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한국으로 돌아온 엄마직 종사자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지도 3주가 되어 간다. 그동안은 정리와 적응의 기간이었다. 먼저 이민 가방 두 개와 큰 캐리어 두 개에 담겨 있던 잡동사니들에게 제자리를 찾아 주어야 했고, 아이들도 다시 어린이집에서 제자리를 찾게끔 도와주어야 했다.
나 역시 적응이 필요했다. 하루 종일 아이들과 붙어 있다가 갑자기 혼자만의 시간이 생기니 어색했다. 엄청 좋아서 환호성을 지를 줄 알았는데, 갑작스레 텅 빈자리에 가장 먼저 파고든 건 무기력감이었다.
하긴, 무기력할 만도 했지. 이 무기력은 말 그대로 모든 기력을 지구 반대편에다 다 써버려서 기력이 없을 무가 된 탓이었다. 기력뿐 아니라 흥미도 같이 잃었는지 책을 읽어도 하나도 재미있지가 않았고 그 좋아하던 운동도 싫어졌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늘어지게 쉬는 시간이 필요했나 보다.
하지만 성격상 진짜 아무것도 안 하는 건 더 괴로운 사람이라서, 기왕에 집이 한 번 널브러진 김에 필요 없는 물건들을 버리기로 했다. 50리터짜리 종량제 봉투를 사다가 그동안 벼르기만 하고 차마 내다 버리지는 못했던 물건들을 모두 담았다. 아이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장난감, 망가진 장난감들도 모두 담았다. 작아진 애들 옷들 중 깔끔한 것들은 추려서 동네 친구의 아이에게 물려주었다.
이렇게 산타 할아버지 선물꾸러미보다 더 큰 더미들을 몇 차례 처분하고 나자 속이 다 후련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참 버리는 걸 어려워하는 사람인 것 같다. 쓸모가 없어진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마음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언제 또 쓸지 몰라서, 그리고 귀찮아서. 물론 소중한 추억이 담긴 물건도 쉽사리 버리지 못하지만, 이 경우에는 실제 쓸모와 무관하게 마음속에서는 엄청나게 가치 있는 것으로 인식되기에 버릴 물건 목록에선 애초에 제외된다. 따라서 버려야 하는데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대부분 저 두 가지이다. 이렇게 미련과 나태로 인해 물건을 쟁여두다 보면 집은 금세 더럽게 방치된 창고처럼 변한다. 그 집에 사는 식구들도 쾌적함을 느끼기가 어렵다.
마음은 또 어찌나 무거운지. 쓸 것도 아니면서 버리지도 못하는 것들을 부여잡고 사는 심정은 내내 찜찜하다.
그런 나 자신이 왠지 질척거리고 미련 가득한 인간으로 느껴져서 자존감에도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잘 버려야 한다.
생각도 감정도 물건도
공간만 차지하고 사용하지 않는 것들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그렇게 자꾸만 물리적 공간과 마음의 공간을 정리하며 살아야 언제든 새로운 일로 뛰어들 수 있고, 언제든 갑작스럽게 찾아올 일들에도 당황하지 않고 맞설 수 있다.
그러니 잘 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