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분노 생활
버럭 씨는 오늘도 남편에게 버럭 화를 내고야 말았다. “먹고 바로 설거지 통에 넣으라니까? 당신은 손이 없어 발이 없어!” 화가 치밀어 오르는 순간에는 도무지 참을 수가 없다. 뱃속부터 부글부글 끓어 오른 용암은 재빠르게 목구멍을 스쳐 언어가 된다. 한 번 화를 내기 시작하면 절대 1절로 끝나지 않는다. 남편이 어제도 물건을 제자리에 두지 않았던 일, 지난주에도 설거지 통에 밥공기를 바로 넣지 않아 눌어붙은 밥풀을 떼느라 씨름했던 일 등이 갑자기 떠오른다. 그때마다 화를 내며 잔소리를 했는데도 나아지지 않다니, 이렇게 간단한 요구조차 들어주지 않는 걸 보면 남편은 버럭 씨의 말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 분명하다.
천성이 유순한 남편은 절대 버럭 씨에게 맞대응을 하지 않고 조용히 방에 들어가 문을 닫는다. 버럭 씨는 그 모습도 기분이 나쁘다. 자기 말을 무시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아무리 센 말로 남편에게 화를 내도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목소리가 남편의 귓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허공을 맴돌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다. 무시를 당한다고 느끼는 순간, 50만큼 화를 내려고 했던 것이 100이 된다. “어디 안 듣고 배기나 보자”하는 오기가 발동하여 더 상처가 되는 말로 남편을 들쑤신다.
이렇게 화를 폭발시킨 날엔 자괴감이 몰려온다. 참는 것보단 화를 내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아서 터뜨린 건데(솔직히 당시에는 이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화가 먼저 튀어나오긴 했지만 어쨌든), 자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니 후회가 밀려온다. 저 양반은 오늘따라 왜 저렇게 불쌍한 자세로 잠을 자서 더 초라해 보이는지 참. 엊그제 남편이 “당신 이거 좋아하잖아”하며 사다 준 치즈 케이크가 떠올라서 마음이 더 괴롭다. “내 남편이 몹쓸 인간도 아닌데 나는 왜 그 사소한 일 하나도 못 참을까? 내 인간성은 왜 이모양일까?” 버럭 씨는 이런 자신이 너무 싫지만, 혼자서는 도저히 날뛰는 마음에 고삐를 채울 수가 없다.
심리학에서는 감정을 “상황에 대한 반응”이라고 본다. 대개 “분노”라는 말을 들으면 부정적인 이미지부터 떠올리지만, 편견과는 달리 분노 그 자체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 감정일 뿐이요, 오히려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는 순기능을 할 때도 많다.
아무런 잘못 없이 골칫거리가 된 “화”는 참 억울하겠지만, 사람들 입장에서도 오해할 만한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첫째, 화를 경험하는 상황 자체가 불쾌감을 준다. 주로 부당한 일을 당하거나 자신의 욕구와 반하는 상황에서 화가 난다. 감정을 자극에 따른 반응이라고 설명한다면, 반응(감정)이 나쁜 것이라기보다는 그 “자극(상황)” 자체가 불쾌감을 유발하는 것이다.
둘째, 화가 충동성과 만나면 파급력이 강하다. 분노는 에너지가 강한 감정이다. 아쉬움, 서운함, 민망함, 겸연쩍음 등의 감정과 비교해 보면 잘 알 수 있다. 더군다나 화라는 감정이 충동성과 만날 경우 그것을 조절하기가 더욱 어려워서 안팎으로 많은 여파를 미친다. 그 힘이 외부로 뻗칠 때에는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언행이 되고, 자신을 향할 때에는 극심한 우울이나 자기 파괴적인 일(예를 들어 자해, 폭식 등)로도 이어지고는 한다. 이처럼 화가 휩쓸고 간 자리는 평화롭고 안정된 모습과는 거리가 멀기에 충분히 거부감이 들 만하다.
셋째, 화가 “나는” 것과 화를 “내는” 것을 혼동하기 쉽다. 앞서 말한 것처럼 특정 상황에서 화가 나는 것은 상황에 따라 자연스럽게 유발된 반응이기에 막을 수도, 막을 필요도 없다. 그런데 화를 내는 것은 감정 “표현”의 영역으로, 어떤 방식을 취할지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 이때 개인의 실력이 표현의 품격을 좌우한다. 화가 난 당사자에게 어떻게 화를 낼지에 대한 선택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력이 부족하면 감정에게 주도권을 빼앗긴다. 버럭 씨처럼 시도 때도 없이 버럭 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화를 내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실은 분노에게 방향키를 내어준 채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것이다.
우리도 어느 순간 누군가에게는 버럭 씨가 된다. 개중에는 거의 모든 일에 발끈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평소에는 썩 괜찮은 인격의 소유자들 역시 자신의 아킬레스건이 건드려진 날에는 이성을 잃을 정도로 분노에 휩싸일 수 있다. 남들 보기에는 전혀 화날 일이 아니더라도 개인이 살아온 역사와 배경, 그리고 본디 지니고 있는 타고난 특성에 따라서 “적어도 그 사람”에게는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저마다 자신의 상처를 보호하기 위해 날을 세울 수밖에 없었던 애처로운 개인사가 숨어 있다. 이렇게 세상 모든 버럭 씨들에게는 나름의 속사정이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미성숙한 방식으로 화를 내버리는 순간, 버럭 씨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이해받을 수 있는 기회를 잃고 만다. 자기 앞가림하기에도 바쁜 세상에 누군가의 속사정을 일일이 들어줄 사람은 상담사 말고는 없다. 게다가 뭐 하나 쳐부술 듯한 기세로 울끈불끈 성을 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갖고 있던 호감마저도 반감되어 도무지 그의 사정을 참작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결국 분노가 휘두른 방망이는 주변 사람들뿐만 아니라 버럭 씨 자신까지도 더욱 괴롭게 만든다. 무시당하고 싶지 않아 목에 핏대를 세우는 이는 진상으로 낙인이 찍혀 더 무시를 당하고, 버림받을까 봐 두려워서 겁박하는 이는 도리어 사람을 떠나게 만든다. 이는 그 누구도 원치 않았던 명백히 비효과적인 결과이다.
그렇다면 이놈의 화를 어떻게 해야 할까? 딱 두 가지만 기억하자.
화가 나는 것은 인정하되, 화를 내는 것은 미루자.
1. 화가 나는 것을 인정하자.
이전 글에 등장했던 다혈 씨를 기억하시는가?
분노를 쏟아내는 다혈 씨를 대하는 방법으로 감정에 수긍해주라는 제안을 했는데, 이와 동일한 원리이다. 다만 여기에서는 상대가 나의 마음을 알아줄 때까지 수동적으로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나서서 내 마음을 살펴야 한다. 감정 표현을 위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작업은 바로 감정 인식이다. 자신이 무엇을 느끼는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그것을 표현할 수가 없다. 따라서 심장이 벌렁하고 뱃속이 꿈틀거리며 가슴팍이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면 이것이 “화”라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그리고 내가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이유를 파악한 후, 적어도 나에게는 그것이 화가 날 만한 일이었음을 인정해주면 된다. 이때 주의할 점이 있다. 화가 나는 감정을 인정하라는 것이 결코 화를 내도 될 만한 정당성을 제멋대로 부여하라는 뜻은 아니다. “내가 이래서 화를 좀 내겠다는데 니들이 보태준 거 있어?”라며 뻔뻔해지지는 말자.
이유를 찾다 보면 그것이 너무 유치하고 쩨쩨하여서 나조차도 인정하기 힘들 때가 많다. 그런데 원래 사람은 시답잖은 일로 화가 나는 쪼잔한 구석이 있기 마련이니, 너무 개의치 않아도 된다. 때로는 헛다리를 짚을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를 하는 것만으로도 감정을 다루는 훈련이 되고, 이 과정에서 마음이 진정되는 효과도 얻을 수 있으니 일단은 해보자.
2. 화를 내는 것을 미루자.
화는 충동성과 궁합이 잘 맞는다. 충동적으로 화를 내기는 쉬워도, 충동적으로 슬프기는 어렵다. 충동성은 어떤 것을 빠르고 과하게 만든다. “순간적인” 욕구에 이끌리어 “과”하게 소비를 해야 충동구매이지, 오랜 기간 숙고해서 꼭 필요한 물건만 구입한 것을 충동구매라 하지는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힘이 센 분노라는 감정이 충동성이라는 폭주 기관차까지 타고 달려오면 그 파괴력은 어마어마해진다.
파괴를 막을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이는 무작정 속으로 삭이라는 말도, 벼르고 있다가 한꺼번에 터뜨리라는 말도 아니다. 화를 참는 것에만 초점을 두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화가 난 것도 화나는데 나더러 화까지 참으라니, 이거야 말로 화병이 날 노릇 아닌가? 그런데 미루는 것은 좀 더 쉽다. 화를 내긴 낼 건데 천천히, 이왕이면 좋은 때에 효과적으로 표현하자. 분노가 반드시 폭주기관차를 타고 올 필요는 없다. 만약 버럭 씨가 따발총처럼 잔소리를 퍼붓지 않고, 남편이 하루 중 가장 기분 좋은 시간을 살폈다가 단호하지만 적의는 없는 어조로 자신의 요구를 전달했다면? 적어도 감정이 잔뜩 실린 말들을 한껏 퍼부은 후 몰려오는 자괴감이나 불필요한 갈등은 줄일 수 있었을 테고, 남편 역시 아내의 정제된 말씨에서 기품을 느껴 그 요청을 쉬이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화내기를 미룬다는 것은 뜬 구름 잡는 소리가 아니다. 아주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고, 사실 감정 조절에 능숙한 사람이라면 이미 사용하고 있는 보편적인 방법이다. 예컨대 분노가 치솟아 오를 때 “일단 차 한 잔 마시는 동안 숨 좀 고르며 생각해보자”라고 마음을 다잡으면 화를 미룰 수 있다. 스마트폰이나 메모장을 이용해서 내뱉고 싶은 모든 말들을 여과 없이 적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나중에 잔뜩 흥분해서 쓴 글을 읽다 보면 “내가 화가 많이 나면 이런 생각도 하는구나”하며 몰랐던 자기 모습을 알게 되어 괜스레 쑥스럽기도 하고, 오해했던 부분을 발견하기도 한다. 때로는 시간이 지나면서 저절로 괜찮아져서 굳이 들출 필요가 없어지는 일들도 있다. 그렇게 여유를 갖고 자신의 마음을 살피면 내가 상대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것을 언제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효과적일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Q. 우물쭈물하는 동안 화를 낼 기회가 없어지면 어떡하죠?
A. 걱정 마시라. 당신을 화나게 만드는 그 일은 분명 내일도 모레도 앞으로도 수도 없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Q. 만약에 화를 낼 기회가 영영 오지 않으면요?
A. 그렇게 드물게 발생하는 일들 중 대부분은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으니 괜히 힘쓰지 말고 무시하자..
Q. 화를 너무 안 내서 상대가 저를 만만하게 보면요?
A. 상대가 당신에게 부당한 일을 했다면 무엇 때문에 언짢은지 알려 당신의 권리를 지켜야 한다. 단, 이때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은 당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두서없이 막말을 내뱉는다면 당장은 갈등을 피하기 위해 맞춰줄망정 속으로는 존중하는 마음이 우러나지 않는다. 반면에 흥분을 가라앉힌 후 다듬어진 말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은 누구도 만만하게 대할 수 없다.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Q. 시간이 지나서 얘기하면 괜히 과거의 일을 끄집어낸다고 더 싸우게 되지 않을까요?
A. 화를 미룬다는 것은 흥분을 가라 앉힘으로써 자신의 욕구를 더 정확히 전달하기 위한 전략이다. 제대로 사용하면 대인 관계에서의 갈등이 줄어들 수 있다. 두고두고 앙심을 묵혔다가 몇 년 전 일까지 꼬치꼬치 드러내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분노라는 감정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지만 그것이 지닌 에너지가 강하여 다루기가 쉽지 않고, 특히 충동성이 높은 경우에는 자기와 타인 모두에게 부정적인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그러니 화가 나면 곧바로 이를 표출할 것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자신의 마음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는 폭발적인 분노로부터 모두를 지킬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이다. 빨리빨리의 한국인이지만, 부디 화내는 것에 있어서 만큼은 느린 사람이 되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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