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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스 Aug 08. 2022

아기 목욕 인수인계하기

육아는 혼자서 완벽히 해낼 수 없다.

  아기 목욕은 늘 내가 도맡아 왔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남편 퇴근 시각에 맞춰 목욕을 시키면 아이가 너무 늦게 잠들까 봐, 하루 종일 일하고 와서 본인 씻고 허기 달래기도 바쁜 사람에게 목욕까지 부탁하기 미안해서 등. 그런데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걸림돌이 있었다. 손은 빨라도 꼼꼼하고 차분한 모습은 부족한 남편이 이 여리디 여린 작은 생명체를 잘 씻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못마땅함과 불안함을 견디느니 차라리 내가 힘들고 말지 하는 심정에, 불어난 몸을 하고도 활어처럼 파닥거리는 아기를 나 홀로 안고 들고 쫓아다녔다.


  그러다 임신 후기에 접어들자 더 이상 목욕 인수인계를 미룰 수 없게 되었다. 남편도 슬슬 아기 목욕을 손에 익혀야 언제 둘째가 나오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큰 아이를 돌볼 수 있을 테니.


  “수건, 옷, 로션, 새 기저귀는 미리 꺼내 두는 게 좋아. 우리 욕실은 좁아서 여기랑 여기 부딪히기가 쉬우니 조심하고. 얼굴은 이걸로 씻기지 말고 머리는 잘 엉키니까 이걸로…블러블러 …”

  퇴사하는 것도 아니면서 퇴사자라도 된 것처럼 전임자의 노하우를 전수했다. 그리고 드디어 실습을 마쳤다. 와 역시 직장생활 짬을 무시할 순 없는 건가? 평소 우당탕탕 덤벙거리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일 머리 좋은 남편은 전임자 마음에 쏙 들게 과제를 해냈다. 그래 좋아! 이 기세를 몰아 둘째 목욕까지…


  남에게 일을 맡기지 못하는 사람들은(나는) 흔히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 아마도 그 마음 저변에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고 싶다는 욕구가 있을 것이다. 얼핏 보면 책임감이 강하고 의욕적인 모습이지만, 사실은 통제력을 잃게 될 것만 같은 불안함이 자리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육아에서는 나의 기대와 예상으로부터 안 좋은 쪽으로 벗어나는 순간들이 많았다. 특히 아이의 입맛이 한창 변덕스러운 시기에는 밥을 먹이는 일이 제일 곤혹스러웠다. 돌쟁이의 식사 시간은 혼돈과 무질서 그 자체이다. 일단 음식을 곱게 입으로 가져가는 법이 없다. 얌전히 뱉기라도 하면 감사하지 볼바람을 한껏 넣어 뿌우 뿌우 엄마의 얼굴에 뿜어대지를 않나, 먹지 않고 피부에 양보하실 건지 손으로 조물딱 거리다가 머리에 바르기를 반복한다. 몇몇 훌륭하신 어머니들은 이러한 아기 주도의 과정을 하루 세 번씩 느긋하게 바라봐주신다지만, 나는 그런 부류가 확실히 아니었나 보다.


  육아에서 카오스를 경험하는 것이 어디 이뿐이랴? 수면 교육을 제대로 하겠다며 출산 전부터 사읽은 책이 무색하도록 우리 아이는 돌 넘어서까지 밤중에 젖을 먹었다. 분리 수면을 시키겠다고 아기 침대를 열심히 썼으나 결국 분리된 것은 애가 아닌 남편이요, 아이와 나는 작은 매트 위에서 한 몸처럼 같이 잔다. 오은영 박사님께서 아이들은 천 번 만 번 가르쳐야 한다며 “쓰읍!” 따위로 겁주지 말라고 하셨는데, 어떤 날은 이놈, 쓰읍 빼면 할 말이 없다. 환상은 환장이 되었고, 영화 <기생충> 속 대사처럼 어느덧 무계획이 가장 완벽한 계획임을 깨달았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나란 사람이 어찌나 피곤하게 모든 것을 움켜쥐고 살아왔는지 알게 되었다. 물론 세상에는고삐를 바짝 조여야만 성취할 수 있는 일들이 있고, 그 덕에 먹고 살 방편을 마련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육아라는 것은 통제가 먹혀드는 종류의 일이 아니다. 아무리 배의 방향키를 꼭 쥐어도 갑자기 불어오는 바람과 파도에는 어찌할 도리가 없듯이 말이다. 게다가 혼자서는 육아라는 망망대해를 절대로 건널 수 없다. 그러니 마뜩잖더라도 주변 사람들을 믿고 맡기는 연습이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만약 상상력 부족한 나의 예측대로만 모든 것이 뻣뻣하게 흘러갔더라면, 혼자서 완벽히 통제할 수 있는 시시한 일들만 펼쳐졌더라면, 인생이 얼마나 무미건조했을까? 이제는 힘을 좀 빼고, 지루할 틈 없이 넘실대는 이 파도에 나를 맡겨봐야겠다.


* 표지 사진 출처: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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