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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스 Oct 20. 2022

출산까지 D-9

남은 자유 시간도 9일

  출산 예정일이 9일 앞으로 다가왔다. 아무것도 몰라 겁이 없었던 첫째 출산과는 달리, 둘째 때는 이미 알고 있는 그 소굴로 다시 들어가는 기분이다. 생 진통을 겪어 봤으면서*, 일 년 넘게 모유수유하느라 통잠 한 번 자본 적 없으면서, 죽겠다 싶을 만큼 육아가 힘들었던 매 순간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면서

(* 필자는 자연주의 출산을 해서 무통주사를 맞지 않고 첫째를 낳았다.)

연년생을 가진 내가 위너 ^ㅡ^


  어젯밤에는 잘 자다가 갑자기 자지러지게 우는 첫째를 달래며 애 둘을 동시에 재우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싶었다. 대충 시뮬레이션을 돌려봤다.


"둘이 동시에 울면 나는 목청이 큰 첫째 녀석을 달래야겠다. 그러다 보면 둘째는 비빌 언덕이 없음을 일찌감치 깨닫고 알아서 잠들어주겠지. 그토록 염원했으나 결코 성공하지 못한 수면교육을 강제로 하게 되겠군. 나쁘지 않네 하하."


  혼자 핑크빛 미래를 꿈꾸다가, 행여나 뱃속에 있는 둘째가 어미의 계략을 알아차리고 반항심에 청개구리처럼 굴까 봐 얼른 생각을 숨겼다. 그리고 경험상 이런 종류의 핑크빛 기대는 항상 엇나가므로 차라리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게 낫다.


  하긴. 수면의 질이 워낙 좋지 못한 첫째를 토닥이느라 늘 잠을 설치는데(그렇게 잠을 설쳐온 지 어언 19개월…), 요즘은 임신 막달의 불면증까지 도져서 밤잠은 이미 못 자고 있다. 소음도 움직임도 없는 고요한 밤에는 생각이 큰 소리로 머리에서 울린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둘째 출산과 연년생 육아에 대한 공포가 엄습해 온다. 이걸 하겠다고 덤벼든 과거의 나를 탓해본들 무슨 소용이랴. 받아들이는 수밖에.


  요즘 유행하는 MBTI로 설명하자면, 나는 늘 계획에 둘러싸여 사는 확신의 J이다. 하지만 지금 내게 계획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것이다.


무계획이 계획입니다^ㅡ^


  오늘의 나는 미래의 나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려 한다. 현재로선 손 쓸 일이 없으니 미래에 살고 있는 자네가 해결하시게. 원망은...이 무모한 공을 쏘아 올린 과거의 자네에게로 돌리시게.


  얼마 뒤면 첫째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동안 잠시 커피를 홀짝이며 책을 읽거나 글을 끄적이던 자유도 사라질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의 자유는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소중한 시한부의 휴식에 생각이 나를 삼키지 않도록* 오늘은 산책하며 일광욕이나 실컷 해야겠다.   (* <생각이 나를 삼킨다.>)



* 표지 사진 출처: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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