는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어떻게 추스러야 할지 더 이상은 모르겠다. 사수의 말처럼 자기가 무능하고, 쓸모없고, 주변에 피해만 주는 멍청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렵게 입사한 회사를 관둘 수가 없어서 꾸역꾸역 출근은 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살다 보면 욕을 먹을 때가 있다. 그중 얼마는 내 잘못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 "아이코 죄송합니다"하며 스스로를 되돌아보지만, 때로는 별 이유 없이 욕을 먹기도 한다. 생판 모르는 사람이 하는 욕보다는 아는 사람이 하는 욕이, 그냥 아는 사람이 하는 말보다는 아주 친밀한 사람의 그것이 더 쓰다. 예컨대 가족 같은 사이 말이다.


욕을 들으면 일단 불쾌하다. 나를 위해서 한 말이든, 화자 자신을 위한 분풀이이든 간에 결코 듣는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들지는 못한다. 그나마 진정으로 청자를 위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면 어떻게든 이를 활용해볼 수 있다. 순간적인 불쾌감이 잦아든 후, 그 안에서 교훈적인 메시지를 골라내어 반성과 발전을 위한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대개 진심 어린 조언이나 충고는 듣는 사람 입장에서도 "욕지거리"나 "맹비난"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스스로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해 가시처럼 마구 삐져나온 말은, 재활용도 안 되는 처치 곤란이다. 욱해서 내뱉은 말은 그저 감정 조절의 실패를 알리는 소음일 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우리의 귀에는 필터가 없다. 내게 도움이 되고 가치가 있는 말만 쏙쏙 뽑아 들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무분별한 무한대의 언어 속에서 나의 양 귀는 헐벗은 채 서있다. 그러다 누군가가 던진 돌에 맞기라도 하면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곤 한다. (그렇게 돌에 맞아 찢어진 상처를 봉합하고자 정신과나 상담소를 방문하시는 분들이 많다.)


중요한 것은 돌에 맞은 사람의 반응이다. 만만 씨는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나도 맞불을 놓을까? 아니지. 당한 게 있는데 내가 맞은 것보다 더 센 돌을 찾아 던질까? 그런데 내가 더 센 돌 찾으러 가는 동안 상사가 시킨 일은 누가 대신 처리해주지? 그랬다가 나도 똑같은 사람 되는 거 아냐?” 왜 이런 고민마저도 돌 맞은 개구리의 몫인지 참으로 분통이 터질 노릇이지만 각설하고.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복수의 성격을 띠는 일은 소모적이요, 그 사이에 손해를 보는 내 인생은 아무도 책임져 주지 않으며, 되갚음에 초점을 맞추는 순간 나의 품격도 왠지 바닥으로 떨어지는 듯하다. 더욱이 인생은 불공평하므로 복수의 뒷수습마저도 내 몫이 될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스친다. 마치 어린 시절, 화가 나서 연필을 집어던졌는데 괜히 심만 부러지고 멀리까지 데구루루 굴러간 연필을 또 내 손으로 주우러 갈 때의 그 비참함이랄까. 그럼 그냥 울고만 있어야 할까? 이건 또 나 자신이 너무 불쌍하고 원통해서 용납이 안 된다.


그러다 어느 날 만만 씨에게 묘안이 떠올랐다. 누군가 나에게 욕을 해도 나는 그 "욕을 먹지 말아야겠다"는 생각. 얼핏 보면 말장난 같지만 장난기를 걷어내고 보면 꽤 유용하다. 누군가 던진 욕을 뭐하러 다 받아먹어줘야 하나? 대놓고 귀는 못 막더라도 마음에는 방패를 씌워서 소중한 이 내 마음을 지켜야지. 내게 잘못이 있다면 진지하게 반성하고 깨끗하게 사과하겠지만, 그저 자신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 달라는 일방적이고도 무례한 요구에는 일일이 응해줄 필요가 없다. 귀에 “들리는” 말이라고 모두 “귀담아” 들을 필요는 없다. 경청의 태도를 버리라는 뜻이 아니다. 일차적으로는 말하는 사람이 자신의 말에 책임감을 가져야 하지만, 듣는 사람 역시 최소한의 자기 보호를 위한 분별력은 지녀야 한다.


여러 번의 퇴고를 거칠 수 있는 글과는 다르게, 말이란 부단히 절제하지 않으면 자체적으로 검열과 교정을 거치기 어렵고 한 번 내뱉은 후에는 주워 담을 수도 없다. 특히나 충동적인 분노로 가득 찬 경우 이처럼 복잡한 인지적 작업을 거칠 새도 없이 말이 불쑥 튀어나오곤 한다. 따라서 욱해서 하는 말은 오류 투성이다. 화자가 부정적인 감정에 압도되어 통제력을 잃으면 타인의 장단점과 상황의 모든 측면을 고려한 통합적 시각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러니 이때 내리는 판단이 객관적이고 정확할 리도 만무하다. 예를 들어, 상대의 약점은 일반적인 것으로 과장하고, 강점은 축소할 때가 많다. 그래서 A도 잘하고 B도 잘하지만 C는 좀 부족한 사람이 “넌 대체 잘하는 게 있긴 하냐?”라는 말을 듣게 되고, 평소에 잘하다가 오늘 작은 실수 하나를 했을 뿐인데도 “넌 인간이 왜 늘 그 모양이냐?”는 오명을 쓰게 된다. 이처럼 약점만 극대화한 말은 청자에게 “나는 무능력한 사람”이라는 낙인을 새기고, 만에 하나 평소에도 자존감이 낮았던 사람이라면 이는 더욱 치명적인 상처로 남는다. “나는 이건 잘 하지만 저건 좀 어려워”, “오늘은 실수를 했지만 제대로 해낼 때가 더 많았어”라고 생각하면 그저 가벼운 불쾌감 정도로 넘어갈 일이지만, 어떤 개구리는 돌에 맞은 상처가 치명적이라 죽을 수도 있다.


따라서 듣는 사람은 나의 모든 인생과 존재를 마음대로 평가하며 난도질해주십사 화자에게 모든 권한을 쥐어주지 말고, 막말에서 사실과 거짓을 변별하여 교훈은 건지되 오류는 걸러내겠다는 능동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 상대가 나를 통합적으로 봐주지 않는 순간에는 스스로라도 자신의 강점과 썩 괜찮았던 모습들을 기억하며 비수가 마구 난도질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이렇게 내 마음을 지키기로 마음먹으면, 모욕적인 말을 들을 때에도 이것이 자존감에 영구적인 상처를 입히거나 깊은 우울감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줄어든다. 따지고 보면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하는 건, 화자의 문제이지 듣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욕을 듣고 생긴 불쾌감은 얼마간 남겠지만 그 무게가 가벼워서 약간의 시간과 나름의 스트레스 해소법으로도 충분히 털어낼 수 있다. 청자가 그것을 받아먹지 않기로 결심한다면 욕은 그저 소음일 뿐, 말로서의 힘은 잃는다. 그렇게 지켜낸 시간과 에너지는 고스란히 당신의 인생을 아껴주는 데에 사용할 수 있다.


그러니 욕먹을 짓도 안 했는데 누가 당신에게 욕을 하면, 덩달아 흥분하거나 무작정 슬퍼하지 말고 그를 향해 마음의 거울을 들어 보자.

네, 님. 반사요.

누군가에게 분풀이로 욕을 할 수밖에 없다면, 이러한 인격을 소유한 당사자가 본인의 실력을 제일 안타까워하며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아야 한다. (물론 감정 조절이 미숙한 데에는 나름의 깊은 역사와 배경이 있을 것이므로 역시 함부로 비난해선 안 된다.) 어쨌든 그건 그의 몫이니 그에게 남겨 두고, 나는 나 좋은 일 해주러 가자. 불쾌감은 먼지처럼 털어 버리고.



* 표지 사진 출처: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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