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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대

놀잇감이 없을 때 아이들과 시간 때우는 법

by 누스

지난 몇 개월 간 우리 가족은 비행기와 공항에서 꽤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한국에서 캐나다, 캐나다에서 멕시코, 그리고 다시 캐나다에 들렀다가 한국에 들어오기까지 총 네 대의 비행기와 네 번의 공항을 경험했다. 그 모든 길에서 나에게 주어졌던 가장 중요한 미션은 아이들을 안전하게, 그리고 말썽 부리지 않게 잘 돌보는 일이었다.


장거리 비행은 15시간에 달하는 시간 동안 공중에 갇혀 있어야 한다는 점이 극악의 난이도였지만, 그나마 기내에 모니터가 달려있어서 무한 영상 시청으로 아이들의 혼을 빼놓을 수는 있었다. 오히려 토론토에서 칸쿤을 오가는 단거리 비행이 어떤 면에서는 더 어려웠다. 작은 기종이라 모니터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지루해할 경우를 대비해서 태블릿 피씨와 휴대폰에 영상을 다운로드해가긴 했지만, 비장의 무기를 일찍 공개하면 그 뒤로는 보여줄 카드가 없으므로 절체절명의 순간에 맞춰 개봉해야 했다. 그래서 아이들의 흥미를 서서히 끌어올릴 수 있도록 자극의 강도를 치밀하게(?) 설계했다. 그래봐야 이게 다였지만...

1단계: 색칠공부
2단계: 젤리랑 까까 (그러나 과 복용 시 배탈 유의)
3단계: 잠 (그러나 마음대로 되지 않음)
최후의 수단: 영상 ( 효과는 백프로이나 엄마 마음에 걸림)


공항에서 기다리는 동안에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물론 내리 영상을 보여주면 나야 무척 편했을 거다. 하지만 곧 한국행 비행기에서도 15시간짜리 빈지 워칭을 하게 될 아이들을 여기에서도 미디어에 푹 담근다는 게... 어쩐지 좀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어떻게든 맨 몸으로 때워보기로!


뽀로로도 있고 타요도 있는 인천 공항과 달리 외국의 공항은 세상 제일 한적한 것이 꼬마들이 지루해하기 딱 좋았다. 고요하고도 넓은 그곳에서 생동감 있는 거라곤 엉덩이가 들썩들썩하는 우리 애들뿐이었다.


"엉덩이 딱 붙이고 바르게 앉아서 먹어. 밥 먹을 때 장난치는 거 아니야."


반복되는 잔소리에 엄마의 어금니에는 점점 더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건너편 테이블에 앉아 계신 백인 할아버지가 눈에 띄었다. 백발에 무성한 흰 수염, 두툼한 뱃살로 인해 한층 더 후덕해 보이는 풍채의 어르신이었다. 진짜 산타 할아버지가 연년생 단속으로 인해 지쳐 가던 엄마를 위해 보내주신 산타 피규어...아니지 산타 할아버지 그 자체였다. 그분뿐만이 아니었다. 아 맞다 여기 외국이지? 주위를 돌아보니 곳곳에 산타 할아버지들이 계셨다. 산타 마을이나 다름없었다!


"얘들아. 너네 그거 알아? 여기 산타 할아버지들이 굉장히 많이 계셔. 누가 누가 착한 어린이인지 보려고 산타 마을에서 정찰 나오신 거야."

"정찰이 뭐예요?"

"너네가 잘하고 있나 못하고 있나 본다는 뜻이야. 저기 머리 하얀 할아버지 보여? 산타인 걸 들키면 안 되니까 산타 옷은 벗어놓고 오셨지. 산타 아닌 척하시려고. 누가 떼쓰는지, 누가 착한 일 하는지 몰래 이름을 적어 가신대. 너희 선물 받고 싶지?"


말이 끝나자마자 흐느적거리던 두 마리 오징어의 척추가 꼿꼿이 펴졌다. 그러고는 갑자기 의젓한 목소리로 각자 착한 일 한 것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저는 감자도 먹었어요!"

"저는 아까 이러쿵저러쿵 쫑알쫑알..."


이것이 바로 선의의 거짓말이던가! 너네도 행복하고 나도 행복하고 사회도 소란스럽지 않으면 됐다 됐어. 그렇게 시작된 산타 놀이는 점점 더 거대한 환상의 세계로 확장되어 갔다. 광고판에 그려진 고양이는 밤이 되면 깨어나는 마법의 고양이가 되었고, 화려한 색상의 꽃잎 장식은 요정들이 사는 숲 속이 되었다. 상상 놀이가 지겨워질 즈음엔 어떻게 알고 귀신같이(?) 등장하신 산타 할아버지들이 느슨해진 놀이씬에 긴장감을 주고 가셨다. 산타가 외국인인 게 이토록 고마울 줄야.


아이들과 공항 곳곳을 탐험하다 보니 문득 병원에서 수련을 받던 때가 떠올랐다. 과로에 과로에 과로를 더하며 말 그대로 죽어라 일만 하고 살던 그 시절, 나에겐 딱히 주말도 없고 쉬는 시간도 없었다. 그 와중에 마음 맞는 동료들과 점심을 (호로록 마시듯 빨리) 먹고 커피 한 잔 사서 원내에 조성된 작은 정원을 몇 바퀴 도는 게 하루 중 유일한 힐링이었다. 그 작고 소중한 즐거움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나는 그때도 상상이란 조미료를 잔뜩 치곤 했다.


(때는 한여름. 1층 로비에서)

"샘. 여긴 지금 병원이 아니야. 우린 지금 공항에 온 거야. 동남아로 여행을 떠나는 중이지."

(당황하는 듯한 표정의 동료. 측은한 미소로 날 바라본다.)

(문 밖은 찜통더위)

"이거 봐. 동남아라서 엄청 덥잖아. 자 우리 이제 밀림으로 가보자."

(여행이라면서 밀림은 왜 가냐. 원래 상상은 논리가 없는 법. 이내 동조하게 된 동료는 자신도 모르게 상상놀이에 빠져든다.)


미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미치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던 저 시기를 버틸 수 있었던 힘은 점심마다 곱게 미친 덕이었다. 몸은 일에 속박되어 있었지만, 적어도 정신만큼은 안전하고도 즐거운 상상 속 바다에 잠깐이나마 발을 담글 수 있었으니 말이다.


아이들의 놀이는 상상력이 발달함에 따라 같이 자란다. 그 안에서 아이들은 현실에서 해볼 수 없는 것들을 실험해 보기도 하고, 힘들었던 일들을 잊기도 한다. 유아들은 환상과 현실의 세계를 자유로이 넘나 든다. 그러다가 점점 머리가 커지면서 현실과 환상 간에는 확실한 경계선이 생기고, 상상보다는 현실에 속한 삶을 살게 되었을 때 우리는 어른이 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른이 되다 못해 지나치게 현실에"만" 치중해서 사는 때가 오면, 우리의 마음은 마치 산타 할아버지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것처럼 무미건조해진다. 상상력이 메마른 어른들은 사는 게 참 재미가 없다.


그러니 현실에 두 발을 단단히 붙이고 있는 게 확실하다면, 잠깐씩은 우리도 상상력을 발휘해 보는 게 어떨까? 즐거움과 쉼을 주는 나만의 산타 마을로, 나만의 여행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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