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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스 Dec 21. 2022

벌써 그 시기가 왔다고?

어렵다 너의 패션 세계


  그 시기를 아는가? 아이들에게 저마다 확고한 취향이 생겨서 주야장천 엘사 드레스만 고집하고 한 겨울에도 구멍이 숭숭 난 크록스를 신어야 직성이 풀린다는 바로 “그 시기” 말이다. 그나마 옷이면 다행이지 상자를 쓰고 등원하는 아이도 있다는 글을 보고 간담이 서늘해진 적이 있다.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되었는데, 요 며칠 딸내미의 행동을 보니 벌써 그 시기가 오려나 싶다. 한 번은 엄마가 꺼내준 양말이 싫다며 기어이 새 걸로 갈아 신더니, 또 다른 날엔 머리 묶기를 거부해서 산발로 등원을 했다. 그리고 눈 내리는 오늘 아침에는 패딩 점퍼를 안 입겠다, 모자를 안 쓰겠다며 한참을 실랑이하다가 결국 눈물 바람으로 집을 나섰다.


  알고 보니 안에 입은 망사 달린 하얀 원피스가 너무 맘에 들어서 그 위에 다른 걸 덧입어 가리는 게 속상했던 모양이다. 어린이집에 가서도 선생님 앞에서 한참 동안 망사를 만지작 거리며 고운 자태를 뽐냈다고…


  느끼는 건 많지, 원하는 건 분명하지, 근데 말로 표현하는 건 어렵지. 그렇다면 얘가 최후에 할 수 있는 거라곤 드러눕고 소리 지르는 일뿐인데, 이 방법을 쓰면 주변에서 좋은 피드백을 받지 못해서 또 서럽지. 우리 딸 크느라 고생이 많다.


  그 마음을 다 헤아려주고 싶다만 엄마가 몸은 하나요 애는 둘이요 마음도 시간도 다 한정되어 있으니 여력이 없다. 더군다나 이 추운 날 외투도 없이 나가겠다니 아이 보호 차원에서도 도저히 타협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하지만 어린이집 선생님과 통화한 후에 이 모든 것이 짬의 부족에서 비롯한 편협한 생각이었음을 깨달았다.


어머니, 그럴 땐 그냥 이불 같은 걸로 둘둘 말아서 보내셔도 돼요^^


  그래. 어디 추위를 막아주는 것이 외투뿐이랴? 초중고에 대학교, 대학원까지 학교를 20년 가까이 다녀봤지만 육아보다 더 창의력이 필요한 과목은 없었다. 거기다가 이렇게까지 성질머리를 죽여가며 창의력을 발휘해야 하는 과목은 더더욱 없었다. 꺾여라 성질이여, 일해라 창의력이여!


* 표지 사진: 바로 그 하얀 원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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