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이 없다고 끝이 아니다.

뒤끝 없는 이들 곁에서 살아남기

by 누스
김 다혈(43세, 회사원)씨는 뒤끝이 없기로 유명하다. 김 다혈 씨는 누군가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제가 좀 욱하기는 해도 뒤끝은 없어요”라고 말하곤 한다. 이렇게 말하면 자신이 대책 없이 무모한 사람은 아니라는 해명이 되는 데다가 화를 낼 땐 내더라도 그 뒤는 깔끔하고 시원시원한 면모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약간의 선전포고 효과도 있어서, 괜히 갈등에 휘말리고 싶지 않은 평화주의자들은 다혈 씨에게 슬슬 맞춰주기도 한다. 세상에 이처럼 편리한 말이 또 있으랴!

김 다혈 씨의 주변인들도 이 말을 자주 쓴다. 김 다혈 씨는 부하 직원이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면 쾌걸답게 “따끔”하게 조언을 하는데, 워낙 기백이 넘치다 보니 그것이 따끔을 넘어 방망이로 뼈를 때리는 정도인 데다가 언성도 높아져서 주변 사람들 역시 벌벌 떨곤 한다. (결코 김 다혈 씨가 무자비해서가 아니다.) 한바탕 소동이 끝나면, 김 다혈 씨의 동료들은 말로 흠씬 두들겨 맞고 훌쩍이는 부하 직원을 조용히 탕비실로 불러 이렇게 위로한다. “자기야,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 김 과장이 좀 욱해서 그렇지 그래도 뒤끝은 없어.” 물론 이미 초토가 된 부하직원의 멘탈은 “그래도” 정도로 위로가 되지 않지만.


어학 사전에서는 “뒤끝이 없다”는 말을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기분 나쁜 일 따위를 마음에 담아 두지 아니하다.

[출처: 고려대 한국어대사전, 네이버]


그런데 이 말은 본의와 다르게 오용되기가 쉽다. 기분 나쁜 일을 마음에 담아 두지 않는 것까지는 좋은데 문제는 그다음, 상한 기분을 어떻게 처리했느냐에 따라 말의 의미가 아주 달라진다. 만약 감정을 다루는 능력이 뛰어나서 나름의 방식으로 불편한 감정들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면, 그리고 자신을 힘들게 했던 상대의 과오를 너그러이 덮은 채 다시금 관계를 이어간다면, 그야말로 이것은 성숙한 사람의 뒤끝 없음이다. 이런 사람들은 벼락같이 화를 내거나 본때를 보이겠다는 의도로 남을 응징하지 않는다. 일단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달래는 데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마음의 평정심을 되찾는다. 그 후에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자신의 권리를 알리고 상황을 교정하는 데에 초점을 맞출 뿐, 불필요한 정서적 폭력은 가미하지 않는다.


그러나 뒤끝이 없다는 말을 욱하는 성격의 면죄부 격으로 사용하는 이들의 경우, 일처리에서 인내나 관용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이들은 다음의 두 가지 방식으로 나쁜 기분을 처리한다.


뒤끝 없음의 속성

1. 다 쏟아 버린다

도통 마음에 담아두지를 않는다.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전부 내뱉어서 속이 후련해진 김 다혈 씨는 사실상 사후까지 길게 끌어갈 감정이 남아있지 않다. 어쨌거나 본인은 (부하직원에게) 다 털어냈기에, 가슴에 응어리가 질 일도, 뒤끝이 있을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때 쏟아내는 부정적인 감정의 에너지가 강할수록, 그리고 쏟아내는 방식에 거리낌이 없을수록 그 파급력은 대단하다. 서운함이 쉬이 가시질 않아서 삐지면 오래가는 정도의 뒤끝이라면, 주변 사람들이 피곤은 해도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입을 가능성은 비교적 낮다. 이와 달리 강한 분노는 일단 충동적으로 표출되면 주변에서도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기가 어렵다. 걷잡을 수 없는 화가 물리적인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고, 그것이 말이라 해도 타인에게 씻을 수 없는 정신적 외상 Trauma을 남긴다.


더욱이 이러한 일들은 대개 비인격체가 아닌 타인을 대상으로 일어난다. 김 다혈 씨만 해도 본인의 불쾌한 감정을 자기 베개에 한바탕 쏟아부은 후 “베개 네가 이해해. 내가 욱해서 널 던지긴 했어도 뒤끝은 없어”라고 하지 않았다. 복사기가 고장 나서 복사기를 흠씬 두들겨 팬다 한들, 남들 보기에 대단히 미성숙해 보이고 기계가 망가질 뿐이지 복사기가 마음의 상처를 입어 상담소를 찾을 일은 없다(물론 수리 비용도 두들겨 팬 본인이 부담한다.) 그러나 욱하고 뒤끝이 없을 사람들은 보통 타인에게 자신의 감정을 다 쏟아낸다. 사람이 쓰레기통도 아닌데 그렇게 못 쓰는 감정들을 마구 버린다.


2. 잊어버린다

이게 더 곤란하다. 다 쏟아버린 후에 본인은 잊는다. 깨끗하게 잊는다. 왜? 난 뒤끝이 없으니까. 그렇게 잊어놓고 일이 종료되었다고 믿는다. 왜? 난 안 불편하니까. 맞은 사람은 쓰나미가 휩쓸고 간 속을 원상태로 되돌리느라 시간과 감정과 체력을 써서 (어쩔 때는 치료비도 써서) 복구 작업을 해야 하는데, 다 잊은 그분들은 옆에서 삽질 한 번 도와줄 생각이 없다. 왜? 다 잊고 밥 먹으러 갔으니까. 눈에 보이는 상처는 치료비라도 청구하지 마음의 상처는 증명할 길도, 사과나 보상을 받을 길도 없다.


“이거 딱 내 얘긴데?” 하며 찔리는 분들이 있으신지. 만일 본인이 1, 2처럼 행동하고 있는데도 주변에 여전히 나와 교제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분들께 정말로 고마워하셔야 한다. 어쩌면 당신의 주변 사람들은 상처를 받은 채로 견뎌주고 있으며, 당신이 관계라고 믿는 그것은 그들의 노력으로 숱하게 복구된 재난 현장일 것이다. 당신이 뒤끝 없이 외면해버린 몫까지 짊어지고 관계를 연명해 가시는 대단한 분들이다.


그러면 어떻게 살라고?

꿍해서 두고두고 앙심을 품고 뒤끝을 길게 하라는 말인가? 불편한 감정을 잊지 말고 거기에 질질 끌려 다니며 영원히 고통받으란 말인가? 오해하지 마시길. 그저 나의 감정 처리 방식이 누군가에게 폭력이나 민폐가 되지 않도록, 스스로 소화해야 할 분량의 감정에 책임을 다하자. 혹시라도 감정을 조절할 여력이 없어서, 또는 훈련이 되지 않아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반성하고 사과하자. 그리고 이러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뼈를 깎는 노력으로 고쳐야 한다. (혼자서 개선하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하다면, 유능한 심리 전문가를 찾아가 한시라도 빨리 도움을 받으시길 권해 드린다.)


마지막으로 김 다혈 씨 곁에서 살아가시는 분들께...

멘탈 관리를 위한 현실적인 팁을 조금 드린다.

첫째, 피할 수 있으면 피하라. 김 다혈 씨 자체를 피한다기보다, 적어도 김 다혈 씨와 갈등을 빚는 상황은 피하는 게 좋다. 이것은 비겁한 회피가 아니라 현명한 자기 보호이다. 상대의 특성을 파악했음에도 굳이 그 회오리 속으로 나 자신을 던질 필요가 없다. 종종 본인의 뒤끝 없음을 자랑할 때 감사하게도 어떤 상황에서 자신이 폭발하는지 힌트를 주기도 하는데, 그럼 잘 알아두었다가 괜히 그 사람의 기폭장치를 누르지 않도록 조심하시길 바란다.


둘째, 빠르게 달아오른 냄비를 빠르게 식히라. 일단 상대가 욱한 상황에서는 이성적인 대화도, 원칙도 통하지 않는다. 그 앞에서 아무리 억울함을 이야기하고 논리적 잣대를 들이대 봤자 오히려 상대를 더 날뛰게 만드는 역효과만 있다. 그러니 일단은 더럽고 치사하더라도 상대의 마음이 최대한 빠르게 진정되도록 그의 감정에 수긍해주는 것이 좋다. 특히 분노라는 감정은 자신이 화날 만했다는 것을 주변으로부터 인정만 받아도 한 결 나아지는 습성이 있다. (분통 터지는 일을 이야기했을 때 친구들이 편을 들어주면 기분이 풀리는 경험을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그의 감정에 장단을 맞춰준다고 해서 그에게 굴종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상담사처럼 상대의 모든 분노에 매 순간 진심으로 공감하며 그를 치료할 필요도 없다. 다만 감정을 조절할 힘이 있는 쪽에서 일단 그 불길이 잦아들 때까지 한 발짝 물러나 기다리자. 그렇게 적당한 거리에서 달궈진 냄비가 식기를 기다린다면, 여러분의 소중한 마음을 지키며 상황을 바로 잡을 기회도 거머쥘 수 있을 것이다.


* 표지 사진 출처: pixab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