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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스 Oct 23. 2022

먹이려는 엄마와 뱉으려는 아이

아기 밥 먹이기 전쟁

  육아 “전쟁”이라는 말에 본격적으로 공감하기 시작한 건, 아이가 사람다운 밥을 먹으면서부터였다. 젖이든 이유식이든 천사처럼 받아먹던 아이가 돌 즈음부터 서서히 주관이 뚜렷해지더니, 마음에 안 들면 소리를 지르거나 내팽개치며 신체 발육을 자랑했다.


  아이로서도 혼란스러웠을 테다. 머리 좀 컸다고 호불호는 생겼지, 불편함은 솟구치는데 이걸 표현하는 방법은 아직 모르지. 이맘때 아이들이 수 틀리면 드러눕고 생떼를 부린다는 사실을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일춘기라고 불리는 시기가 도래하니 결코 우아한 이론만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난장판이 펼쳐졌다. 특히 끼니때만 되면 음식을 먹이려는 자와 뱉으려는 자의 알력이 극에 달했다.


  평소에 대단히 깨끗한 사람도 아니면서 기름진 음식 파편이 여기저기 널브러지고 아이의 손과 발, 머리가 끈적하게 더러워지는 꼴은 견디기가 어려웠다. 언제부터 그렇게 깔끔을 떨었다고 가제수건으로 주변을 연신 닦아대다가 제풀에 지칠 때면 화살이 아이를 향하곤 했다. 그런 날 밤엔 자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거듭 사과를 해보아도, 죄책감과 울적함이 쉽게 가시질 않았다. 매일 내 인성의 바닥을 확인하던 날들이었다.


  요즘에는 레시피 정보 좀 얻어볼까 해서 아기 식단을 공유하는 인플루언서들 몇몇을 팔로우한다. 매일 올라오는 사진 속에는 손님 상으로도 못 차릴 것 같은 휘황찬란한 반찬들이 고운 자태를 뽐낸다. 김가루와 달걀흰자로 캐릭터 얼굴을 그려 넣은 주먹밥, 오색 반찬, 신선한 유기농 식재료들을 보면 존경스러움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하다. 여기에 비해 우리 아이 밥그릇은 안 뱉는 음식 위주로 이것저것 비벼놓은 멍멍이 맘마 같아서 괜스레 미안하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숟가락에 밥을 올려 야무지게 제 입으로 가져가는 아기들의 영상이다. 이토록 성숙한 밥 먹기 스킬이라니, 차라리 CG 효과라고 우기고 싶을 정도로 믿기 어려운 광경이다. 우리 아가도 저렇게 차려주면 숟가락 안 던지고 잘 먹으려나? 하지만 어차피 난 흉내 낼 수 없는 경지이므로 이내 마음을 접는다.


  다들 애 밥은 어떻게 먹이는 걸까? 나만 유난인 건지, 아니면 모두 겉으로는 티를 안내도 눈물을 머금고 존버하는 중인지. 일일이 물어볼 수 없으니 그냥 속 편하게 후자라고 생각하자.


  밖에서는 제법 사람 구실을 하는 내가 애 밥에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1. 쫓아다니며 걸레질하는 게 몹시 버거운 임산부의 몸
2. 알고 보니 은근히 깔끔 떠는 성격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왜 주는 대로 먹지 않고 뱉는 모습을 볼 때 유독 화가 솟구칠까? 여기에는 “네가 감히 나를 거역해?”라는 무시무시한 심리가 숨어 있는 듯했다. 나는 예의범절을 중시하는 가정에서 자랐고, 성향 자체도 체제에 순응적인 면이 강하다. 그런 사람이 부모라는 권위자의 위치에 오르니 자식이 토 달지 않고 순종해줬으면 하는 기대를 품은 모양이다. 이런 부모들은 아이가 자기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면 “어디 감히”, “버릇없게”를 시전 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 쉽다. 말이 좋아 훈육이지, 아이 입장에선 애답게 굴었을 뿐인데 갑자기 혼나야 하는 억울한 상황인 셈이다.


  다행히 이런 내 모습을 알아차린 후로는 좀 더 여유가 생겼다. “어이쿠 우리 00가 음식을 맛보기만 했네. 다음엔 잘 먹어보자^^” 라며 상냥하게 받아칠 수준은 여전히 못되지만, 적어도 그게 아이 탓이 아니라 내 문제임은 안다. 감정에 끌려 다니던 때와 달리, 이제는 이성이 감정의 고삐를 잡아 폭발하지 않도록 돕는다. 너무 잘 먹이려는 부담도 내려놓았다. 등원 준비로 바쁜 아침엔 빵과 시리얼과 우유로 허기를 달래 보내는 편이 나와 아이 모두 행복한 길이므로.


  엄마들은 아이가 먹지 않으면 속이 상하고 걱정된다. 그래서 잘하려고 애쓰다 보니 때로는 너무 힘이 들어가서 되려 일을 그르친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심호흡과 "이만하면 괜찮다"는 마음의 여유이다. 남은 국에 휘휘 만 밥을 떠먹여도 엄마와 아이가 행복한 식사 시간을 보낸다면 괜찮다. 아기에게는 엄마의 웃는 얼굴이 최고의 별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쁜 엄마라 자책하지 말고, 우리 아이들에게 따뜻한 웃음 밥 한 그릇씩 지어주자.


* 표지 사진 출처: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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